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 컨퍼런스, 네트워킹

난 누구, 여긴 어디?

by 쿠쿠다스

최근 몇 년간 한 동안 뜸 했던, 출장과 컨퍼런스와 같은 글로벌 모임이 조금씩 활발해 지고 있다. 우리 회사는 특히나 사람들 간의 네트워킹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터라, 이런 모임들에 참여할 기회가 종종 있다. 이번주 우리 부서는 상하이에서 서울, 도쿄, 싱가폴, 홍콩, 타이페이의 인사팀을 초청하여 한 주 간 컨퍼런스를 진행했다. 칵테일 디너, 라운드테이블, 워크숍, 발표, 회식 등등 숨 가쁘게 한 주를 지내고 보니 실제 체중이 줄었다. 육체적 (무엇보다) 정신적 에너지 소모가 상당했다는 증거다. 한국에서 출장 온 한 친구는 "이 회사에 다닌지 10년이 넘었는데, 매번 이런 출장때마다 자기는 이 회사와 맞지 않는 것 같다"고 농담반 진담반 푸념을 건낸다. 상하이에서 살고 있어 참가자 대부분을 이미 알고 있는데다가 성향마저 외향형인 나에게도 이렇게 힘든데, 가뜩이나 내향형인 그 친구에게 이번 출장은 얼마나 큰 긴장과 소진의 시간이 되었을까.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나같은 사람에게 외국식의 컨퍼런스 문화는 아무리 자주 접한다 해도 사실 쉽게 적응이 되지 않는다. 불특정 다수를 만나 다양한 주제의 대화가 오고가고, 더구나 이 모든 것들을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해 나가야 하는 것에서 더 큰 부담이 될 때가 많다. '우리'를 강조하는 우리나라 문화 특성상, '누구에게든' (진짜일 필요까진 없지만) 마음 열고 대화를 나누는 세팅은 낯설고 좀처럼 적응하기가 힘들다. 나는 흔히 외국인들이 나누는 스몰톡을 하와유토킹(how are you talking) 이라고 명명하는데, 특별히 깊이 들어갈 필요 없는 주제들에 대해서 끝없이 대화 나누는 일은 나에게는 큰 고역이다. 또 하나 다른 도전과제는 천차만별의 형태에 가까운 이름인데, 이런 정신 없는 환경에서 네트워킹을 하다보면 돌아서서 이름을 까먹을 때가 빈번하다.


이런 모임에서 어떻게 살아 남아야 할까.


몇 년을 같은 회사에서 일하다 보니 요령 같은게 생겼다고 할까. 그 요령을 몇 가지 공유하자면 우선, 여기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도 나와 다르지 않다는 '의식상의 대등함'이 필요하다. 같지도 않지만, 사실 다르지도 않다는 의식적인 '생각'이 중요하다. 이런 생각이 없이 주변을 둘러보면, 나 빼고 서로서로 잘 아는 것 같고, 서로 다들 웃으며 즐거운데 나만 이렇게 소외감을 느끼나 싶을 때도 있다. 그렇지만 실제론 이 많은 사람들 안에서도 누구는 주눅드는 느낌을 가지기도 하고, 누구는 물만난 고기처럼 사람들 사이를 유유히 헤엄치기도 한다. 또 이 가운데에는 그리고 반드시 나와 주파수가 맞는 사람이 한 둘 있게 마련이다. 혼자서 유유자적 하는 것도 물론 좋고. 사실 그럴 수 있으면 제일 좋지만 말이다. 그렇지 않다면 나와 비슷한 일을 하거나, 비슷한 수준의 영어레벨을 가지고 있다거나, 이 환경에서 비슷한 기분으로 자세를 취하고 있는 사람을 찾으면 된다. 그 사람이 나의 안전한 도피처(Safe harbor)가 되어줄 수 있다면, 좀 더 편안한 기분으로 그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될 것이다.


몇 가지 화제를 미리 준비해 보는 것도 좋다. 질문의 형태이면 더 좋고. 왜냐면 내가 먼저 말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언제 도착 했는지, 오는 항공편은 편안했는지, 어디에서 묵고 있는지, 이 도시에는 처음인지 아니면 예전에 와봤는지, 언제까지 머무를 예정인지 등등. 우선 말문이 틔이면 자연스럽게 그 다음화제가 떠오르고 나타난다. 그게 대화의 기술이겠지만. 내가 계속 질문을 할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상대방도 결국 비슷한 질문을 나에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이런 대화가 정말 의미없는 시간낭비라고 생각한 적도 많았다. 특별히 궁금하지도 않고, 사실 실질적인 측면에서 보면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이야기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가 사실은 상대방과의 대화의 물꼬를 트는데 촉매 같은 역할을 한다. 이미 다른 글에서도 말했지만, 이런 스몰토크를 할 수 있어야 더 깊은 대화로 나아갈 수 있다. 사실 이런 워밍업 없이 중요한 대화를 한다는 것도 우물에서 숭늉을 찾는 격이지만.


