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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시시한 날

첫 눈

by 승환

첫 눈



하늘이 유난스런 밤이

천천히 물러갔다.


창마다 불이 켜지며

소리 없는 아우성 속,

설레던 밤은

아주 먼 전설처럼

가물거리기만 한다.


눈은 말없이 스러졌다.

거리를 덮던 하얀빛은

신기루처럼 무너지고,


하루를 견디다

투명하고 어두운

그림자로 남는다.


골목의 그늘 아래

축축한 바닥에는

머리 없는 생선 몇 마리가

느릿하게 굴러다닌다.


생의 비루한 틈을

비집고 들어온 냄새가

코 끝을 스친다.


첫눈처럼

갑자기 내게 내려왔던 사람,

오래된 연인의 몸에서는

옅은 비릿내가 번진다.


꺼내지 못한 마음의

골마지를 조용히 걷었다.


오늘, 말라가는 시내처럼

바스러져 흐르는 하루를

또 지나보낸다.


파닥거리다

조금씩 허물어지는

그 몸을

다시 꼭 안아본다.


우리는

첫눈이 내렸던 저녁을

아직 잊지 못하고,


비릿해지는 서로를

끝내 견디지 못해

눈물이 자꾸 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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