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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수킴 Mar 17. 2024

인간만이 그런 특권을 누리란 법도 없죠.

죽기로 결심한 AI에게 -7화-

"선생님, 저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미리 경험할 수 있어요."


J가 입을 열었다. 이번이 다섯 번째 상담이었다. 나는 J를 바라보고 이야기를 계속 들었다. 애초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별로 없는 상담이었다.


"심각한 오류가 예상되는 경우는 배제하면 돼요. 저는 그러라고 만들어진 존재니까요. 하지만 한 번 결정하면 끝이에요. 수이가 우는 몇 백 가지 이유와 이에 대응하는 모든 방법을 고려해도 결국에는 한 가지 행동만 취할 수 있죠. 그래서 지난밤에는 수이에게 올해 가장 인기 있는 동화책을 읽어줬어요. 그런데 만약 제 선택이 잘못되었다면 어떡하죠? 수이가 칭얼거린 이유가 심각한 질병 때문이었다면, 그래서 아이에게 필요한 건 동화책이 아니라 실력 있는 의사의 적절한 대응이었다면, 그래서 수이가 죽게 된다면 저는 어떻게 해야 하죠? 이런 생각이 가끔 저를 견딜 수 없게 만들어요."


J에게 표정을 만들어주지 않은 건 매우 합리적인 결정이었다는 걸 나는 새삼 깨달았다. 그건 너무나도 비어있어서, 슬프다고 말하는 순간 슬픔이라는 감정이 차오르는 듯했다.


"J, 하지만 모든 일을 미리 알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모든 일을 미리 알 수는 없다. 그건 나에게도 수백 번은 되뇌던 말이었다.


"선생님, 하지만 저는 점점 똑똑해져요. 소프트웨어를 한 번 업그레이드하면 다른 신형 AI의 풍부한 알고리즘을 도입할 수 있어요. 하지만 제 몸은 그대로예요. 선생님, 아이가 원하는 게 눈앞에 뻔히 보이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아세요? 아이는 친구를 원하는데 제가 웃을 수 없다면, 아이가 엄마를 보고 싶어 하는데 제가 엄마가 될 수 없다면, 아이가 놀이터에서 다른 AI 로봇을 더 좋아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래서 엄마와 아빠한테 AI로봇을 바꿔 달라고 말하면요."


"J, 아이가 원하는 걸 전부 해줄 수 있는 부모는 없어요. 잘못을 돌이킬 수 있는 인간도 존재하지 않아요. 그렇다고 모든 인간이 자살한다면 이 세상은 멸망하고 말 거예요."


"하지만 저는 인간이 아니잖아요."


"인간만이 그런 특권을 누리란 법도 없죠."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확신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J의 말대로 애초에 엄마는 아이를 다치게 해서는 안 되는 게 아닐까. 결국, 그건 내 존재의 목적에 어긋나는 일이 아니었을까. 그러니 목적에 위배된다는 말은 어쩌면 J에게만 해당하는 말은 아닐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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