영어를 일하면서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고, 비교적 뒤늦은 성인이 되어서 배운 나 같은 사람에겐, 사실 영어로 업무 대화를 하는 것이 영어로 노는 것 보다 훨씬 익숙하다. 그러다 보니, 외국인과의 대화에서 종종 (아니 매우 자주) 업무 중심으로 방향이 틀어지는 때가 많다. 의식적으로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그래도 그렇게 될 때가 많다. 당연히 컨퍼런스이고 출장이니 업무에 대한 대화를 나눌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내용의 전부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완벽한 공식이 있을 순 없지만 적절한 비율을 찾는 게 중요하다. 업무에 대한 대화는 그 사람을 알아가는 '네트워킹'에는 제한적인 역할을 한다. 오히려 네트워킹에는 (민감하지 않은) 개인적인 대화들이 상대방을 이해하고 알아가는데 더 큰 도움이 된다. 사람들은 대체로 야기와 서사를 더 잘 기억한다고들 한다. 앞선 제안과 같은 맥락이다. 대화에서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다면 상대방과의 대화는 좀 더 편안하고 쉽게 이어질 수 있다.


끝으로, 내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면 좋을지에 대한 자기브랜드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한국에서 온 사십대의 남자. 특별한 재주도 없고 재미있게 말할줄도 모르는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알려지면 좋을지. 사실 아직 명확한 해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받은 외국인 동료나 친구들의 피드백을 받아 보면, 확실히...한국에서의 나와는 조금 다른 존재로 묘사되어 있다. 다른 언어로 말하기 때문에 다른 페르소나를 가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터. 이 존재의 부조화를 고민했던 적도 분명히 있다. 왠지 진솔되지 않은 모습으로 외국인을 대하는 것은 아닐지 염려하기도 했고. 하지만 다른 (무엇보다 제한적 표현능력을 가진) 언어로 말하여지고 행동하는 나의 모습은 분명히 다르게 비춰질 가능성이 있다. 이중인격을 말하는 게 아니라, 제한된 표현과 행동이 만들어 내는 새로운 '조합'과 그 '총합'으로서의 '나'가 새롭게 정의되는 것을 말한다.


세계시민의식 (Global citizenship)


K-POP스타들 덕분인지 실제로 요즘 나는 한국에 대한 세계인들의 인식이 많이 높아졌다고 느낀다. 가령 십년 전엔 내 한국 이름을 발음하기를 어려워하곤, 바로 이어 영어 이름이 무언지 물어보았다면 지금은 오히려 내 한국 이름이 무엇인지 어떻게 발음하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 '안녕하세요'나 '감사합니다'를 말 할 수 있는 외국인이 늘어났음은 말할것도 없고. 과거와 비교하자면, 앞서 언급한 '대등성'을 갖추기에 상당히 좋은 조건이 갖추어 졌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음식과 문화에 대한 관심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해 줄 수 있는 이야기가 준비되어 있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다. 그들 역시 네트워킹 장에서 한사람 한국인을 알아두는 것쯤은 매우 의미가 있고 심지어 세련(Fancy) 되기까지 한 일이 될 수도 있게 되었다는 말이다. 많은 한국인들이 세계시민의식을 가지고 더 많은 목소리(share of voice)를 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어쭙잖지만 몇 가지 제안을 해 보았다. 사실 우열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는 결국 모두 지구라는 행성에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이고 그것이 곧 우리가 자주 말하는 '인연'이다. 그 인연을 귀히 여기고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누기를 바라는 마음. 그것이 어쩌면 우리가 해외 출장이나, 컨퍼런스나 네트워킹에서 가져야 할 기본적인 자세인지도 모른다. 이번 상하이 이벤트는 홈 경기였다면, 오는 유월에는 런던에서 어웨이 경기가 치러진다. 홈 경기가 아시안 게임이었다면, 유월의 컨퍼런스는 하계 올림픽 정도 되려나. 나 역시 다음 출장에 오를때 내가 쓴 글을 되짚어 보고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다. 그래야 내가 내뱉은 말이 부끄럽지 않아질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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