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꾸짖는 세 가지 다른 시선

금빛 침묵의 응시

허물어진 벽면,

마멸된 황금 조각들 사이로

시간의 속도를 잊은

세 개의 시선이 머무는 아야 소피아(Hagia Sophia)의

데시스(Deesis) 모자이크를 만난다.


오직 다음의 목표를 향해

능률복음과 효율성의 노예가 되어

광란의 질주를 거듭하는

기계적 초침의 도시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지금의 무게와

시간의 밀도를 묻는 듯하다.


왼쪽에는 스스로를 돌보지 못한 채

달려온 것에 대한 위로를 전하는 마리아의 슬픔,

가운데에서 결과보다 과정, 산물보다 부산물,

존재 자체에 대한 긍정을 강조하는 그리스도의 응시,

오른쪽에는 삭막한 현실 속에서

잃어버린 본질을 찾는 노력을 주문하는 요한의 표정


낮게 숙인 서글픈 성모 마리아의 고개는

효율의 칼날에 베여 소리 없이 탕진되는

우리들의 마른 영혼을 대신해 짓는 슬픔


전쟁 같은 삶의 회로애락을 잊지 않고

자신의 몸속으로 새겨 넣는 가냘픈 연민이자

무심한 가을밤의 세레나데를 희망찬가로 기리며

여전히 멈추지 못하는 죄를 향한 간절한 기도다.


그리스도가 보여주는 중앙의 자애로운 눈동자

얼음 밑을 흐르며 휘어지고 넘어져도

한 많은 시냇물을 위로하며

성취의 정점을 향해 수직으로만 치솟는 욕망을

잠시 멈춰 세우고 거리의 현자들 목을 축여 주는

속 깊은 마중물 같은 응시


복음서를 든 왼손과

축복을 내리는 오른손 사이에서,

마음이 품은 허망한 열기를 식혀

허황된 꿈에 젖어 허망한 한 방을 기대하는

철부지 귀뚜라미의 애처로운 울부짖음을

조용히 꾸짖으며

삶은 정복해야 할 목표가 아니라

그저 온전히 존재해야 할

신비임을 엄숙하게 선언한다.


광야의 거친 숨결을 간직한 세례 요한은

목적지조차 알리지 않고

탕진했던 시간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허공을 무대로 춤을 추는 진눈깨비처럼

성공이라는 신기루에 매몰된 우리를 향해

고독한 수행자의 자리를 지킨다.


사납게 달려오는 눈보라처럼

목적을 상실한 채

앞만 보고 달리는 현대인들의 군상 등 뒤에서

조용히 어깨에 손을 올리며,

진한 회색빛 그리움에 녹여 다독거리는

가없는 한마디의 조용한 죽비이자

다가가지 못하는 안타까움에

머뭇거리는 사무친 눈발의 따듯한 위로다.


마멸된 대리석 데칼코마니 사이로 흐르는 이 고요는

속도가 앗아간 사색의 빈자리에서

생각의 실마리를 붙잡고

한순간이라도 추억의 한 페이지로

장식하려는 죽어가는 볼펜의 몸부림이자

끝을 모르고 치솟는 광란의 속도를 떨어뜨리려는

구겨진 종이의 어설픈 시름이다.


이 거룩한 멈춤 앞에 서서야

비로소 화살처럼 날아가며 탕진했던

크로노스의 시간을 숙고해보고

남루한 인생이어도 나무라지 않고

언제나 두 팔 벌려 안아주는

구름같은 벌판에서 숨을 고르기 시작한다.


아야 소피아 모자이크.jpg


2026.2.3.일 터키 이스탄불의 아야 소피아(Hagia Sophia) 내부에 있는

'데이시스(Deesis, 간구)' 모자이크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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