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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희 Oct 02. 2019

건강한 뒷담화는 가능할까

[하루에 짧은 글 한 편] 2019년 10월 2일 수요일, 75번째


때로 가만히 앉아 지난 하루 동안 저지른 실수, 혹은 그 순간에는 인지하지 못했지만 하지 않았어야 할 일들에 대해 떠올리곤 합니다. 그러던 중 뒷담화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지난 하루, 혹은 그동안 뒷담화를 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까. 혹은 뒷담화를 했다면 어디까지는 괜찮고 어디서부터는 안 될까.


뒷담화. 참 묘한 느낌을 주는 단어입니다. 보기만 해도 나쁜 짓을 저지른 느낌이 듭니다. 어떻게 만들어진 단어인지도 쉽게 유추해낼 수 있습니다. 뒷 담화. 앞에서 하지 못할 말을 뒤에서 한다는 거겠죠. 누군가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 사람이 대화에 함께하고 있지 않는다면 그게 '뒷담화'일 겁니다.


이봐, 내가 할 이야기가 있는데 말이지. 그 사람 말이야... (속닥속닥)


앞에서 하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요. 보통은 면전에다 대고 할 수 없는 말이라서 그럴 겁니다. 또한 나보다 직위가 높다거나, 나이가 많다거나 등등. 여러 조건을 따졌을 때 감히 꺼내지 못하는 상황이 있으니까요. 그 외에도 재정적, 심리적, 감정적으로 불이익을 감당해야 한다면 뒤에서 하는수밖에 없겠죠. 


그래도 앞에서 하지 못한다고 다 '나쁜' 말인가요?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뒷담화에 대해 검색해보면 '험담'이라든지 '헐뜯기' 같은, 부정적 뉘앙스가 뒤따르는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브런치에서 제공하는 맞춤법 검사에서 뒷담화를 철자 오류로 인식해 험담으로 고치려한다는 거겠죠.


그럼 뒷담화는 도저히 좋은 의미로 쓰일 수는 없을까요? 문자 그대로 '뒤에서 나오는 이야기'의 총칭으로 여기는 거죠. 혹은 이야기의 대상에 된 그 사람이 우연히 자리에 없었다거나. 이것저것 의견을 나누다보니 나쁜 점도 이야기하게 되었다거나. 이런, 이미 이건 나쁜 뒷담화, 아니 뒷담화 그 자체가 되고 말았군요.


차라리 이야기의 주제로 타인을 거론하지 않는 게 최선일 수도 있습니다. 이게 불가능해보인다면 그 이유는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겠지요. 관계를 맺고 그 과정에서 공통분모가 되는 집단(직장 혹은 학교)이 생기고 그에 관해 이야기하게 되면 자연히 구성원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게 되니까요. 


타인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기에는 너무나 많이 타인과 연관되어있는 우리.


뭐, 뒷담화가 마냥 나쁜 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뒷담화에 함께하고 있는 사람들은 일종의 유대를 느낀다고 하니까요. 소위 공범의식입니다. 실컷 직장 상사, 학교 선배에 대해 험담을 늘어놓았는데 당사자의 귀에 그 사실이 들어간다면 난처할 겁니다. 최소한 뒷담화에 함께한 사람들끼리는 함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뒷담화에 낀 이들의 연대(?)가 형성되리라는 건 자연스러운 결과겠지요. 당사자도 모르진 않겠지만, 대놓고 추궁할 수도 없습니다. 오히려 특정 인물에 대한 적대감이 쌓이고 쌓여서 공격적인 분위기로 가시화되기 전에 속시원히 털어놓고 해소한다는 차원에서도 바라 볼 수도 있습니다.


뒷담화에 대해서 정리해놓은 허용회 님의 글을 참고해보셔도 좋을 듯 합니다. 뒷담화가 지닌 긍정적인 기능을 1.정보 습득, 2.사회적 결속 강화, 3.스트레스 감소라는 세 가지로 제시하셨는데 굉장히 수긍이 갑니다. 특히나 스트레스 감소에 대한 부분은 곧장 와닿습니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진 않았구나 싶을 때가 있죠.

( 링크 : https://brunch.co.kr/@yonghheo/349 )


이렇게 유용한(?) 뒷담화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이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사람들 때문입니다.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뒷담화를 유발한 당사자에게 알려버리고는 본인은 빠져나가는. 그런 사례는 어디서든 쉽게 찾아볼 있습니다. 이 같은 경우는 뒷담화만은 문제가 아니겠지만요.


이래저래 고민해봤지만 결국 뒷담화는 좋다고 할 수가 없게 되는 셈이군요. 하긴. 굳이 다른 사람에 대해서 떠벌릴 때는 그 의도 역시 의뭉스러울 수밖에 없는 법입니다 하필 그 사람이 없는 자리에서 한다면 그다지 좋은 내용은 아닐 거라고 짐작하게 되니까요. 


가령 이런 건 어떨까요. 앞에서 대놓고 칭찬하자니 쑥스러워서 일부러 그 사람이 없는 자리에서 좋은 말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너무 상상의 나래를 펼친 건가요? 뒷담화를 안 할 수가 없다면 차라리 이를 극복할 방법을 찾아봐야할 겁니다. 마침, 브런치에는 그에 관한 좋은 글이 보란듯이 준비되있더군요.


무루 MuRu 님이 쓰신 글입니다. 그리 길지 않으니 시간을 들여 찬찬히 읽어보셔도 좋을 듯 합니다. 결론만 요약하자면 '그 사람이 설령 없더라도 있다고 가정하고 이야기하라'고 밝힙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윤리의 핵심인 황금률이 떠오릅니다. 다른 사람이 내게 해주었으면 하는 대로 하라. 

(링크 : https://brunch.co.kr/@philosophus/131)


지금 이 순간부터 뒷담화를 하지 않겠어! 다짐한들, 대부분의 신년 계획과 마찬가지로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단이라는 건 늘 그런 법이죠. 차라리 뒷담화를 하게 되는 그 순간, 잠시 멈춰보는 겁니다. 과연 나는 이 말을 정말로 하고 싶은 걸까?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뒷담화에 끼게 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자리를 현명하게 피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뒷담화를 할 생각 없다며 학을 떼는 자세를 보이면 저 혼자만 깨끗한 척 한다며 뒷담화의 화살이 '나'에게로 향할 가능성도 있죠. 무수한 변수가 놓여있는 현실에서 결심을 지켜나가려면 좀체 쉽지가 않죠. 상당히 유연한 대처가 필요할 겁니다. 


모쪼록 뒷담화 그 자체의 유혹과, 뒷담화에 처하게 되는 그 순간. 절제와 지혜를 발휘하시길 바랍니다. 이 세상은 타인을 헐뜯으며 살기에는 너무 비좁으니까요. 무심코 내던진 부메랑이 돌고 돌아서 자신에게 다시 오게 하지 않으려면 애초에 던지지 않는 것만이 정답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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