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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사회공헌은 마케팅이다

Marketing Bites 2. 선한 영향력, 사회공헌 마케팅 (01)

1929년 5월. 미국 뉴욕의 화창한 부활절 주일. 그 번화가를 화려하게 차려입은 숙녀들이 당당하게 걸어가고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은 그들이 손에 들고 있는 물건에 꽂혔다. 바로 담배였다. 

미국에서 여성 참정권이 처음 보장된 건 18세기 후반 뉴저지로 꽤 역사가 깊다. 그럼에도 각 주 단위의 인정을 거쳐, 마침내 모든 주에서 법제화가 된 건 고작 1920년. 위의 사건이 일어난 1929년은 아직 여성 참정권이 법을 떠나 사회 속으로는 제대로 들어가지 못한 여성인권의 여명기였다. 

‘담배’는 바로 그 여성인권을 상징하는 물건이었다. 우리나라도 비슷했다. 아니 더 심각했다. 무려 1980년대에도 대학에서 담배 피우던 여학생이 남자선배에게 뺨을 맞았다는 말도 있으니, 시대와 지역을 떠나 여성흡연은 꽤나 오랫동안 금기시되어온 일이다.  

'자유의 횃불' 행사에 참여한 여성들. 부활절 퍼레이드를 하면서 자유롭게 대로에서 담배를 피웠다.


1929년 미국 사회는 여성의 참정권은 보장되었지만, 80년대 한국 사회처럼 아직 담배는 허용되지 않았다. 1904년, 뉴욕에선 아이 앞에서 담배를 피웠다며 한 여성이 30일 구류 처분을 받았으며, 1921년 워싱턴에선 공공장소에서 여성의 흡연을 금지하는 법안이 의회 제출됐다. 

이런 시기에 그 담배를 여성들이 대놓고 피웠다. 그것도 매우 교양 있어 보이는 여자들이 벌건 대낮에, 보수적인 미국 기독교 사회의 대표 축일인 부활절 퍼레이드에서. 사진기를 눌러대는 기자들 앞에서도 거리낌 없었다. 

프로그램을 기획한 기획자로 프로이드의 조카이기도 했던 에드워드 버네이즈는 이 캠페인을 이렇게 명명했다. ‘자유의 횃불’(Torch of Freedom). 여성 인권에 제품을 결부시킨 사회공헌 마케팅의 시작이었다.  

'자유의 횃불' 캠페인 즈음 여성을 대상으로 한 담배 광고. 럭키 스트라이크(왼쪽)과 말보로(오른쪽).

    



라이브 에이드, 자선콘서트 하나가 지구를 흔들다     

1985년, 지구촌을 흔들어놓은 대규모 자선콘서트 <Live Aid>. 영미 2개국에서 열린 이 행사에 무려 15억 명이 TV로 관람했다. 


시간은 흘러 약 56년 뒤인 1985년 7월. 미국과 영국의 세계적인 음악 아티스트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단 하나의 목적, 아프리카의 굶주린 아이들을 돕기 위해서. 

아일랜드 뮤지션 밥 겔도프가 조직한 이 행사는 영국 웸블리와 미국 JFK스타디움에서 동시에 대형 콘서트로 개최되었다. 영국 22개, 미국 35개 팀이 참여했으며, 각각 20분만 공연했는데도 무려 16시간 공연과 15억 명 이상이 TV를 보는 ‘초대박’을 쳤다. 참여 뮤지션만 해도 퀸, 레드 제플린, U2 등 전설적인 록그룹은 물론, 엘튼 존, 밥 딜런, 에릭 클랩튼, 필 콜린스 등 당대 톱스타들이 망라됐다. 행사의 이름은 바로 ‘라이브 에이드’(Live Aid). 

‘자유의 횃불’과 ‘라이브 에이드’는 사회공헌 캠페인이 얼마나 효과가 큰 마케팅 수단인지 잘 보여준다. 앞서 자유의 횃불은 한 담배회사가 ‘럭키 스트라이크’ 담배의 판매 촉진을 위해 마련한 공익 연계 마케팅. 

