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7 실력은 반복에서 비롯되고

파나마 엘 카르멘 게이샤 W

by 만델링

드디어 드럼 세트가 인사를 왔다. 업라이트 피아노 한 대를 빼고 피아노 나간 자리에 새 친구 드럼 세트를 놓았다. 학원의 살림이 풍요로워졌다. 그랜드 2대, 업라이트 12대, 거기다 드럼 세트까지. 근방에서 이만큼 많은 악기가 있는 피아노 학원은 드물 것이다. 초등 입학 적령기 아이들이 줄어들고 예능 학원을 등한시하는 풍조가 만연한 요즘 분위기를 감안하면 좀 무모한 선택이 아닌가 싶다. 오직 음악과 아이들을 가르치는 열정만 있는 분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학원비 체납이나 아이들 감소는 개의치 않고 오직 레슨만 죽어라 하는 선생님을 보노라면 답답할 때가 많다. 흔들리지 않는 저 신념의 밑에 무엇이 있길래 절반으로 줄어든 원생 수에도 굴하지 않고 그 돈 깨나 드는 드럼을 들였을까 걱정한다.


떡하니 앉은 드럼 세트와 친해지는 일은 쉽지 않다. 연습은 생각했던 것보다 지루하고 재미없는 일이라 걸 알아차리는 건 금방이다. 손과 발이 따로 움직이는 일은 다반사고 그 리듬이라는 걸 따라 두드리는 것만으로도 머릿속이 혼미해지는 일이다. 재즈 음악가들이 자연스럽게 두드린다고 그대로 흉내 낼 수 있다고 여긴다면 그건 정말 칫~ 하는 일이다.


미뉴 샘 학원의 선생님들은 피아노와 성악, 피아노와 바이올린, 피아노와 첼로를 전공한 분들이라 기타와 드럼은 따로 외부에서 강사를 초빙해 레슨을 받은 후 학원의 아이들에게 피아노 외의 악기를 가르친다. 자신의 전공과목이 아닌 다른 악기를 배우는 일은 음악에 조예가 깊고 한창때 무슨 무슨 콩쿠르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입상을 한 경력이 넘치는 선생님이어도 시작하는 방법은 똑같다. 드럼을 놓고 볼 때 그렇다는 말이다.

며칠이고 베이스 드럼의 패턴만 연습한다. 그다음 심벌만 두드린다. 아마 두드린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사흘이건 나흘이건 강사가 이제 다음으로 넘어갈까요, 하며 탐탐을 연습하자고 할 때까지. 원래 그렇듯 연습은 단조롭고 지루하다. 마음 같아서는 레드 제플린의 존 본햄쯤이야 하는 치기가 오르지만 그게 어디 입으로 내뱉을 수 있는 말일까! 대체 드럼에서 언제 음악처럼 들리는 소리가 날까 걱정이 밀려온다. 모든 것이 일체가 되어 멋진 리듬이 되려면 얼마나 걸릴지 궁금하다. 소리다운 소리를 위해서는 엄격하게 참을성 있게 집요하리 만큼 끈질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꾸준히 시간을 들이는 일만이 멋진 연주를 할 수 있게 하겠지. 싫증이 날 정도로 반복, 또 반복이 처음 대하는 악기를 길들이는 방법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오늘의 커피는 파나마 엘 카르멘 게이샤. 여성스러운 향기를 가진 커피다. 꽃 같은 향기와 들판의 싱그러움이 있다. 부드럽고 편안한 맛이 느껴진다. 짝 말린 오렌지의 상큼한 단맛, 복숭아 향이 스민다. 재스민의 은근하고 달달한 향이 펼쳐진다. 다른 사람의 시선에 굴하지 않고 자기주장을 펼치는 예민하고 영민한 미뉴 샘을 닮았다. 자신이 향하는 곳이 험지라도 불평하지 않는 미뉴 샘의 의지는 어디서 솟을까, 늘 의문이다. 은 갈색의 커피가 매끄럽다. 잔을 들어 마실 때마다 향기가 흩날리는 커피다. 입안에 우아함이 출렁인다. 살짝 느껴지는 쓴맛은 신맛과 균형이 잡혔다.


나이 들수록 무언가를 배우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래서 배우는 것도 다 때가 있는 법이라 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 팔을 걷고 나서는 일은 무모하기보다 용기 있는 일 아니겠는가. 애써 배웠더라도 쓸모 있는 것은 아니지만 무언가를 적극적으로 배우는 것은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오늘의 커피는 사라질 듯 사라지지 않는 열정을 붙들고 노력하는 태도를 가진 모든 이들과 나누고 싶다. 매일매일 씩씩하게 지내는 사람들에게 어울리는 커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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