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먼스 이어 <죽지 않은 연인에게>
나는 언제나 너에게
내 모든 걸 들키고 싶은 사람
나는 입술색이 지워진 줄도 모르고 안겨 있어
오늘 밤은 나의 부끄러운 것을 가려줘서 좋아
아침이 밝아 오면 지금은 먼지만 쌓인
지울 수 없는 사건이 되겠지
이 시간은 시대가 될 걸 알아요
우리는 이불 속에 기록되겠죠
문자가 아닌 향수로 쓰여져서
우리 둘만 해석을 할 수 있어요
삶에서 기록으로 남길 수 있는 사건이 얼마나 될까?
대부분의 중요한 것들은 기록 없이 기억 속에 무형으로 남지 않았던가. 역사서에 기록된 사람들의 기록 외 시간은 어땠을까? 수많은 삶의 외전들은 죽은 이의 기억으로만 남아 구전조차 되지 않은 채 그저 ‘있었던 일’로서 그 가치를 다 하겠지, 여전히 소멸되지는 않은 채.
그럼에도 나는 이 시간이 시대가 될 걸 알아- 새벽녘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기울였던 술잔, 그 시간 동안 무수히 지나 보냈던 자책들, 지난했던 유년 시절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연민과 사랑을 느꼈던 시간, 그 시절 내가 얼마나 순진했던지 깨달으며 흘려 보냈던 마음들, 언제 아팠냐는 듯 상처 받고 상처 주던 악순환을 끊고 새 흐름을 만들겠다는 다짐, 다짐을 지키지 못할까 불안하고 무력해졌던 순간들, 그럼에도 서로의 과거를 위로하고 미래를 응원하며 눈물 흘렸던 시간, 그 모든 결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안과 동시에 회피했던 그 모든 시간들까지.
우리같은 미생들의 시간은 기록되진 않을지언정 서로의 기억 속에 시대로 남아 하나의 연대기가 되지 않았던가.
셰익스피어는 늘 자기 집에 자주 놀러오던 손님들에게 첫 번째 침대를 내어주고, 본인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두 번째 침대에 잠들었다고 했다. 어떤 시간은 기록으로 내보이지 않고 서로의 것만으로 남겨두고 싶었겠지, 그래서 더 애틋한 무형의 기록이었겠지. 그가 죽고 나서도 두 번째 침대 위 두 사람이 몸을 뉘었던 시트의 주름과 땀얼룩은 그대로 남아 남은 세월을 지켰겠지- 상대 몫의 베개를 여전히 남겨 두고서.
내게 찾아왔던 외로움은 저주였을까, 혹은 언젠가 밝게 피어나려는 태동이었을까? 기록 하나 남지 않고 지나가버린 시간이라도, 그게 나를 사랑할 줄 아는 인간으로 만들어주었단 걸 알아- 아무리 노력해도 죽지 않는 당신과의 시대를 지남으로써 나는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으리란 외로운 결심을 번복할 수 있게 되었고, 아무에게도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겠다는 오기를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다 흘려 보내고 새로운 시대를 기대할 수 있게 된 거겠지?
비록 나는 아직도 술 없이 잠들지 못하는 못난 사람이지만, 기록되지 않은 그 밤의 시간 동안 앞으로 있을 밝고 사랑스러운 시대를 기대할 줄 아는 사람이 됐으니, 이런 마음이야 말로 그대가 나에게 남긴 최고의 유산 아니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