‘라이브 에이드’는 기업 마케팅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아프리카 아이들을 돕자는 순수한 인애 목적의 사회공헌 캠페인이다. 

<Live Aid>를 조직한 아일랜드 뮤지션 '밥 겔도프'. 이 행사로 노벨평화상 후보에 올랐다.


캠페인이란 특정 이슈 해결을 위한 조직화된 활동을 말한다. 반전이나 민주주의, 여성인권, 기아 등 여러 사회 이슈와 관련해 행사나 활동을 기획하고 있다면 그게 바로 사회공헌 캠페인이다. 

앞서 말한 ‘자유의 횃불’ 또한 밑에는 제품마케팅이 들어가 있었지만, 대외적으로는 여성인권이란 사회이슈 해결을 위한 사회공헌 캠페인이었다. 캠페인과 마케팅의 차이는 그 캠페인을 기업의 브랜드나 제품 홍보에 관련짓느냐 아니냐의 차이일뿐, 둘다 사회 이슈를 대의명분으로 내세우는 것은 같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공헌 마케팅은 다른 이름으로는 ‘대의마케팅’(Cause Marketing)이라 불리기도 한다. 

라이브 에이드를 예로 든 것은 바로 이런 사회공헌 캠페인이 얼마나 큰 파급력이 있는지 보여주기 위해서다. 만약 이를 LG나 삼성, 혹은 애플이나 유투브의 모기업인 구글이 진행한다면 어떨까. 사회 이슈 해결은 물론이고, 해당 기업에 엄청난 마케팅 효과를 가져다주지 않을까. 캠페인의 부가 수익은 둘째 치고 말이다. ‘자유의 횃불’ 캠페인이 럭키 스트라이크에 가져다 준 커다란 상업적 이익처럼.           



국내에서도 높아져 가는 관심, 새로운 사업모델로 부각     


두산, 2019년 4,600억 원 규모 사회적 가치 창출 2년간 1조원 규모
SK, 2019년 사회적 가치 창출 규모 9,093억 원
벤츠코리아, 2020년 기준 최근 6년간 272억 원 기부  
전경련 발표, 2015년 국내 주요기업 사회공헌 규모 2조 9,020억 원 추산 발표           


최근 국내 언론에 보도된 사회공헌 마케팅 관련 예산들이다. 이중 전경련 발표만 보면 웬만한 대기업 연간매출에 상응하는 규모의 돈이 사회공헌 분야에 쓰이고 있다. 

SK는 최태원 회장이 직접 사회적 가치를 강력하게 천명하고, 전 계열사에 적용할 것을 지시했다.


실제로 최근 대기업들의 사회공헌 마케팅 움직임은 매우 활발하다. SK는 최태원 회장이 직접 나서 ‘사회적 가치’의 반영을 전 계열사에 강력 주문했다. 삼성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공익재단 이사장을 맡는 것은 물론 직접 공모형 CSR 프로그램인 ‘나눔과 꿈’ 캠페인을 진행했다. 현대자동차는 베트남에서 사회공헌 MOU를 맺었으며, 신세계는 코로나 시대를 맞아 신세계TV쇼핑의 유투브 콘텐츠로 지역 상생 프로그램을 전개하고 있다. 

이처럼 많은 기업들이 사회공헌 마케팅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답은 앞서 든 사례들처럼, 사회공헌이 실질적인 마케팅이나 캠페인 모델로서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아울러, 기업을 영속하게 해주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까지 만들 수 있다는 이점도 함께 있다.      



기업 사회공헌의 발달, 새 비즈니스를 만드는 CSV까지 진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직접 나서 CSR 공모전인 '나눔과 꿈'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삼성 청년 SW 청년아카데미 광주교육장을 방문한 사진.


