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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희 Oct 03. 2019

나와는 상관없는 세계를 바라보기

[하루에 짧은 글 한 편] 2019년 10월 3일 목요일, 76번째


여러분은 게임을 좋아하시나요? 저는 꽤 좋아합니다. 하드코어 게이머라고 자칭하기에는 망설임이 있지만, 적어도 리그 오브 레전드(이후로는 호칭을 롤로 통일하겠습니다.)에 한해서는 거침없이 답할 수 있습니다. 브런치에도 그에 관한 글을 썼던 적이 있습니다. 관심이 있으시다면 아래의 링크를 참고해주시길 :)

( 링크 : https://brunch.co.kr/@keepingmemory/65 )


요즘은 게임을 자주 하지 않다 보니, 실제로 게임을 하지는 않지만 소식에 항상 귀를 열어두고 있지요. 특히 저의 관심끄는 대회에 관한 사항입니다. 글을 쓰고 있는 바로 이 순간도, 국제 대회가 진행 중입니다. 매년 이맘때면 전 세계 롤 팬들의 이목이 한곳에 집중됩니다. 바로 LoL 월드 챔피언쉽이죠.


LoL 월드 챔피언쉽, 줄여서 롤드컵은 세계 각지의 뛰어난 팀들이 모여 그중에서도 최강의 팀을 가리는 자리입니다. 제아무리 지역 대회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하더라도, 롤드컵 우승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관련 종사자들에게는 롤드컵에서의 성패로 한 해의 성과가 결정된다는 표현이 있을 정도입니다.


롤 팬들에게는 보기만 해도 가슴이 뜨거워지는 이미지입니다.


고작 해야 게임이라 말하기에는 롤드컵에 쏟아지는 관심은 어마어마합니다. 롤을 제작한 라이엇 게임즈가 밝힌 바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에서 진행된 2018 롤드컵은 무려 대회 기간 동안 1억에 달하는 숫자인 9,960만 명이 시청했으며 결승전만 해도 분당 최고 시청자가 1,960만이었다고 합니다.



더욱 자세한 기록은 리그 오브 레전드 홈페이지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세계대회뿐만이 아니라, 롤에 등장하는 캐릭터로 꾸려진 가상의 아이돌 그룹 K/DA도 유튜브에서 2억 이상의 조회수를 자랑하며 굉장한 인기 몰이를 했죠. 게임에 관심이 없던 분들도 K/DA가 뭐냐고 고개를 갸우뚱하셨을 겁니다.


( 링크 : https://kr.leagueoflegends.com/?m=esports_intro&mod=esports_newsview&idx=1147&p=1&category=&keyword=2018 )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봤다니 믿기지가 않습니다. 올해만 해도 작년과 비슷하면 비슷했지 그보다 적지 않을 듯합니다. 자기가 직접 게임을 하는 것도 아닌데 어째서 남이 하는 게임을 구경하는 데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혈안이 되어 있는 걸까요? 여러 스포츠의 프로리그를 보시는 분들의 심리와 비슷하지 않을까요?


으레 사람들은 남의 일에 별로 관심이 없다고 하지요. 그러나 남이 하더라도, 내가 관심이 있는 영역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질 겁니다. 하물며 아주 잘한다면? 물론 재능에만 주목하는 건 아닙니다. 현대의 프로 스포츠는 그저 운동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 거대한 시장이 되었습니다. 막대한 자금이 투입되지 않습니까.


축구만 하더라도 주급이 몇 억이니, 한 해에 얼마를 버느니 하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립니다. 오죽하면 특정 선수가 부진할 때마다 돈값을 못한다며 팬들이 아우성이지요. 대체 스포츠가 뭐라고 그만한 돈을 들여 운영하는지 모르겠지만, 기업과 시장이 바보라서 그만한 돈을 투자하는 건 아니겠죠.


사람들의 관심은 그 자체로도 돈이 될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그렇다고 사람들이 스포츠를 보는 이유가 그저 홍보가 대단해서는 아닐 겁니다. 그보다 단순한 이유지요. 재미있으니까. 따지고 들면 더욱 근원적인 이유가 있을 테지만, 추후에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여하간 평상시 여타 프로 스포츠에 관심이 없는 저조차도, 월드컵이니 올림픽이니 떠들썩한 시기에는 없던 관심도 생기더군요. 하물며 게임 대회는 두말할 것도 없지요. 국내 리그가 진행되는 기간에는 일일이 모든 경기를 챙겨보지는 못하더라도 수시로 결과를 확인합니다.


지난 9월 11일, 승강전을 마지막으로 마무리된 LCK 서머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누군가의 시선에는 '고작해야' 오락거리에 불과한 게임 한 판한 판의 결과에 울고 웃으며 끝끝내 최후의 1인이 되는 과정. 그 과정은 보고 있는 제삼자마저도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장래의 꿈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역사의 한 순간이 됩니다.


사건이라고는 할 것 없는 인생에서 펼쳐지는 하나의 서사 같습니다. 사람들로 하여 프로리그를 보게 하는 바탕에는 '서사에 대한 동경'이 있다고 봅니다. 물론 모든 인간의 인생에는 서사가 있습니다. 그러나 당사자는 그 사실을 알기 어렵습니다. 바로 옆에서 짧은 기간 동안 굵직하게 펼쳐지는 서사는 분간하기 쉽지요.


영웅이 탄생하고, 누군가 바닥에서 치고 올라 정상에 닿기도 하며, 잘 나가던 이가 몰락하기도 합니다. 모든 순간이 참으로 드라마틱합니다. 이 '만들어진 서사'는 보잘것없어 보이는 일상에 더할 나위 없는 활력소가 되어줍니다. 가늠하기 힘든 인생의 흐름 속에서 비교적 쉽게 가닥을 잡을 수 있는 지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사의 욕망은 곧 불가해한 인생을 파악하고픈 인간의 욕망일 겁니다. 


비록 '만들어진 서사'라고 할 지라도 심심한 위로가 됩니다. 그 세계에 너무 몰입하지만 않는다면 말이죠. 나에겐 나의 인생이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나의 바깥에서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프로 리그라는 서사는, 참 매력적이긴 합니다. 그 매력에 많은 사람들이 매료되는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구요.


저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입니다. 나의 인생도 아닐뿐더러, 그들이 우승을 한다고 해서 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괜히 응원하게 됩니다. 저는 페이커 이상혁 선수가 이번 롤드컵에서 다시 한번 우승컵을 차지하길 소망하는데, 그 배경에는 단순한 팬심을 넘어선 일종의 동경 같은 감각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지난 4월에 썼던 글에서 페이커 이상혁 선수에 대해 글을 쓰고 싶다고 밝혔는데, 그것도 제 나름의 존경(?)을 표하는 방식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말만 할 게 아니라 이번 롤드컵이 끝나거든 결과에 상관없이 꼭 글을 써야겠군요. 이 자리를 빌려 다짐해봅니다.


하여간 10월 3일 개천절, 금쪽같은 휴일을 제각각의 방식으로 보내고 계실 테지요. 저도 하루를 마치면서 롤드컵을 보고 있습니다. 이역만리 타국에서 대회를 진행 중인 한국팀의 분전을 응원해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모쪼록 심신이 편안한 하루가 되셨기를 바라며. 다음 글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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