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자유
오전 9시.
예전 같으면 출근 후 바쁘게 움직임이 시작되는 시간이다.
같은 시간인 지금.
소파에 앉아 여유롭게 커피 향을 느낀다.
같은 커피인데 맛이 다르다.
자유로워야 하는데, 이상하게 텅 빈 맛이다.
퇴사 버튼을 누르던 순간, 모든 게 새롭게 시작될 줄 알았다.
내일 아침이면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질 것만 같았다.
하고 싶은 일도 많았고, 마음속에는 막연한 자신감도 있었다.
하지만 막상 나와 보니 세상은 계속 움직였고, 나의 걸음만이 멈춰 있었다.
자유를 얻어지만, 동시에 불안이라는 불이 켜졌다.
처음엔 자유가 좋았다.
시간이 내 것이 된 것 같아서.
하지만 며칠이라는 시간만에 깨달았다.
시간이 많다고 해서 마음이 가벼워지는 건 아니라는 걸.
하루의 속도가 너무 느려졌다.
시간이 남는 게 이렇게 불편한 일이었나 싶다.
시계를 보면 아침인데, 마음은 이미 저녁처럼 무겁다.
"이제 뭐 하지?"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쉬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괜히 불안해진다.
뭔가를 해야만 살아있는 것 같아서
괜히 청소를 하고, 물건을 모두 꺼내 정리하고,
SNS를 끝없이 보며 '나만 멈춘 건가'라는 생각에 빠진다.
일이 사라지니 나의 역할도 함께 사라진 기분이다.
내가 누군지 소개할 때 회사 이름을 빼면 도대체 남는 게 뭐였을까.
그런데 이상하게, 이런 불안 속에도 작은 안도감이 섞여 있다.
이제야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도
존재해도 된다고 스스로 허락하는 중이니까.
퇴사 전에는 늘 뭔가에 쫓겼다.
해야 할 일, 지켜야 할 시간, 맞춰야 할 사람들.
이젠 그 모든 게 사라지고 나니
하루를 채우는 게 아니라
그저 견디는 법을 배우는 것 같다.
그래도 가끔은 이런 나 자신이 조금 대견하다.
어제보다 덜 흔들렸고, 오늘은 커피를 천천히 마셨다.
작은 변화들이 쌓이면 언젠간 다시 걸을 수 있겠지.
그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하루다.
요즘은 일부러 아무 계획도 세우지 않으려 한다.
억지로 다음 단계를 정하려 하면 오히려 마음이 더 조급해진다.
그냥 잠시 멈춰서, 이 낯선 자유를 조금씩 익혀보려 한다.
멈춰 있는 동안 들리는 소리가 있다.
그동안 너무 시끄러워서 듣지 못했던 나의 목소리.
그게 어떤 말들을 하는지,
이제야 조금씩 귀를 기울여보려 한다.
당당하게 내민 사직서로 얻은 귀한 시간이
나를 좀 더 강직하게 만들어 주길 바란다.
어딘가에 속한 내가 아닌,
그냥 내 이름 석자를 멋지게 소개할 수 있는
내가 될 수 있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