흔히 ‘기업 사회공헌’ 하면 연말 불우이웃 돕기나 임직원 자원봉사 등을 떠올린다. 그 또한 연말 어려운 이웃에게 김장김치나 연탄 등을 배달해주고, 저소득층 대상 자녀 교육까지 해주니 매우 훌륭한 사회공헌 모델들이다. 

최근 기업들이 관심을 갖는 건 이런 기부나 봉사 등 단편적인 수준은 아니다. 이런 기부나 자원봉사 프로그램은 사실 1세대 사회공헌 모델이다. 기업이 사회에서 많은 돈을 벌었으니, 그 돈을 어려운 이웃을 대상으로 ‘환원’해야 한다는 초기 모델.  

현재의 사회공헌은 이보다 한참 나아가 있다. 2세대 모델인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거쳐, 3세대인 CSV(Creating Shared Value, 공유가치창출)가 바로 그것이다. 최근 화두를 이루는 ‘사회적 기업’ 또한 바로 이 CSV 개념의 사회공헌 모델이자,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각광을 받고 있다.  

이들 진화된 모델을 통해 기업들이 이루려는 건 우선 ‘지속가능성’(substantiality)이다. 즉, 현재의 기업이 계속 100년이고 1,000년이고 지속될 수 있는 기반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여기에는 사회공헌 활동만 들어가진 않는다. 광범위하게 환경과 기업지배구조 등 윤리적 측면까지 망라해, 대략 3가지 요소로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판단한다. 기업에선 정기적으로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내는 것이 의무화된 상태. 

국내에서도 장수 사회공헌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은 MBC <어린이에게 새 생명을>. 약 30여 년간 매년 어린이날 방송을 통한 어린이 돕기 캠페인을 지속해 왔다.


여기에 비교적 최근 등장한 CSV 모델은 아예 기업이 자신의 제품이나 사업분야에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지역사회와 함께 만드는 것까지 주문하고 있다. 

‘사회적기업’이란 캠페인과 마찬가지로 특정 이슈 해결을 위해 만들어진 특수한 기업 형태다. 영리추구가 목적이긴 하지만, 임직원 구성에서 장애인이나 소외계층 채용을 보장하고, 이익 또한 그 쓰임새가 규정되어 있는 등 기업의 가장 큰 목적을 함께 하는 구성원과 사회에 대한 공유로 잡는다. 

CSV는 이런 사회적 기업과 함께, 지역사회 이슈 해결도 하면서 함께 영위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 마련까지 한발 더 나아간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 지역에 우물을 파도록 했는데, 그 우물과 장비를 운용할 비즈니스가 새로 생겼다면 바로 그 새 비즈니스가 CSV이다. 

앞으로 이런 사회공헌 마케팅에 대해 약 10여 편 정도 연재를 하려 한다. 여기에는 사회공헌 마케팅의 발달과정과 담당자로서 기획할 때의 유의사항, 효과 등에 대한 설명도 포함될 것이다. 아울러 ‘라이브 에이드’처럼 자생력을 갖고 운영될 수 있는 사회공헌 모델에 대해서도 함께 알아보겠다. 

마케터가 가져야 하는 최고의 덕목은 내가 하는 마케팅 활동이 사회에 도움 된다는 확신이 아닐까 한다. 음란 도박 등 사행산업이나 비윤리 산업의 홍보 마케팅을 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바로 이런 점에서 사회공헌 마케팅은 몸담고 있는 기업과 사회가 한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는 좋은 솔루션이 아닐 수 없다. 나아가 궁극적으로 자생력을 갖고 움직이면 더욱 좋겠지만, 거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 것이다. 

선한 영향력으로 높은 마케팅 효과까지 누릴 수 있는 사회공헌 마케팅, 다음 호부터 본격적으로 출발해보자.  




* ‘자유의 횃불’ 캠페인 영상 

    


* ‘Live Aid’ 중 퀸(Queen) 공연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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