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품 원재료 공급망은 안전한가?

#의약품, #독점, #다변화

by 케이엘

미국, 한국, 유럽 등 산업화를 거친 선진국들은 오래전부터 경제적 풍요를 이루면서 이제는 인간다운 삶과 지속 가능한 사회라는 이상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인간 존엄과 자연보호를 아우르는 새로운 산업 윤리를 낳았고, 이는 인류 보편적 가치 실현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상적 가치와 경제 현실 논리가 공존하는 의약품 산업에서는 복잡한 문제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의약품의 생산에는 정밀한 공정과 고도화된 설비가 필수적이나, 생산비 절감이라는 경제 논리가 강하게 작용하는 분야이기도 합니다. 독일 제약협회(Pro Generika e. V.)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독일에 수입되는 항생제 활성 성분의 약 76%가 중국에서 생산되고 있습니다. 당뇨병 치료제 메트포르민 또한 전 세계 22개 주요 제조업체 중 15곳이 인도에, 2곳이 중국에 있으며 단 3곳만 유럽에 존재합니다. 뿐만 아니라 독일은 메트포르민 합성 핵심 원료인 디시안디아미드의 80%를 중국에서 공급받고 있어, 원료 단계부터 중국 의존도가 심각합니다.


2024년 독일은 중국으로부터 7억 2,200만 유로 규모의 의약품 성분과 완제품을 수입했으며, 무게로는 3,300만 톤에 이릅니다. 반면 독일이 중국에 수출하는 물량은 1,500만 톤, 약 41억 유로 수준에 그쳐, 겉으로 보이는 무역 규모와 달리 의약품 원료에 대한 중국 의존이 명백함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글로벌 공급망은 경제적 효율성을 높였지만, 동시에 심각한 취약점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독일 약사협회 연방연합은 현재 500종 이상의 처방약이 공급 부족에 시달리고 있으며, 어린이용 항생제 및 ADHD, 천식 치료제가 특히 문제라고 경고했습니다. 이는 어느 한 국가의 생산 차질이 유럽 전역의 의료 공급망에 직접 악영향을 줄 수 있음을 분명히 시사합니다.


또한 이와 같은 공급망 취약성은 에너지 분야에서 러시아가 천연가스 공급을 중단했을 때 유럽이 입은 충격과 매우 유사한 경고를 줍니다. 러시아가 2022년부터 천연가스 공급을 끊자 독일 등 유럽 주요국은 2년간 약 2,200억 유로(290조 원)의 경제 손실과 상당한 GDP 성장 둔화를 겪었으며, 산업 전반에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이 사례는 천연가스뿐 아니라 의약품 원료 공급에서도 특정 국가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 국가 안보와 경제에 중대한 위험임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한국은 원료의약품의 약 72%를 주로 중국과 인도에서 수입하며, 중국은 단독으로도 원료의약품 수입액의 37.7%를 차지합니다. 미국은 제너릭 항생제·해열진통제 등 필수 의약품 상당수를 중국에 의존하며, 중국산 원료가 미국 의약품 공급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90%에 가깝습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중국이 정치적 이유로 제약 원료 공급을 중단하거나 제한할 경우, 가격 상승을 넘어 국민 건강이 심각하게 위협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2025년 10월 미국은 자국 내 의약품 생산 확대를 위한 인센티브와 핵심 의약품 재고 확보, 동맹국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며, 유럽연합도 의약품 공급망 다변화를 필수 전략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국가 안보적인 측면이나 경제적인 면에서 이러한 잠재적 위협에서 대한 대비가 필요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