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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희 Mar 17. 2019

[하루에 짧은 글 한 편] 2019.3.16

11.  피시방

오늘은 하루 종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사정이 생겨 갑작스레 어젯밤 고향에 내려와야 했고, 점심쯤에 집을 나서 볼일을 보고 나니 저녁, 가족과 함께 식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니 벌써 이 시간입니다. 피로에 절어 침대에 누워 깜빡 잠이 들었다가, 군대에서 휴가를 나온 친구에게 연락이 와 적당히 옷을 챙겨 입고 피시방으로 향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의 주제는 피시방입니다. 현재 시각 오전 12시 24분, 저는 피시방에서 이 글을 작성 중입니다. 지금껏 카페나 집이 아닌 공간에서 글을 써본 적이 없는 것 같아 뭔가 색다른 느낌이 듭니다. 하루쯤이야 넘어가도 누구도 뭐라 하지 않겠지만, 자기 자신과의 약속을 지킨다는 의미도 있고 이럴 때까지 써 버릇하다 보면 또 언제 어디서든 글을 쓰는 습관이 생기지 않을까 싶어서요. 그래도 가벼운 마음으로 쓰고 싶어서 주제도 마침 여기 지금, 피시방으로 정했습니다.


제가 살던 고향집 근처에는 피시방이 없습니다. 떠나 있은지도 오래되었으니, 아마 시간을 내 찾다 보면 또 한두 군데 정도 생겼을 수 있겠지만 인터넷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걸 봐선 현재까지도 피시방이 들어서진 않은 모양입니다. 그래서 피시방을 가려면 부득이 꽤 멀리 나가야 하는데, 어렸을 때는 이게 참 그랬습니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저에게 동네를 떠나서 다른 지역으로 간다는 건 상당한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로 여겨졌거든요. 그래서 피시방을 가려는 친구들과 무리를 지어 자전거를 타고 다 함께 다른 동네로 넘어가곤 했지요. 중학교 때는 꽤나 대담해져서 피시방을 찾아 제법 멀리까지 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고등학교 때는 피시방은 거의 가지 않게 되었고, 대학생 때 다시 피시방을 들르게 되었지요.


지금은 인기가 없지만, 스타크래프트2:자유의 날개가 출시되었던 대학교 1학년  시절, 그 날 새벽에 피시방에 앉아서 설치가 되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리다, 곧장 플레이에 들어가 캠페인을 10시간 넘게 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게임을 함께 했던 이들과 피시방에서 밤새 지새우는 일도 허다했습니다. 군대에 있을 때도, 휴가를 나오면 친구들과 만나 피시방에 가곤 했지요. 게임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오래도록 시간을 보내기에는 피시방만큼 적당한 곳이 없으니까요. 더욱이 한참 전부터 피시방에서 간단한 식사는 물론이요, 믹스 커피가 아닌 아메리카노를 비롯한 차음료까지 마실 수 있으니 피시방은 저를 비롯해 많은 이들의 안식처라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피시방에서 보내는 것도 공짜는 아닌지라, 시간당 요금과 간식 및 음료에 적지 않게 비용이 들어가죠. 가급적 게임을 하게 되더라도 집에서 하려고 하는 편이지만, 종종 아무 생각 없이 피시방이 가고 싶은 때가 있습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펼쳐지는 수십의 모니터와 의자. 적당한 자리를 물색해 의자를 빼낸 후 앉아서 반쯤 눕듯이 등을 기대어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으면 복잡했던 머릿속이 텅 비어갑니다. 아는 분은 아는 감각이죠. 세상만사로부터 도망쳐서 멍하니 게임을 하고 있으면 지쳐있던 심신이 회복되는 느낌. 물론 밤새 피시방에 죽치고 있으면 갑절피로를 얻어가는 셈이니 요즘엔 피시방에 가고 싶어도 웬만해선 가지 않으려고 합니다. 다만 피시방의 감각이 그리울 때는 있죠.


게임을 빼놓고 제 인생을 논하긴 어렵고, 피시방이라는 공간도 적지 않은 지분을 가지고 있을 겁니다. 이제는 현실에 집중해야 한다고 스스로 되뇌지만 여전히 게임은 좋아하고 어쩌다 한 번씩 피시방에 가게 될 일이 있습니다. 앞으로도 종종 찾게 될 이 곳, 피시방. 전국 어디에서나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고 또 전혀 부담 없이 들를 수 있는 공간이 존재한다는 건 어쩐지 위안으로 다가옵니다. 서로 접점이 없었던 사람들이 각자의 이유로 모여 별문제 없이 함께할 수 있다는 것도 참 신기한 일이고요. 아마도 여러분에게도 비슷한, 내 집이 아니지만 괜히 친근하게 느껴지는 공간이 있으시리라 생각합니다. 굳이 댓글이 아니더라도 마음 속으로 떠올려보시고, 언젠가는 이야기나눠봐도 좋겠네요. 오늘 하루도 고생하셨고, 좋은 밤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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