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2월 24일 목요일(601일째, D+885)
1.
크로스핏에서 경쟁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경쟁의 대상은 나 자신일 수도 있고, 타인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이를 통해 더욱 성장하려는 목적을 이룬다는 점에서 크로스핏은 상승지향적인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것을 강하게 느끼는 순간은, 과거의 나와 경쟁할 때다. 크로스핏에 존재하는 유명한 와드(WOD : Workout of the Day, 그날의 운동)는 한 번 했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크로스핏을 하는 내내 몇 번이고 수행하게 된다. 그리고 그 때마다 내가 얼마나 발전했는지 점검할 수 있다.
가령 대표적인 와드 중 하나인 Fran의 경우, 2019년 12월 6일 나의 기록은 75파운드와 Pull up으로만 수행해서 9분 23초가 걸렸다. Rxd('처방전에 적힌 대로'라는 의미라고 하는데, 크로스핏에서는 원래 운동에서 수행해야할 기준을 뜻한다고 한다)이 95파운드라는 걸 감안하면, 아직 Rxd도 수행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2021년 1월에는 8분 24초로 줄였는데 마침내 Rxd대로 수행해냈다. 고작 두 달이었지만, 제법 성장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측정했을 때가 2021년 10월인데 무려 4분 40초까지 줄이는 데 성공했다. 나름대로 나와의 경쟁에서 항상 이겨올려고 노력했고, 성공했을 때는 내가 운동을 헛하지 않았다는 안도감과 뿌듯함이 찾아온다.
아직까지는 기록이 크게 줄어본 적은 없지만, 만약 기록이 줄어든다면 내가 운동을 대충했나 싶어서 좀 허탈해질 것 같은 기분도 든다. 그래도 나와의 경쟁이니까 시간이 좀 지나면 훌훌 털어낼 수 있다. 문제는 다른 사람과의 경쟁이다.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다른 사람의 기록을 보고 나면 괜스레 긴장하게 된다.
2.
목요일의 와드는 아래와 같다.
WOD "Bubbles"
For time : 7:38
1-2-3-4-5-6-7-8-9-10
Burpee Box jump Over 30"
*After each Rounds 25 Double Under
이 와드는 지금까지 총 2번을 했었다. 2020년 2월과 2021년 2월, 거의 1년 텀을 두고 한 번씩 했는데 2020년에는 10분 36초가 걸렸고, 2021년에는 그보다 1분 가량 줄여서 8분 57초에 마무리했다. 그래도 1분은 줄였으니 1년간 운동한 보람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이런 식으로 1년을 주기로 돌아오는 와드들은 비슷한 시기까지 운동을 이어오고 있었다면 자신의 성장을 확인하기 좋다고 할 수 있다. 올해 2월에도 어김없이 찾아왔으니, 그동안 내가 운동을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테스트하는 기분이라 살짝 긴장되기도 했다. 내가 와드를 시작하기에 앞서 먼저 이 와드를 수행한 사람들의 기록을 보고 났더니 1년 전의 나보다 빠른 분들도 더러 있어서 긴장은 더 커지기만 했다.
거기다 크로스핏을 다니면서 친해진 동생이 생각 이상으로 빠른 기록을 보여줘서, 이젠 정말 이 악물고 해야되겠구나 싶어서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바로 옆에서 코치님이 엄청난 기세로 와드를 하셨기 때문에 나도 덩달아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운동을 끝냈을 때 작년에 비해서 1분 가까이 줄이는 데 성공했다.
3.
나와의 경쟁이든 타인과의 경쟁이든, 크로스핏을 통해서 배운 가장 큰 교훈 중 하나는 선의의 경쟁은 인간을 성장시킨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인생을 살아오면서 학교에서든 사회에서든 자의가 아닌 타의로 경쟁을 해왔지만, 경쟁이 나를 성장시킨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경쟁이라는 건 그 단어가 가지는 어감만 들어도 신경이 쓰이고, 부담스러운 것이었다.
우연히 시작하게 된 크로스핏에서도, 일정 부분 타의로 경쟁을 시작하게 되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자의로 경쟁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경쟁의 긍정적인 측면을 더 많이 보게 되었다. 그리고 스트레스의 의미도 다시 보게 되었다. 언젠가부터 스트레스라고 하면 무조건 피해야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는데, 모든 스트레스가 마냥 나쁜 것도 아니다.
인간은 주변 상황에서 자극을 받기 마련이고, 그 모든 자극이 바로 '스트레스' 아니겠는가. 스트레스는 변화해야하는 이유, 더 나아져야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크로스핏만의 장점은 아니겠지만, 내 스트레스를 어떻게 대응해야하는지 크로스핏을 통해서 더 배우게 되지 않았나 싶다. 앞으로도 좀 더 크로스핏을 열심히 해야지.
4.
오늘의 결론
1. 경쟁은 때때로 옳다
2. 스트레스는 나쁘기만 한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