brunch

바람이 낙엽을 쓸다

by 승환

낙엽들이 거리를 배회하기 시작했다.

일년을 못채우고 연두빛 어린 순들이 올라오고 짙어지고 다시 붉게 노랗게 물들다 이제는 지는 일만 남았다.

아침저녁으로 쓸고 담고 해도 감당이 안되는 녀석들을 보노라면 도시니 마을이니 사람들이 사는 곳이란게 얼마나 인위적이고 자연을 거슬러 살고 있는지 실감이 된다

어떻게든 치워야 속이 편한 것은 사람마음이지만 나무는 지가 떨궈 놓고도 시치미를 뗀다.

어찌보면 나는 가만이 있는데 바람이 한 짓이라 항변을 하는 듯 하다.

맞다 그냥 서있는 자리에 다소곳이 떨어져 있으면 좋으련만 바람이 가만두지 않는다.

투명인간이 입은 옷처럼 바람의 실체를 느끼기에는 너무 좋은 계절이다.

늘상 봄 여름 가을 겨울 바람은 불어도 눈으로 실감하는 바람의 모습은 낙엽이 흔들리고 날아가는 모습이 적랄하다.

그렇다고 애물단지 같은 거리에 가로수들이 없다면 동네는 많이 삭막할거란 생각이 들었다.


사람과 나무를 바뀌어 생각하면 잎들은 사람에겐 각질이나 터럭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언제까지고 죽을때까지 들고 갈 수 도 없는 존재, 떨어지고 부러져도 목숨이 위태하지 않을 기관들이다.

사람이 동물에게도 잔인하지만 나무에게도 잔인하다.


바뀌어 생각하면 꽃들은 생식기관이고 사람이 나무라면 벌거벗은 생식기를 일렬로 세우고 모아놓고 우르르 몰려와서 꽃놀이니 꽃구경을 한다고 몰려든다.

사람들이 가로수대신 공원의 곳곳에 나체로 서있고 나무들이 몰려들어 구경을 한다면 해괴하지 않겠는가

낙엽이 지는 것을 보면 거리의 가로수대신 사람들이 서있고 머리가 하나 둘 다 빠져서 대머리가 되어 가는 풍경이라면 참 안타갑고 우울한 상상이된다.

그나마 겨울을 나고 봄이나면 머리털이 자라니 오히려 다행이라 할지도 모르겠다.


아침저녁으로 집앞을 쓸다보니 별별 상상을 다한다.

쓸어도 끝이 없고 낙엽이 쌓이면 지나는 행인들도 은근슬쩍 쓰레기니 꽁초를 버리기도 한다.

하다하다 힘들어 바람을 부는 대포를 쏘기도 한다. 남는 시간에 한다고 늦은 저녁이나 밤 새벽에 하다보면 앞에 있는 아파트 주민들의 민원으로 경찰이 오기도 한다.


대로변의 길가는 미화원들이 나름 열심히 치우지만 이면도로로 들어오면 오로지 사는 사람들의 몫이다. 바람이 불면 건물과 건물들 사이로 빌딩풍이 불고 도로변의 낙엽들이 모두 밀려온다. 가로수로 심은 사과나 은행을 따면 절도가 되는데 낙엽은 피해를 줘도 그만이다. 상가나 사무실에 있는 사람들은 뜨내기라 생각하는지 신경을 쓰지 않는다. 잠을 자고 주거로 거주하는 이들의 차지가 된다.

동네를 삥 둘러 있는 아파트들은 담장 밖의 일은 무관심하다. 자기네들이 심어 놓은 조경수에서 떨어지는 낙엽들이 흩날려도 단지안에만 예쁘게 꾸미는지라 도통 신경을 쓰지 않는다.


실상 낙엽보다는 바람이 문제라는 것을 안다.

바람을 거슬리며 하는 일들은 쉬운일이 없다.

낙엽을 쓸고 치우는데도 큰 바람이 불면 의미없어지고 이내 무기력해진다.


살아가는 대에도 바람은 늘 분다.

유행이라 부르기도 하고 문화라기도 하고 사람들이 몰려가는 일은 늘 다반사였다.

지나온 시간들을 보면 그랬다.

좋은 대학을 가야하고 영어를 배워야 하고 컴맹이 되면 안되고 중국어를 배우고

운전을 배우고 수입차를 사야하고 아파트를 사야하고

주식을, 코인을 해야한다는 바람이 불었다.


동네 편의점보다 많아진 피트니스며 필라테스를 배워야 하고 테니스를, 등산을,

골프를 쳐야하고 런닝을 해야한다.

해외여행을 가고 견문을 넒혀야하고 싱클몰트 한병씩은 집에 둬야하고 인문학을 배워야 하고.

하여야 할 필요들은 있지만 늘 설렁거리는 봄바람이 아니라 광풍이고 태풍처럼 몰아치고 몰려간다.


나무들은 바람을 버티며 살고

사람들은 바람을 맞으며 날라다닌다.


우리는 어디까지 날라가고 있을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남의 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