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준희 Jun 27. 2019

[하루한편] 여름 더위와 에어컨

[하루에 짧은 글 한 편] 2019년 6월 27일 목요일, 62번째


6월 말이 다가오니, 여름이라는 게 실감이 납니다. 낮에는 얼마나 후덥지근한지, 창문을 열어놓고 선풍기를 틀어도 바람이 불 때만 잠깐 시원하고 금세 방안이 열기로 가득 찹니다. 격렬한 운동을 한 것도 아닌데 온몸이 끈적끈적하고, 샤워를 하고 나오면 그 순간만 개운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찝찝한 느낌이 스멀스멀 등을 타고 올라옵니다. 이거 참, 도대체 어쩌라는 건지. 드디어 '그것'을 써야만 하는 순간이 왔습니다. 이 계절에 빼놓아선 안 되는 물건. 여러모로 배덕감이 들지만, 도저히 틀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자신(?)이 없기에 일단은 사용하고 보는 바로 그것. 바로 에어컨입니다. 워낙 장황하게 설명해서 말하기도 전에 감이 오셨겠지만 말이죠.


보기만 해도 시원해지는 기분입니다.


에어컨을 틀지 않고 버티자고 마음먹었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프레온 가스를 사용하지 않아 요즈음의 기종은 오존층을 파괴하지는 않는다고는 하는데, 문제는 그 자리를 대체한 물질도 온실효과를 부추긴다고 하여 더워서 틀었던 물건이 결과적으로 더위를 불러오면 그것이 무슨 부조리인가 싶어 최대한 사용하지 않는 선에서 생활을 하려 했지요. 전기세가 만만치 않게 나간다는 것도 이유 중에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선풍기만 의지하기에는 이 놈의 더위가 어찌나 가혹하던지. 참다 참다 에어컨을 틀었을 때, 주변 공기가 서늘해지는 그 감각이 얼마나 감미로운지(?). 아시는 분은 아실 겁니다. 한 번 그런 쾌적함을 경험하면 도저히 에어컨을 틀지 않고 지내던 시절로는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이제는, 그 시절로 돌아가려면 많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혹은 고지서에 찍힌 금액을 보고 놀라거나...


새삼스럽게 이 자리를 빌려 에어컨을 발명한, 윌리스 캐리어 선생께 감사를. 선생이 아니었으면 더위 탓에 얼마나 많은 사건사고가 일어났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합니다. 물론 에어컨으로 인한 환경파괴도 감안해야 하겠지만, 현대사회의 전영역에서 벌어지는 대규모 환경파괴와 불합리를 감안하면 에어컨 정도야 애교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 언젠가 인류, 정확히는 후손들에게 돌아갈 ''이기에 심각한 문제긴 합니다. 당장을 편하고 싶어서 일단은 에어컨을 틀고 봤지만, 냉방기가 없었던 던 시절도 어떻게든 살아왔던 걸 생각하면 인간은 변화에 너무나 빠르게 익숙해지고 그 전의 삶을 깡그리 잊어먹는 듯도 합니다.

 

오오.. 윌리스 해빌랜드 캐리어.. (출처 -위키백과)


이맘때면 폭증하는 전기 수요로 인한 블랙아웃(대규모 정전 사태)과 전기세 누진제에 관한 뉴스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또한 지구 단위의 기후 변화에 대한 우려는, 하도 반복되다보니 아예 기억 속에서 잊혀진 것 같기도 합니다. 문제는 이 모든 게 '실시간'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가능성이 꽤나 높다는 점이죠. 그렇다고 에어컨을 끄자니, 현실적으로 그것도 어려운 노릇입니다. 더욱이 나 한 사람 틀지 않는다고 이게 티는 날까 싶은 것도 문제입니다. 이런 종류의 일이 다 그렇듯이, 어느 누구도 그 노력의 갸륵함을 알아주지 않을 뿐더러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한 힘든 싸움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정말 대단한 일인 건 맞는데, 이 뜨거움은 배겨낼 수가 없습니다.


더운 게 너무 당연한 시기에 찬바람을 맞으며 누리는 호사. 멀지 않은 미래에, 당장 내년만 해도 더욱 심한 무더위로 돌아올 거라는 걸 아는데, 차마 리모콘에 손이 가질 않습니다. 창밖에도 이웃집 실외기가 분주히 돌아가고 있고, 길거리 어느 매장이나 공공기관의 에어컨도 쉴새없이 돌아가는데, 나라고 아득바득 참아야 할 이유가 있나 싶고. 번민은 그리 오래 가지 않습니다. 적당히 서늘함이 느껴지는 공기와 그 상쾌함은 세계 와 환경에 대한 걱정을 씻어내버립니다. 어디 에어컨 뿐만이겠습니까만은, 한 개인의 삶에도 이렇게나 많은 것들이 희생되야한다니 아찔하기도 하고, 도덕적 우월감 같은 허영심에 젖고 싶어 이러나 싶기도 하고. 참 복잡한 기분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하루한편] 전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