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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사이 Nov 18. 2024

가난의 블랙홀, 희망의 빛을 찾아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강지나 지음)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 다른 불행을 안고 있다’ <안나 카레니나>, 톨스토이


그들의 가난을 감히, 안나 카레니나처럼 비련의 사랑 따위에 빗댈 수는 없다. 가난과 사랑, 모두 삶을 좌우할 수 있지만, 전자는 선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의 가난한 청(소)년들은 좀처럼 아물지 않는 멍투성이 몸을 이끌고 살아간다. 몸과 마음은 집, 학교, 거리에서 흠씬 두들겨 맞는다. 어루만져 줄 따뜻한 손길이 없다. 손 한 번 잡아주면 구원받을 수 있다는 듯 간절한 눈길로 애원하지만, 자본주의 세상은 약자를 무시하고 착취하는 하이에나 소굴이다.


가난을 증명한다면, 도움의 손길을 받을 수 있으니 그나마 사정이 좀 낫다. 그러나 증명할 기회조차 없다면, 시퍼런 몸을 차디찬 세상에 내던진 채 갈기갈기 찢길 수밖에 없다.


아이들은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먹고 자란다. 가족이 세상의 전부인 아이들은 가족에 터 잡아 세상을 마주할 용기를 얻는다. 부모 손을 붙잡고 한 걸음, 부모 손을 떼고 뒤돌아 보며 한 걸음, 부모가 뒤에 있다는 믿음으로 앞을 보며 한 걸음, 또 한 걸음. 이렇게 아이는 자란다.


그러나 가난은 가족 사이의 관심과 사랑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다. 아이들은 부모를 바라보지만 부모는 다른 곳을 본다. 아이를 향할 여력이 없다. 부모는 세상이라는 전쟁터에서 가까스로 버티며 눈물 젖은 빵을 가지고 돌아온다. 그마저 가족 모두 먹기에는 적은 양이다. 굶주림은 반복되고, 부모는 결국 자신마저 돌볼 수 없는 상황에 이른다. 아이들의 보호막이 점차 사라진다. 아이들은 부모 없이, 겁에 질린 채 밖으로 한걸음 내딛는다.


세상은 무자비했다. 사자 앞에서 떨고 있는 아기 영양처럼, 알 수 없는 두려움 앞에 무기력할 뿐이다. 어린 영혼이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된다. 최저임금으로 노동착취를 당하거나, 술, 노래방, 그리고 취객절도와 성 매매까지 난폭한 소용돌이에 쉽게 휩쓸린다. 외로운 하이에나들이 서로의 상처를 핥으며 무리 짓는다. 자신의 삶에 지울 수 없는 생채기를 낸 채. 성인이 되면 달라질까. 가족이 있다면, 부양에 대한 압박에 시달린다. 밑 빠진 독에 삶을 갈아 넣는다. 가난한 가족은 아이와 함께 몸집을 키운 듯, 멍에가 되어 삶을 더욱 옥죈다. 결국, 가족을 위할 것인가, 나를 살아갈 것인가 선택의 기로에 선다. 이제 진정으로 혼자가 된다. 누가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정상’은 상대적이므로, 누구도 규정할 수 없지만 대다수가 자연스럽다고 믿는 쪽이 ‘정상’이 된다. ‘정상 가족’이라 말하는 순간, ‘비정상 가족’이 생겨난다. ‘비정상 가족’은 부자연스럽다고 믿는다. 믿음은 편견을 넘어, 강요가 된다. 혼자가 된 청년은 ‘정상 가족’을 꿈꾼다. 대다수의 일원이 되고 싶다. 가난에서 태어난 <웃는 남자> 그윈플렌은 ‘사랑’을 갈구한다. ‘정상 가족’을 만들어 과거를 덮어쓰고 싶다. ‘웃지도 못하는 남자’는 가족을 포기하고, 평생을 홀로 살아가기로 다짐한다.  


무엇이 그들의 결핍을 보상해 줄 수 있을까. 저자는 원인 분석부터 제도적 해법까지 구체적으로 고민한다. 청소년 범죄를 자극적으로 상품화하는 언론의 행태를 지적하며, 왜곡된 시각을 바로잡으려 노력하는 동시에, 가난의 수렁에 빠진 아이들을 구할 수 있는 접근법으로서 ‘자아정체감’과 ‘진로정체감’을 다뤄야 한다고 말한다. 즉, 부정적 가치관에서 벗어나 자신들이 살고 싶은 삶을 찾도록 유도하자는 것이다. 이 책의 지현, 우빈, 그리고 연우의 사례가 그러했다.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가난한 사랑 노래>, 신경림


그때는 그랬다. 하지만 이제 세상은 풍요로워졌다. 가난 속에 태어난 것은 죄가 아니다. 물질이 부족했다고 마음마저 피폐한 것은 아니다. 적어도 그들에게 가난을 증명케 하지는 말자. 그들 역시 동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이자, 미래를 이끌 주인공이다. 그들의 자존감과 정체성이 곧 우리의 미래가 될 것이니, 적어도 읽고 쓰는 자들이라도 관심과 사랑을 모아 세상을 달구어, 따스한 온기로 온몸을 뒤덮은 멍과 생채기를 치유하면 좋겠다.


세상이 각박할수록 다급해진다. 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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