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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희 Mar 31. 2019

[하루에 짧은 글 한 편] 2019.3.30

19. 게으름


저는 상당히 게으른 편입니다. 결심한 걸 행동으로 옮기기까지 시간이 엄청나게 걸리고, 실제로 하게 되면 막상 하기는 했지만 오래 유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지요. 스스로의 단점을 이야기하자니 민망하긴 한데 사실이기도 하니 딱히 엄청나게 부끄러워할 일은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남들과 비교해서 특출나게 게으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들 어느 정도는 게으르니까요. 제가 독보적으로 게으른 사람이었다면 정규 교육과정도 제대로 마치지 못했을 겁니다. 물론 대학이나 군대 같이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무언가를 억지로 해야만 하는 상황에서는 항상 고역스럽긴 했군요.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루고 도저히 미룰 수 없는 상황에 이르러서야 겨우 할 일에 착수하곤 했었으니까요.

 

반복되는 비극. (출처는 9GAG 겠지요..?)


게으름에 대해서 두 가지 정도를 고려해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첫 번째는 이미 앞서 이야기했던 부분의 연장에 해당합니다. 누군가를 게으르다고 말하기 위해선, 게으름에 대해 정의할 필요가 있죠. 하루 24시간 중 얼마간을 게으르게 보내야 게으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게으르다고 하려면 무엇을 해야 게으른 걸까요?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게으르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이렇게 놓고 보니 게으름은 상대적인 개념인 듯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게으름을 이야기할 때는 절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개념으로 취급합니다. 해야만 하는 일이라는 걸 정해두고, 그걸 하지 않으면 혹은 하지 않으니까 게으르다고 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대체해야만 하는 일은 또 무엇이고, 왜 그것은 해야만 하는 것일까요.


재미있는 점은, 이른바 성실한 사람들은 이런 의문도 갖지 않을 겁니다. 저처럼 게으른 축에 속하는 사람들이나 무엇을 두고 게으르다고 할 수 있을까를 따지며 자기 자신을 변호하려 들뿐이죠. 당신들 눈에는 내가 게으르게 보일 수 있어도 나는 게으른 것이 아니라, 그저 당신들 기준에서는 쓸데없어 보이는 일에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다라고. 가령 제가 좋아하는 게임이나 만화, 그리고 혼자 보내는 시간은 누군가에겐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합니다. 더욱이 혼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침대에 누워있는 일은 게으름의 대명사처럼 여겨지지요. 실제로 해야 할 일이 있는 데도 그럴 때가 있으니 저는 정말로 게으른 것이긴 합니다만, 우리들 스스로가 어떤 종류의 일들을 게으르다고 판단하는 배경에는 분명 다른 사람의 의견도 적지 않게 개입되어 있을 겁니다.


두 번째는 그러한 개입, 학습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해야 하니까 그 일을 앞두고서 게을러지는 게 아닐까요. 더욱이 해야하는 일과 하지 않아도 되는 일 그러나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이 둘의 경중을 나누는 건 우리들 스스로가 그에 대해 판단을 내려서가 아닌, 사회의 기준에 따를 때가 대부분이죠. 그러나 사회의 기준은 자신이 가진 기준과 다를 때도 있고 종종 부딪히기까지 합니다. 해야한다고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가슴은 도저히 하고 싶지 않은 순간에 우리는 소극적인 반항으로써 대응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게으름이 아닐까요. 의외로 이런 주장을 바탕에 둔 연구가 있을 듯합니다. 제가 예전에 읽어놓고 기억을 못하는 것일 수도 있구요.


하여간 오늘도 이 늦은 시간에 글을 올린 건 순전히 제가 게을러서 입니다. 그렇다고 글을 쓰는 게 싫어서는 아닙니다. 그러나 글쓰기보다 침대에 누워서 아무 생각없이 눈을 감고 있는 게 좀 더 즐거워 자꾸만 시간을 연장하다보니 이 시간이 되었습니다. 성실함이야 두말 할 것 없이 미덕이지만 매분 매초 성실하게 지낸다는 건 불가능한 일인데도 종종 그런 환상에 잡혀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물론 게으른 사람이 할 말은 아니지만, 오늘 하루 나태하게 보냈다고 스스로를 너무 책망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토요일 주말이고, 하루 정도는 조금 게을러도 괜찮지 않을까요? 물론 저는 매일 매일 게을러서 이제라도 정신을 좀 차려야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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