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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희 Nov 19. 2019

게이트 플라워즈의 <예비역>과 창작을 위한 조건들.

내가 좋아하는 음악들

게이트 플라워즈를 알게 된 건 2012년이었습니다. 대학에 들어와 거들떠도 보지 않던 TV를 그때는 열심히 챙겨보았습니다. 다름 아니라 KBS2에서 방영 중이었던 탑밴드2 본방을 사수하기 위해서였죠. 우리나라에 이렇게 밴드가 많았구나 깨닫기도 했고, 독특한 개성을 뽐내면서도 끊임없이 더 나은 음악을 추구하고 있음을 알게 된 순간이었죠.


경연 프로그램 자체가 워낙에 매력적인 방송 포맷이기도 하지만, 락을 좋아했던 저에게 탑밴드2는 참 애착이 많이 가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탑밴드2가 끝난 이후로도 관련 영상을 열심히 찾아보고 다녔죠. 왜 지난 시즌이 진행 중일 때는 몰랐는지 괜히 아쉬움이 들기도 했습니다. 시즌2는 소위 인디 밴드 중에서도 유명한 그룹이 모여 그 자체로 홍보가 되어서 그랬는지도 모릅니다.


시즌1에 출연한 밴드들이라고 뒤쳐지거나 모자란 것도 아니더군요. 애초에 누가 누구보다 낫다는 비교는 어느 시점에서는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취향은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요. 어찌 되었건 경연의 특성상 승자는 가려져야 하는데, 마음에 드는 밴드가 탈락할 때마다 얼마나 마음 아프던지. 이미 결과가 나왔다고 해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어째서 우승을 못했나 의구심이 들기도 했지요.


그만큼 다른 밴드가 잘했다는 방증이기도 하겠지만, 새삼스러이 취향의 문제를 들먹일 수밖에 없는 겁니다. 시즌1에서 비록 우승은 못했어도 제 마음의 No.1은 게이트 플라워즈였지요. 특히나 <예비역>이라는 노래는 군생활에서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가사도 군생활에 대한 은유처럼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어서 빨리 이 순간이 지나가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들었습니다.


난 돌아가지 않아.
뒤돌아 보지 않아.


그러는 사이 드디어 전역을 했고, '예비역'이 되자 거짓말처럼 그 때의 기분도 사라졌습니다. 같은 노래를 들어도 도저히 그때 그 느낌과 같을 수는 없더군요. 군대에서의 기억이 희미해지듯이, 서서히 노래에 대한 감흥도 약해졌습니다. 그러는 사이, 게이트 플라워즈가 해체를 했다는 둥 멤버들은 각각 활동을 하고 있다는 둥, 여러 뜬소식을 접하게 되었죠.



괜히 서글퍼졌습니다. 공연을 가본 적도 없고 앨범도 산 적이 없으니 '팬'이라고 떠들고 다니기도 부끄러운 노릇이지만, 좋아했던 밴드가 생업이든 여타 이유로 더는 활동하지 않는다는 건 무엇인가 끝났다는, 담백한 사실 이상의 충격을 마음에 남깁니다. 다행스러운 건, '게이트 플라워즈는 해체 따위 한 적이 없다'는 소식을 오늘에서야 접했다는 겁니다. 그래요, 좀 더 당신들의 노래가 세상에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낭만이나 좋아한다는 것만으로는 유지해나갈 수 없는 게 창작이고 밴드 활동일 겁니다. 더욱이 당사자도 아닌 제3자가 팬이랍시고 -팬이라고 할 수조차 없지만- 작품 활동을 이어나가달라 종용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겠죠. 문득 창작자의 지속 가능한 활동을 위해서 소비자의 책임과 의무가 얼마나 막중한지도 생각하게 됩니다.


좋아하는 작가가 작품 활동을 이어나가기를 바란다면, '응원과 관심'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합니다. 낭만은 밥을 먹여주지는 않으니까요. 그들도 인간이니까요. 응원을 보낸다는 말 한 마디도 좋지만 가능한 선에서 재정적인 조력을 보태야 하지 않나 고민해봅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저 역시 어서 취직을 해야할 터인데(...) 자기 성찰로 이번 글을 마무리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2NgOXt4gWak

온스테이지에 올라온, 게이트 플라워즈의 예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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