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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희 Oct 07. 2019

모든 것에는 유통기한이 있다

[하루에 짧은 글 한 편] 2019년 10월 7일 월요일, 79번째


이번 주 일요일, 영화 <조커>를 보러 갔을 때의 일입니다. 학교 선배와 만나서 점심식사를 끝내고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함께 영화를 보자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생활비가 간당간당했던 지라, 점심 식사도 얻어먹었는데 영화까지 얻어보자니 마음이 영 그랬지만 염치 불고하고 영화 예매를 부탁드렸지요.


불현듯이 지갑에 고이 모셔두고 있던 무료 관람권이 떠올랐습니다. 올해 초쯤이었나, 친구가 친척 어르신께서 여러 장을 주셨다고, 영화 볼 때 쓰라며 두 장을 나누어주었는데 정작 지갑에서만 반년 가까이 묵혀두고 있었습니다. 영화관을 갈 일도 드물었지만 그럴 때마다 까먹은 탓이었지요.


지금이 아니면 언제 또 쓰겠습니까. 위풍당당하게 "선배! 무료 관람권이 있으니 이걸로 예매해주세요!"라고 말하며 건넸습니다. 밥값은 몰라도 영화까지는 민폐를 끼치지는 않겠구나 싶어 득의양양해있는데, 돌아온 선배의 말에 얼마나 충격이던지. 그야말로 머리가 띵해지더군요.


이거 유효 기간이 8월 12일까지 인데?


이게 무슨 소리람. 유효기간이라니. 무료 상품권이니 유효기간이야 있을 거라고 예감은 했지만 유효기간을 구태여 확인해본 적도 없었을뿐더러 마음 한 구석으로 막연히 올해 말까지라 여기고 있었습니다. 기어코 영화를 얻어보게 되었습니다. 민망함과 더불어서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진작에 썼어야 했는데!


아끼면 똥 된다는 말이 있지요. 딱 그 짝입니다. 만 원 상당의 상품권이 한 장도 아니고 무려 두 장이나 한낱 휴짓조각이 되어버렸으니. 이거야 원. 양도받은 물건이라 금전적인 손해는 없다지만 상품권을 나눠준 친구에게도 미안하고, 바보 같은 스스로에게 화도 나고. 


화를 가라앉히고 보니 유통기한이라는 건 무료 상품권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물론 제 실수는 바보 같은 일이지만, 계속해서 탓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고 이번 일로 어떤 교훈을 얻을 있을지 고민해보았지요. 응당 번째로 생각은 쿠폰이나 상품권은 닥치는 대로 일찍 쓰자(...)였지만.


인간관계, 감정 따위도 유통기한이 있습니다. 가령 누군가와 싸워서 사과를 해야할 때 어느 특정한 시점을 지나면 사과를 하더라도 관계가 회복될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고백도 비슷한 구석이 있죠. 서로가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고백을 타이밍을 놓치면,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무형의 것들은, 상품권의 경우와는 달라서 유효 기간이 언제까지인지 알 수 없습니다. 만약 알 수 있었더라면 때를 놓쳐서 후회하는 일 따위는 없었을 겁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할까요? 이번 일로 제가 얻은 교훈이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급적 빨리', 너무 서둘러서도 안 되겠지만 뜸을 들이기보다는 가능한 한 빨리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적시를 기다리느라 너무 뜸을 들이다보면, 도리어 때를 놓칠 때가 더 많죠. 그렇다고 성급하게 행동하라는 건 아닙니다. 결국 눈치껏 하라는 이야기나 다름 없지만서도, 한도 끝도 없이 미루지 말자는 이야기죠.


뭐, 요약하면 인생은 타이밍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단순히 타이밍과는 또 다릅니다. 감정, 관계를 포함해서 모든 것들이 끝이 납니다. 아니, 정확하게는 어느 시점을 넘어서면 더 이상 처음과 같지 않습니다. 그게 그 말인가요? 하여간 변하고 말기에 최소한 그런 상황이 되기 전에 할 수 있는 걸 하자는 이야기지요.


상품권이 휴짓조각이 되는 마술(...)을 부리듯이, 시간 앞에서 행복했던 순간도 추억이 되거나 혹은 아무 것도 아닌 순간이 되어버리기도 합니다. 나에게 가장 의미 있는 대상으로 남아있을 때, 그것을 좀 더 아끼고 사랑해야겠지요. 오늘이라는 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하루가 되셨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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