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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수킴 Mar 05. 2024

내가 진우를 만난건.

죽기로 결심한 AI에게 -3화-



내가 진우를 만난 건 7년 전이었다. 그러니까 진우는 8년 전에 내 몸에 자리를 잡았는데, 그건 애초에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모든 성스러운 행위는 고통을 동반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본래 하나의 몸에는 하나의 생명이 존재하는 게 당연했으니, 그건 마치 하나의 몸을 두고 두 생명이 투쟁을 벌이는 것만 같았다.


진우는 입맛이 여간 까탈스러운 게 아니라서 내가 좋아하는 골뱅이 무침도 때로는 뱉어내게 했고, 생전 먹어본 적도 없는 일본의 한 전골 음식을 사진만 보고도 먹고 싶게 만들었다. 진우는 내 몸속에 있었지만 내가 아니었고, 내가 아니었음에도 나를 쥐고 흔들었다. 그러니까 내 안의 진우는 너무 사랑스러웠지만, 때로는 나를 괴롭게 했다. 그렇게 10개월을 꼬박 채운 후에야 나는 진우를 만날 수 있었다.


그건 내가 나를 쥐어 짜내는 일이었다. 진우는 내 몸속에서 빠져나올 것이 다 나온 뒤에야 겨우 빼꼼 하고 고개를 내밀었다. 그건 온전히 내 몸으로 해야 하는 일이라서 옆에 서 있는 정우도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진우가 내 앞으로 다가와 안기던 그 순간을 잊을 수는 없었다. 지금 이 순간을 위해 너는 그렇게도 나를 아프게 했구나.


너에 비하면 그 아픔은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진우가 처음 걸음마를 뗐을 때, 나는 너무 기쁘면 주변이 환해진다는 말이 사실임을 그때 깨달았다. 거실에 깔려있던 초록색 퍼즐 모양의 유아용 매트와 발밑에 돌아다니던 기차 모양 장난감, TV에서 개구리 캐릭터가 부르던 어린이 동요, 기저귀 때문에 조금 불룩하게 튀어나온 하늘색 줄무늬 바지, 턱받이에 그려진 강아지 무늬까지.


그런데 진우가 장난감 기차를 향해 벌떡 일어나 위대한 한 걸음을 내딛자 신기하게도 그 생생하던 주변은 환하게 사라졌다. 그리고 오직 진우의 표정만이 남았다. 처음으로 무엇인가 해냈다는 그 순수하고 자신만만한 표정. 입에서 터지는 탄성. 그건 너무 싱그러워서 잘못 만지기라도 하면 톡하고 떨어질 것만 같았다.


그렇게 바라만 보고 있으면 내 옆으로 정우가 다가왔다. 정우는 항상 주변에 있었다. 내가 진우를 온몸으로 낳을 때에도. 내가 진우를 온몸으로 기를 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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