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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희 Jun 22. 2019

[하루-한편] 무기력의 한복판에서

[하루에 짧은 글 한 편] 2019년 6월 22일 토요일, 59번째 글


졸업식을 치른 지도 벌써 4달이 지났습니다. 여전히 대학가 근처에 살고 있어서 한 명의 사회인이라기보다 학생이라는 감각이 미처 가시지 않았지만, 분명한 건 더 이상 이전과 같지 않을뿐더러 대학교에 관련되어 있는 이벤트와 온갖 소식은 남의 이야기에 불과하죠. 요맘때면 기말고사 탓에 한참 정신이 없다가, 과제와 발표, 시험의 굴레로부터 해방되어 안도의 나날을 맞이하여 이제 막 한숨을 돌렸을 텐데. 고통받던 시절이 불과 반년도 채 되지 않았건만, 마치 10년도 더 된 옛날 일처럼 느껴집니다. 그 순간이 지나면 모든 게 아스라이 멀게만 느껴집니다. 그렇게 인생의 매 국면을 그저 떠나보내기만 하지는 않았나 생각에 잠깁니다.


지금껏 제각각 다른 소재로 글을 써왔지만, 반복되어왔던 주제가 하나 있습니다. '지금' 혹은 '인간관계'에 대한 것이었지요. 고민의 실체도 모르던 중학교-고등학교 시절을 지나, 대학에 입학하고서는 어렴풋게나마 마음속 응어리의 형체를 마주하고, 내내 끌어안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깨닫지 못하던 시절을 지났지만 욕망을 분명하게 직시했을 때는, 이미 늦은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우습지요. 그간 몇몇 글에서는 '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해야 한다.'라고 했지만 정작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쉽게 그런 말을 뱉어놓기 어렵습니다. 좀 더 일찍 할 걸, 그때 했었더라면 좋았을 걸. 밀려드는 후회를 이겨내며 키보드 앞에 앉습니다.


해오고 있는 것이 무의미하게 보이고, 이제라도 하자니 무슨 소용인가 싶을 때가 얼마나 많았는지. 그때의 참담함은 뭐라고 표현하기도 힘들죠. 끈적끈적한 액체에 전신을 담근 듯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정해지지 않았는데 계속 걸음을 옮겨야 하듯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지요. 벗어나려 할 때마다 더욱 깊은 늪에 잠기는 기분, 네. 일종의 무기력이죠. 그렇게 되면 마치 절전이 된 것처럼, 머리를 텅 비우고 게임을 하거나, 하염없이 잠을 자는 게 며칠이고 이어집니다. 아차, 언제까지고 이 상태로 있을 순 없겠다, 겨우 정신 차려보지만 늦었다는 느낌이 찾아오면 또다시 울적해집니다. 그래도 달라진 게 있다면 어떻게든 해야하는 일을 마주하고, 쉽게 돌아서지 않는다는 거겠지요.


자신이 내팽개친 인생을 누가 책임져주겠습니까. 언제까지고 부모의 탓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구요. 하여튼 살아가야 합니다. 기왕이면 스스로 가장 납득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능한한 즐겁게. 뭐, 이렇게 말해놓고도 대체 어떻게 살아야하나 그 구체적인 형태는 떠오르지 않습니다. 굉장히 막연합니다. 그러나 손에서 놓지 않기 위해서 희미한 인상으로나마 어떻게든 붙들어 놓고 있는 거지요. 이대로는 안 되니까요. 좀 안 될 수도 있겠지만, 영영 아닌 채로 있어서도 곤란하죠. '나답게 살자'는 말을 주워섬기고 싶지는 않습니다. 아닌 건 아닌 거야. 뭐라도 해야지. 자포자기를 자포자기한 거라 해야하나요.


글에서 힘 빠지는 소리를 늘어놓지 않고 싶어서 글쓰기를 멀리하는 동안 어떻게 써야하나 꽤 고심했지만 '지금'을 분명한 모습으로 남기려 합니다. 언제나 만전의 상태로 있을 수 없듯이, 항상 기분이 좋을 수만은 없겠지요. 그런 상태만 골라서 글을 쓴다거나 일을 할 수도 없을 거구요. 한 글자, 또 한 글자. 억지스럽게 글을 이어나갑니다. 좋은 글만 남기고 싶은 것도 욕심에 불과하겠죠. 그동안에도 항상 흡족한 글을 써온 것도 아니었구요. 불만족스러운 순간에도, 멈춰서고 싶은 순간에도 한 걸음 내딛어봅니다. 이정도면 그래도 썩 나쁘지는 않았다고 토닥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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