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타인에게 상처받지 말자
서점 알바를 잘렸다. 창고에 쌓여있던 어마어마한 양의 악성 재고 책들을 정리해 줬건만, 다시 평온한 계산대 담당자로 돌아가려던 찰나에 매니저가 호출했다. 그는 사람 관계는 원래 어려운 거라느니, 힘들어도 사회에는 평판이란 게 있다느니 하는 개 쓰잘때기 없는, 인생의 조언으로 포장한 헛소리를 지껄였다. 그리고 마침내 내던진 그 말. "열심히 일해준 건 고맙지만, 오늘까지만 일해달라"는 해고통보로 대화는 끝났다.
자를 거면 미리미리 내치던지, 몇 년에 한 번 있을 창고정리를 시켜서 단물까지 쪽쪽 빨아먹고 버리겠다는 심보가 아주 고약했다. 그래, 고용주도 아닌 내가 무슨 힘이 있어서 대들고 싸우겠나. 적당히 속앓이를 하며 분을 삮혔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다시 폭발할 수밖에 없었다. 아주 어이없는 광경을 목격했는데, 내가 창고정리로 자리를 비울 동안 임시로 데려온 아르바이트생이 그대로 일하고 있던 것이다. 내게는 서점 운영이 어려워 모두 정리 중이라고 말해놓고는. 나는 잘려야 할 운명이지만, 쟤는 그대로 일할 수 있는 특혜란 뭔가? 인의에 대한 신뢰가 한 조각 떨어져 나갔다.
같이 일하던 동료를 통해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내가 잘린 데에는 그년이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아무 접점도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나를 미친놈인양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다녔단다. 그 이야기가 매니저 귀에 들어가며 안 그래도 마음에 안 들었던 나를 그대로 잘라버렸나 보다. 꼬투리 잡고 쫓아낸 매니저도 속 터지지만, 헛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해 대는 저것은 도대체 무슨 문제일까. 얼탱이를 잃어버렸다.
살아가면서 느끼지만, 사실 이런 불합리한 일은 비일비재하다. 대학 조별과제를 대충 인터넷에 긁어다 끝내는 녀석을 다그쳤더니 재수 없는 꼰대가 되어버리고, 성별이 남자라는 이유로 중화요리점 홀서빙에서 잘리고(처음엔 왜 뽑은 것일까?), 눈매가 나쁘다는 이유로 방송 보조 스탭은 다시 불러주는 일이 없었다. 평생을 품행이 성실하고 예의바르다는 말을 듣고 살았어도, 말이 안 통하는 이 사람들 앞에서는 검정고시 출신의 불량아, 싹수가 누런 비행 청년이 된다.
사회에 처음 발을 내디뎠을 땐 내가 부족한 부분이 많아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내가 좀 더 괜찮고 잘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이렇게 일이 번지지 않았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방향 없는 악의가 명확해졌다. 새로 온 아르바이트생이 나에 대한 헛소문을 퍼뜨리지 않았더라도 다른 모종의 꼬투리가 잡히면 나는 그대로 서점에서 잘렸겠지. 대충 낸 과제물을 다그치지 않고 조용히 임의로 수정했어도 어떤 형태로든 나를 미워했을 것이며, 홀 대신 주방에서 일했더라도 사소한 문제를 지적하며 쫓아냈을 것이다.
이들이 떠들어대는 같잖은 이유들은 진짜 내 결점이 아니라, 그치들의 심리적 죄책감을 덜어내기 위한 허술한 방편일 뿐이다. 합리성이나 논리가 전혀 들어가지 못한 그런 이야기들 만으로 속 편하게 살 수 있는 이유는 공감 능력 떨어지는 멍청이들이 세상에는 많고, 타인에게 별 관심이 없어서 그렇다. 사욕에 충실한 사람들은 대개 누군가를 별생각 없이 그냥 싫어한다.
일일이 상처받고 나를 고치기에는 명확한 방법도 기회도 없다.
그래서 적당히 무디게 살아가야만 한다.
누군가 나를 싫어하는 데는 대부분 별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