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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희 Jul 31. 2019

[하루한편] 또 한 번의 일상

[하루에 짧은 글 한 편] 2019년 7월 31일 수요일, 65번째


글로 찾아뵙는 것도 한 달만 입니다. 핑계를 늘어놓자면 끝이 없는 법이니, 가까운 시일에 그동안의 사정에 대해 이야기하는 글을 쓰는 걸로 대신하기로 하고, 오늘은 모처럼의 [하루한편]에 집중하겠습니다. 지나간 7월 한 달의 생활이 썩 건강하진 않았던 관계로 오늘도 새벽 6시에나 겨우 잠이 들었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오후에나 겨우 정신을 차려, 비몽사몽인 채로 미적미적 일어났을 텐데 어찌 된 일인지 오늘은 얼마 잠들지 못하고 오전 11시쯤에 정신이 들었습니다. 뭐라 표현하긴 어렵지만 늘상 이어져오던 날들과는 다른 느낌. 그 순간 불현듯이 머리를 스쳐 지나간 단어. 정전. 지난번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던 덕에 깨달음도 빨랐죠.


곧장 문을 열고 방을 나서서 동네부터 확인했습니다. 주변을 둘러봐도 소란이 없는 걸 봐선 이 동네 전체가 아니라 여기, 이 방에만 일어났다는 소리인데……. 단순한 사고인가 싶어 차단기를 다시 올렸지만, 밖에서 픽-하고 터지는 소리와 함께 얼마 가지 않아 전기가 나가더군요. 뭔가 이상했습니다. 다시 한번 차단기를 올리고 밖으로 나가보니 외부 등과 이어진 전선에 합선이 일어난 모양이더군요. 차단 원인을 알아냈지만 혼자서 뭘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겠다 싶어서, 아래층 주인댁으로 향했습니다. 몇 년째 같은 원룸에 살면서도 집주인 분들과는 왕래가 없어서 여러모로 어색하더군요.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고쳐야죠.


주인댁에 이야기를 해놓았지만 전기 기사님은 저녁이 다 되어서 도착하셨습니다. 한 시간 정도 걸릴 거라 예상했던 사태가 길어지니 벙찌게 되더군요. 그렇다고 짜증을 내본들 달라지는 것도 없고. 불이 꺼진 집안을 이리저리 서성이다 더위를 참지 못해 카페에 피신하고 그랬지요. 오셨을 때의 그 반가움이란! 사태 해결까진 30분도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몇 가지 정황을 확인한 후 신속히 상황을 파악하고 조치에 들어가시는 모습이 어찌나 믿음직스럽던지. 한나절 남짓 이어졌던 정전이 막을 내린 순간이었습니다. 길다고 생각하면 길지만, 짧다면 짧은 그 잠깐의 정전 동안 별에 별 생각이 다들었지요.


문명 사회에 살면서 누려왔던 것들은 당장 전기만 끊겨도 불가능해진다는 사실. 촛불로 전등을 대체할려고 해도 그 촛불을 구할 가게가 더이상 동네의 구멍가게들, 철물점이나 잡화점이 아닌 편의점과 다이소 같은 매장으로 바뀌었다는 것. 그래도 드문드문 명맥을 이어가는 가게들이 있으니, 혹가다 이용할 일이 있을텐데 그런 곳에선 현금만 받으니 현금을 들고다닐 필요가 있다는 것. 그 현금조차도 쓸 수 없을 때는 대체 나라는 인간이 뭘 할 수 있나하는 생존과 결부된 가정까지. 쓸데없는 걱정이라 치부할만한, 사고의 연쇄가 한바탕 머리를 휩쓸고 지나갔지요. 지금은 평온하기 짝이 없습니다만.


구태여 한 마디로 정리해보자면 평온한 일상을 영위한다는 게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지를 실감할 수 있었던 하루였습니다. 그러니 삶에 감사하자는 류의 메시지로 글을 마무리하려는 건 아닙니다만, 익숙함에 젖어서 그 당연함이 당연하지 않다는 걸 놓치고 있지는 않았나 돌아봅니다. 7월도 끝나가는데 뭔가 전환점이 생긴 느낌도 드네요. 8월부터는 그간의 게으름도 털어내고 좀 다르게 살아보려 합니다. 일상이 그저 반복되게끔 하지 않도록 말이죠. 여러분은 잘들 지내셨나요? 다시 한 번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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