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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희 Mar 22. 2019

[하루에 짧은 글 한 편] 2019.3.21

13. 보드게임


어렸을 적 처음으로 부루마불을 했던 순간을 떠올려봅니다. 비록 현실에서는 아무 가치도 없는 종잇조각에 불과할지라도 수백 혹은 수천의 자산을 보유하고, 전 세계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곳곳에 저택뿐만 아니라 호텔을 지어 그 임대료로 유유자적하는 삶이라니. 마냥 낭만적으로 표현하긴 했지만 상대방이 소유한 땅을 밟기 시작하면 상황은 180도 달라지지요. 그때부턴 자본주의 낙원(?)이 아닌 지옥이 펼쳐집니다. 통행료를 내지 못하면 가지고 있던 재산을 몰수당하고, 슬금슬금 주사위의 눈치를 보며 남의 땅을 피해 다녀야 하는 슬픈 상황이 연출되지요. 독점을 비롯해서, 여러모로 물질만능주의의 각종 폐해를 경험하기 딱 좋았지요. 많은 분들이 교과서가 아닌 보드판 위의 작은 세계를 통해서 냉혹한 현실과 임대료의 무서움을 배웠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겁니다.


부루마불의 시초, 모노폴리. 정작 단 한 번도 원전을 해본 적이 없군요.


시쳇말로 조물주 위에 건물주가 있다고 하는데, 여전히 부루마불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이유도 시대정신을 대표하는 게임이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부루마불뿐만이 아니라 세상엔 정말 많은 보드게임이 있고 부루마불만큼이나 대중적인 것에서부터 보드게임에 관심이 있는 분이 아니라면 도저히 모르는 굉장히 독특한 게임들도 있습니다. 눈치채셨겠지만 오늘 글의 주제는 '보드게임'입니다. 모처럼 학교 선배를 만나 함께 보드게임을 즐기고 왔으니, 이걸 적어보면 좋겠다 싶었지요. 시각은 벌써 새벽 5시가 다 되어서, 21일이라고 할 수도 없는 시점이지만 너그러이 넘어가 주십사 합니다. 그럼 이만 변명은 줄이고, 어디 보드게임에 대해 조금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추후에 본격적으로 보드게임을 소개하는 글을 써봐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여기선 '보드게임'이 가진 대략적인 이미지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부루마불만 해도 그렇고, 할리갈리나 젠가 같은 것들이 보드게임이라 생각하시는 분들도 더러 있을 듯합니다. 실제로 보드게임이긴 하지만, 모든 보드게임을 대표할만한 게임이라 말하긴 어렵습니다. 보드게임을 어느 정도 해보신 분들이라면 할리갈리, 젠가도 재미있긴 하지만 그보다 훨씬 재미있는 게임도 있다는 걸 이미 아실 테지요. 특히나 군대를 다녀오신 분들은 한적한 주말을 다양한 보드게임에 의지해 보내신 적도 있으실 테니, 머릿속에 몇 가지가 떠오르실 겁니다. <Bang>이나 <카탄>, <시타델> 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듭니다.


저만 해도 학교 선배의 권유로 보드게임을 종종 하는데, 얼추 20여 가지는 해본 듯합니다. 하도 재미있게 해서 기억에 남는 것들도 있고요. 보드게임의 매력을 알게 해주었던 <스플렌도>나, 대중적으로도 잘 알려진 마피아 게임과 타뷸라의 늑대를 연상케 하는 <한밤의 늑대인간>, 각각 특징이 있는 직업 중에 하나를 골라 땅을 개척하고, 그 과정에서 상대방과 협력하기도 하지만 남보다 많은 점수를 획득하는 것을 목표로 하기에 상당한 수준의 전략을 요하는 <테라미스티카> 등등. 이곳에 미처 다 적진 못했지만, 몇 가지 보드게임들은 실제로 플레이를 했던 게 상당히 오래되었는데도 머릿속에 강하게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했던 <그랜드 오스트리아 호텔>도 재미있었지요. 


요즘은 컴퓨터나 콘솔로 얼마든지 게임을 즐길 수 있다보니 굳이 시간을 내서, 여럿이 어딘가에 모여 종이나 플라스틱으로 만든 모형을 만지작거리며 게임을 해야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실 수도 있습니다. 번거로운 것도 사실이구요. 하지만 뭔가 그 현장감이라고 해야할까, 컴퓨터 게임에서는 충족하기 힘든 보드게임만의 각별함이 있지요. 요즘은 어디서든 보드게임 카페를 찾아볼 수 있기도 하구요. 괜히 머리 쓰는 게 복잡해서 싫다고 하시는 분들도 즐길만한 게임도 꽤나 있습니다. 잘 몰라서 추천을 받고 싶으시거나, 심심풀이로라도 보드게임을 배워보고 싶은데 괜히 노파심이 드는 분들도 잠시 불안은 접어두셔도 좋을 듯 합니다. 이전까지 모르던 새로운 세계를 알아간다는 건 즐거운 일이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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