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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희 Mar 24. 2019

[하루에 짧은 글 한 편] 2019.3.23

15. 밤샘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시각은 2019년 3월 24일 오전 5시 58분입니다. 제목의 일시를 2019.3.23으로 해놓은 건 저에게는 아직 하루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렇습니다. 저는 밤을 꼴딱 새운 채로 부랴부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누군가 저에게 마감을 강제한 것도 아니지만, 별다른 이유도 없이 글을 쓰지 않는 것도 이상한 노릇이라 생각해서 서둘러 글을 마무리하고 잠들까 합니다. 그러다 보면 어떻게든 분량을 채우려고 쓸데없는 소리를 늘어놓게 되는데 첫 문단이 벌써 그런 내용으로 꽉 차버렸군요. 밤을 새우고 나면 꼭 머리가 굳어서 문장이나 표현뿐만이 아니라 내용의 연결도 쉽지가 않아 두서없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어렸을 때는 밤을 새보는 게 소원이었습니다. 어떤 측면에서는 일탈이라고는 볼 수도 있겠네요. 내 맘대로 시간을 보낸다는 게 어찌나 매력적으로 보이던지. 그러나 부모님은 그때도 지금도 밤을 새우는 걸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아침에 일어나고, 밤에는 자는 게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여기시기 때문이죠. 다만 20대가 되어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부터는 고향을 떠나 혼자 살기 시작해, 부모님의 눈치를 볼 필요 없이 언제든 밤을 새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찌나 짜릿하던지. 뭔가 낮보다 훨씬 더 자유로운 느낌도 들고, 다른 사람들은 자고 있을 시간에 나 혼자 깨어있으니 어쩐지 이득(?)을 보는 기분이었죠. 따지고 보면 깨어있는 만큼 잠을 자야 하니까 도긴개긴이긴 합니다만.


더욱이 밤을 새우면 좋지 않다는 뉴스 기사를 보게 되면 부모님이 왜 밤새는 걸 염려하시는지 이해 갑니다. 당장 구글에 검색해봐도 뇌세포가 파괴된다는 둥, 다이어트에도 좋지 않다는 둥 밤샘의 부작용을 경고하는 뉴스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건강에 좋지 않다고 해서 그만둘 거라면 진즉에 밀가루 음식과 설탕을 비롯해 참으로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하겠지요. 궤변인가요? 밤새는 게 뭐가 좋다고 부득부득 갖은 논리를 들어가며 쉽사리 포기하지 않는지 이해가 가지 않으실 수도 있겠네요. 그러게요. 밤새는 게 뭐 좋은 거라고. 이렇게 포기를 못하는지.


그래요. 포기를 못 한다기보다는 익숙해져 버렸다는 게 더 정확합니다. 대학생 때도 마감기한을 하루 남짓 남겨두고 밤을 새워가며 과제를 하거나 시험 준비를 하는 게 비일비재했습니다. 방학이 되면 게임을 하거나 영화를 보다가 번뜩 정신이 들어 시계를 확인하면 새벽이 되어있던 게 하루 이틀이 아니었습니다. 어떻게든 생활패턴을 찾아보겠다고 몇 번이고 그날 저녁까지 아득바득 깨어있어 봤지만 며칠만 지나면 다시 엉망이 되었죠. 생활패턴은 남은 삶 동안 계속해서 떠안고 가야 할 과제 중 하나일 겁니다. 전부 다 그동안 밤샘을 즐겨한 탓이죠.


오늘도 어김없이 밤을 새웠습니다. 저야 뭐, 백수생활 청산은 저 뒤로 내팽개쳐두고 게임을 하느라 정신이 팔려 밤을 새웠지만 저와는 다르게 급박한 사정이 있어 밤을 새우셨거나 혹은 직장 때문이라든지 여러 이유로 해가 뜰 때까지 깨어있으신 분들이 있으실 겁니다. 낮밤이 바뀐 채로 지낸다는 게 참 괴로운 일이라는 걸 너무도 잘 알기에 혹시라도 아직 잠을 청하지 못하신 붇늘에겐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합니다. 그래도 혼자 밤을 떠나보내는, 고독의 순간이 있었기에 오늘 떠오르는 해가 의미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너무 분위기를 잡았나요? 밤을 새서 정신이 없는 탓입니다. 어서 빨리 잠들어보겠습니다. 모쪼록 좋은 하루 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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