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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희 Feb 07. 2020

누구를 위한 로맨스 코미디인가

영화 <두번할까요>(2019)

영화 <두 번 할까요> (2019년)


영화 <두 번 할까요>는 한 마디로 '아주 특별히 모난 구석 없이, 심심풀이로 볼만한 로맨스 코미디'입니다. 문제는 영화 관객 중 누가 10000원이 넘는 돈을 내고 시간이나 때우러 가느냐는 거죠. 영화를 보는 목적이 시간 죽이기인 분도 있으시겠지만, 제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기왕이면 재미있는 영화를 보고 싶다'는 전제가 암묵적으로 깔려있을 겁니다.


상영 중인 영화 중 아무 거나 적당히 고른 후 시간을 때우는 건 옛말이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영화를 두고 '적당히 잘 만들었다'는 식의 뜨뜻미지근한 평가는 이제와서는 미덕이라고 할 수 없을뿐더러, 차라리 혹평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 <두 번 할까요>가 그럭저럭 괜찮은 영화라고는 했지만, 치명적인 문제가 하나 있거든요.  바로 영화가 대상으로 하는 관객층이 모호하다는 겁니다. 대체 이 영화는 남성 관객 혹은 여성 관객 중 어떤 성별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건가요?


굳이 생물학 성별인 남자와 여자, 이 두 가지 분류로 크게 나눈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 영화의 장르가 하필이면 '로맨틱 코미디'이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인 로맨틱 코미디 장르라면 잠재적 관객을 여성으로 설정할 겁니다. 그렇다면 영화의 만듦새도 여성 관객에 맞게 설계되는 게 합당하겠지요.


이 영화는 서사의 초점은 물론 이후의 전개까지 그다지 여성 관객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습니다. 외려 남성 관객에게 맞춰져 있지요. 선영(이정현 분)에 대한 현우(권상우 분)가 가진 감정이 무엇인지 찾아가는 여정에서 '선영'의 마음을 이해하기란 어렵습니다


선영(이정현 분)

관객에게 있어 선영이란 인물은 나잇값도 못하는 것 같고 제멋대로 굴기 일쑤에 이해 불가능한 존재로 보입니다. 결혼식도 아니고 사람들을 불러놓고 거창하게 이혼식을 하지 않나, 그렇게 대차게 쪽을 줘가면서 이혼을 했는데 전 남편을 불러서 종처럼 부리질 않나. 


선영이라는 캐릭터를 연기학 있는 배우 이정현 님의 연기 덕에 꽤나 경쾌하게 그려지기는 해도, 이 인물은 나름대로의 상처와 복잡한 배경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런 배경이 영화에서는 제대로 드러나지 않으니 문제죠.


더욱이 서사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인 '이혼'이 여자의 no는 no가 아니다, 혹은 여자가 헤어지자 말하는 것은 잡아주길 바라는 것이다 등의 다소간 시대착오적인 발상에 착안한 것도 문제라면 문제입니다. 요즘 시대에 이혼이 흠도 아니라지만, 이렇게 '홧김에' 이혼을 해버리는 이유가 그런 이유라면 아무래도 뜨악합니다. 


한껏 멋을 낸 두 사람의 이혼식(...)


고분고분 말을 따르는 현우도 이해가 안 되기는 마찬가지지요. 대학시절은 물론이고, 과거 선영이 어려웠던 시기를 함께 했기에 쉽사리 관계의 끈을 놓지 못하는, 일종의 죄책감때문일까요? 그가 속옷회사를 다니게 된 연유야 아무래도 좋다지만 현우라는 인물도 도통 납득이 가질 않습니다.


글쎄요, 너무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보면 그뿐이라지만, 서사에 몰입하려면 인물에 이입을 할 수 있어야 할텐데 인물이 납득이 가질 않으니 자연스레 영화를 보는 내내 의구심이 고개를 듭니다. 대체 이 분들은 왜 이러는 걸까요?


현우(권상우 분)


물론 이 두 사람 사이의 연결고리가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영화 초반에는 거의 알 수가 없어요. 어느정도 암시만 될 뿐이고, 후반부에서도 명확하게 드러나지는 않습니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느끼는 특별한 감정, 그리고 끝끝내 다시 만나게 되는 이유는 '사랑'이라는 단어 말고는 이야기 내에서 설명되지 않습니다.


요즘 시대에 이혼 한 두 번이야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이혼을 하고 잠시 멀어져 있던 동안 다시금 관계의 소중함을 되찾아 재혼에 이르는 과정은 이혼이라는 키워드가 자극적이라는 것만 빼면 완전히 로맨스물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죠. 굳이 이혼을 했어야할 필요가 있나 싶습니다.


이러한 영화의 만듦새가 대체 '누구'의 욕망을 충족할 수 있느냐하는 겁니다. 영화에서 종종 드러나는, 현우의 남성미 넘치는 몸매 하나로 여성 관객을 설득하기에는 문제가 있어보입니다. 그렇다고 소중한 이에 대한 의미를 찾는 과정이 일반 관객에게 얼마나 어필할 수 있을지. 첫사랑? 딱히 첫사랑 이야기도 아니니 남성 관객을 설득하기도 힘듭니다.




상철(이종혁 분)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든 굴러온 돌, 상철(이종혁 분)은 안타깝게도 극중에 갈등을 불러오기 위한 장치로써의 기능 외에는 어떤 의미도 갖지 못합니다. 딱히 엄청나게 매력이 있지도 않고, 거시기가 크다는 화장실 농담의 소재, 그리고 두 사람이 다시 만나기 위한 수단일 뿐.


배우의 필모그래피를 이용한 농담은 '잠깐' 웃길 뿐이지, 영화의 내용과 상관도 없습니다. 몰입감을 해치지 않는다면 다행입니다. 배우 권상우 씨와 이종혁 씨가 나왔던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가 70-80년대를 배경으로 풋내 나는 10대의 사랑과 청춘을 그린 영화로 훌륭했을지 몰라도 이 영화가 딱히 그 '정체성'을 잇는 것도 아니니까요. 시답잖은 농담 한 번으로 소비되기에는 꽤 짧지 않은 분량이 할애되니 문제입니다


어째서 선영과 현우, 두 사람이 다시 결합해야하는지 그 이유가 그럴싸하게 드러나지 않는 이상 이 영화는 로맨스도 아니요, 코미디도 아닙니다. 구질구질한 한국 스타일의 우스꽝스런 '로맨틱한' '코미디'의 변주일 뿐이죠. 네, 이 '틱'이 중요합니다.


결코 로맨스 그 자체가 될 수도 없고, 로맨스스러운 느낌이 묻어난 듯한. 어쩌다 한 번 피식, 실소가 나와서 코미디한 영화.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는 신파가 철철 흘러 넘치는 진짜배기 로맨스나, 세련된 감각으로 잘 만들어진 로맨스의 주된 독자가 아니므로 무엇이 '정답'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영화가 무게 중심을 잃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게 보입니다.


오락과 낭만 사이에서 그 어딘가에도 머무르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다보면, 안타깝기도 합니다. 좀 더 잘 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끝끝내 뻔하디 뻔한 로맨스로의 귀결은 도대체 그 전까지 소비된 코미디를 미처 다 용납해줄만큼 절절하지도 않구요.


엄청 시니컬하게 써놓은 주제에 할 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재미있게 봤습니다. 넷플릭스나 기타 vod 서비스를 통해 한 번 보시는 것도 괜찮을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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