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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희 Jun 26. 2019

[하루한편] 전쟁

[하루에 짧은 글 한 편] 2019년 6월 25일 화요일, 61번째


오늘은 6월 25일이었습니다.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전쟁은 1953년 7월 27일에 휴전 협정 조인 전까지 장장 3년간 진행되었습니다. 한 민족이 남북으로 갈라져,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눴던 게 60년도 더 된 옛날이다보니 막연한 과거의 일로 느껴지지만, 전쟁의 위협은 여전합니다. 이번 정부에 들어서 북한과의 관계가 겨우 숨통이 트이나했더니 그것도 잠시였지요. 북한을 둘러싼 국제 정세는 오리무중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전쟁의 가능성을 그다지 염두에 두지 않고 일상을 이어갑니다. 그도 그럴 게 전쟁은 '가능성'일 뿐 언제 닥칠지 모르지만 눈앞에 놓인 삶의 갖은 문제들부터 해결해야하니까요. 


대략 이런 느낌이죠.


그러니까 북한이 발사체를 발사하든,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성명을 내오든, 무력을 동원하여 도발을 해오든 우리는 삶을 지속해나갈 수 있습니다. 정말로 오늘 당장 포화가 쏟아져 목숨이 사라지더라도, 핵마시일이 상공에 떨어지는 그 순간까지도. 하여간 우리의 삶이 계속되어야 한다는 건 변함없으니까요. 더욱이 전쟁이 끔찍하다는 것을 '알고' 있을 뿐, 감각해본 적은 없지 않습니까. 온몸으로 한국전쟁의 한복판을 지나온 이들이 이제 몇이나 될까요. 교육을 받았다 하더라도 그게 쉬이 실감할 수 있는 영역인가요?


위키피디아에 올라온 한국 전쟁 사진. 인천상륙작전의 모습입니다.


전쟁이 어떤 모습인지는 결코 알 수 없습니다. 전쟁을 실제로 겪기 전까지는 말이죠. 제아무리 다큐멘터리와 영화에서 전쟁을 목격해도, 심지어는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현장을 찾아간다 할지라도 그것을 두고 전쟁을 경험했다 하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어떨 것이다하고 상상해보는 건 가능하겠지만 인상의 나열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에도 시큰둥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영향이 우리에게 있을지조차 가늠하기 어려우니까요. 얼마나 끔찍할지, 아니, 인지를 넘어선 현실의 무거움은 도저히 떠오르지 않습니다. 


딱 한 번, 막연하게나마 그 무서움을 느꼈던 순간이 있습니다. 군대에서 총을 쥐고, 처음으로 사격을 해본 날, 전쟁은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겠다고 느꼈지요. 고작해야 한 번의 손가락질로 인간이 죽을 수 있다니. 이렇게도 쉽게 목숨을 앗아갈 수 있다니. 타인의 목숨뿐만이 아니라, 하물며 나의 목숨도 총성이 들리고서 잠깐, 순식간에 사라져버린다니. 놀라운 건 사격이 반복될수록 그 행위에 무뎌진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물론 사람을 겨누고 쏴야하는 처음엔 또 다르겠죠. 이내 익숙해지고 말겠지만요.  


절대로 전쟁은 반복되어선 안 될 겁니다.


전쟁의 참상을 모르는 것이 차라리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모르는 채로 있어서 전쟁의 무서움까지 잊어서는 안 되겠죠. 전쟁은 결코 다시는 반복되어서는 안 될 겁니다. 물론 지금 지구상에는 여전히 전쟁에 놓여있는 곳이 있습니다. 선진국의 시민들이 그저 수사로만 존재하는 '전쟁' 같은 일상을 보낼 때, 누군가는 정말로 전쟁의 한복판에 놓여 목숨을 걸어야합니다. 그렇기에 이 시대에 더이상 '전쟁'이 없다고 말해서는 안되겠죠. 그렇다고 무엇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 아스라이 멀게만 느껴지는 서로간의 간극을 오늘 하루만큼은 분명히 실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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