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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희 Apr 16. 2019

[하루에 짧은 글 한 편] 2019.4.15

31. 술주정


어제는 친구 덕에 맛난 저녁을 먹었습니다. 좋은 술까지 곁들여 기분 좋게 취할 때까지 마시고, 얼큰해져서 집에 돌아왔는데 자고 일어나서 어제를 돌이켜보니 뭔가 부끄러워졌습니다. 볼썽사납게 술주정을 부린 건 아니지만, 취기에 몸을 맡겨 평소엔 하지 않을 말을 늘어놓은 건 아닐까 싶었거든요. 필름이 끊긴 게 아니라 무슨 말을 했는지도 기억나고, 식사를 끝낸 후 차를 마시고 집에 돌아오기까지 그 과정도 전부 남아있는데 혹시라도 실수를 한 건 아닌가 괜한 걱정이 듭니다. 지나친 염려에 불과하겠지만, 술에 취했을 때 아무래도 들뜨는 게 사실이다 보니 평상시에 하지 않을 말도 늘어놓게 되더군요. 그래서 오늘 글도 술주정에 관해서 써볼까 합니다. 여러분의 술주정은 뭔지 생각해보시면서 글을 읽어주셔도 좋을 듯합니다.


저 스스로는 술주정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다른 사람이 봤을 때는 술주정이라고 부를만한 행동이 몇 가지 있습니다. 술이 들어가면 괜히 얼음을 만지작거리거나, 책상 위의 휴지나 쓰레기를 한데 모은 다음 수시로 뭉쳐놓는 등 손을 가만히 두지 못하고 엉뚱한 짓거리를 하곤 했지요. 요즘은 그러지 않지만 스무 살 초반에 유난히 심했습니다. 취해서 그런 게 아니라고 주장해봐도, 취했을 때 생각 없이 하는 행동이나 말을 술주정이라고 하니, 이게 술주정이 아니면 뭐가 술주정이겠습니까. 요즘에는 취하면 뭔가를 한다기보다 평소보다 훨씬 들떠서 맨 정신이라면 조심조심 말해 버릇하던 걸 부담 없이 내뱉곤 합니다. 이제 그런 상태가 술주정이라면 술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나치게 취하면 추태를 부릴 새도 없이 기절하듯 잠들어버려서, 주정이고 뭐고가 없지요. 주정을 부리느니 잠드는 게 얌전한 편이라고는 하던데, 이것도 상황에 따라 다를 것 같습니다. 자리를 파하고 슬슬 일어나야 하는데 누군가 술에 취해 곤히 잠들어있으면, 그건 그것대로 곤란할 것 같긴 하군요. 금방 정신을 차린다면 크게 문제 될 것도 없겠지만, 암만 깨워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이제 일행이 옮기는 데 적잖이 애를 먹겠지요. 저는 어떻게든 집에 돌아가는 편이긴 하지만, 까닥 정신을 놓았다간 그대로 길거리에 쓰러져 잠드는 경우도 있을 겁니다. 언젠가 한 번은 진탕 취해서 지하철 첫차를 탔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두 번 정도 종점을 찍은 상황이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지인의 술주정으로 곤란을 겪었다는 이야기를 인터넷에서든 현실에서든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데, 저는 아직까지 술주정으로 고생을 해본 적은 없습니다. 순전히 고생이라고 생각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 얌전히 술을 마시고 쓰러져 잠들거나 술김에 조금 귀찮게 굴긴 해도 용납할 수 있는 선에서 끝나곤 했으니까요. 술에 취해 사람을 때린다든지, 다른 테이블에 시비를 건다든지, 당사자는 물론 주변 사람까지 곤란에 빠뜨리는 경우는 상상만 해도 아찔합니다. 술에 취하면 저도 그렇고 거침없이 행동하곤 합니다만, 평상시에 할 수 없는 일을 술김에 그러는 건 솔직한 것도 뭣도 아니고 그저 민폐에 불과하죠.


그래서 술주정이 아닐지라도, 술에 취한 채 맨 정신과 다르게 행동하고 나면 그 당시는 취기 때문에 별생각 없다가도 시간이 지나 돌이켜봤을 때는 항상 부끄러웠습니다. 큰 실수를 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말이죠. 그렇다고 술을 마시지 말자니, 인생의 즐거움이 하나 사라지는 셈이라 그러기도 싫고 술이 아무리 취해도 최대한 정신을 놓지 않으려고 노력하려 합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이가 들고서 없던 주정도 생긴다던데 그러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의식해야겠네요. 앞으로 주의하자는 차원에서 다소 두서없지만 오늘 이렇게 글을 남겨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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