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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희 May 01. 2019

[하루에 짧은 글 한 편] 2019.5.1

35. 2019년 5월 1일


그간 잘 지내셨나요. 4월 20일 날 마지막으로 [하루에 짧은 글 한 편]을 업로드를 하고 그 후로 10여 일이 흘러서야 비로소 글을 쓸 마음이 들었습니다. 키보드 앞에 앉는 거야 어려운 일도 아니지만, 다시 한번 글을 쓰기까지 어찌나 망설여지던지. 소재가 떨어졌다거나, 글이 싫어졌다거나. 그런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그저 마음가짐의 문제였죠. 대체 나는 왜 글을 쓰고 있나, 정말로 하루하루 글을 쓰는 게 의미가 있을까. 한참을 고민해봐도 답은 없었습니다. 이렇게 고민으로 시간이나 보낼 바에야 차라리 무엇이라도 쓰자. 그렇게 마음을 먹으니 한결 낫더군요. 마침 5월의 시작이기도 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하루하루 글을 써나가려 합니다. 오늘 글은 그 첫날, 2019년 5월 1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오늘 날씨도 퍽 좋았습니다. 학교 선배와 모처럼 점심 약속이 있어 집을 나섰고 식사를 마치고서 커피 한 잔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헤어져 그 길로 집에 돌아가자니 발걸음을 옮기기가 아쉬울 정도였죠. 어느덧 초여름이 성큼 다가와있었습니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 따사로운 햇살 아래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서있는 것만으로도 상쾌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산책도 좋지만 가만히 앉아있기만 해도 만족스러워서 학교 운동장 벤치에 한참 동안 엉덩이를 붙이고 있었지요. 어디 어린이집에서 나들이를 나왔는지 아이 몇 명과 지도교사 분이 운동장 한 편에서 비눗방울을 만들며 놀고 있었습니다. 아이 한 명과 눈이 마주쳤는데, 먼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헤오길래 저도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나눴지요. 서너 번 인사가 오고 갔는데, 얼마 만에 낯선 이에게 인사를 받아본 것이었는지. 유쾌한 경험이었습니다. 몇 분 더 앉아있다가, 벤치에서 일어나 좀 걷기로 했습니다.


나무옹이에는 미처 못다 지나간 봄이 있었습니다.


평소 가던 길이 아니라 오늘만큼은 다른 곳으로 가보고 싶었습니다. 잘 모르는 길을 간다는 건 번거롭기도 하고 그 낯선 느낌이 달갑지 않지만, 가던 곳만 가 버릇하다 보니 관성이 생긴 듯해서 괜히 청개구리 심보가 발동한 셈이죠. 발걸음을 옮긴 곳엔 색다른 풍경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오길 잘했다 싶었습니다. 아마 학교에 다니고서 두 번 정도 와봤을 겁니다. 미대로 이어지는 길은 미대생들이 아니면 거의 올 일이 없으니까요. 동네 주민 분들은 산책로로 애용하시는 모양이던데 정작 저는 이 근방에 살면서 여기까지 오는 게 귀찮다는 이유로 왕래하지 않았네요. 3년 전에 강의 때문에 한 번, 8년 전에 입학하고 나서 한 번. 그때의 풍경하곤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제가 달라져서 그런 건지 걸음을 옮기는 순간마다 느낌이 새로웠습니다. 여기에 이런 게 있었구나. 그 때는 왜 보지 못했을까. 하나하나 살피며 걷다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있더군요.


난간 아래에 핀 꽃더미.


그렇게 쭉 학교를 한 바퀴 돌고 집으로 돌아가며 동네 구석구석을 살폈습니다. 종종 들렀던 후문 쪽 카페는 이제 온데간데 없고 배달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 들어서있더군요. 아직 그 카페에서 받았던 쿠폰이 지갑에 들어있어 꺼내보았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났나 싶어, 자리를 뜨지 못하고 한 걸음 옮겼다가 뒤돌아서서 가게를 바라보길 몇 번이고 반복했습니다. 2011년부터 지금까지, 많은 것들이 바뀌었지만 새삼 그 사실을 확인할 때마다 마음이 복잡합니다. 나도 빨리 이곳을 떠나야지, 그렇게 생각하다가도, 떠난다면 대체 어떤 곳으로 가야하나 싶어 싱숭생숭해지지요. 날씨가 좋아서 복잡했던 기분은 얼마못가 자취를 감춥니다. 다시 걷습니다. 또 뭔가 변한 건 없는지, 그동안 놓친 건 없는지 분주히 주변을 살피며 걷는데, 얼룩덜룩한 외모의 고양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가만히 뒤를 쫓았지요. 으레 고양이를 쫓다보면 어느새 인기척을 눈치채고 부리나케 도망치기 마련인데 이녀석은 풀숲 쪽으로 들어가더니 가만히 앉아있었습니다. 야옹하고 불러보니 시큰둥하게 쳐다보더군요. 이 고양이도 동네 주민이라면 동네 주민인데, 통성명은 해야죠.


뭘 보냐 인간. 그런 눈이었습니다.


집에 돌아오니 어느새 오후도 끝나갑니다. 뭘 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시간이 지났는지. 하루하루를 소중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가, 곧 잊혀집니다. 그런 법이죠. 결심은 오래가지 못하고, 아마 내일도 덧없이 하루를 보낼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오늘 이 하루가 얼마나 충실했는지 남겨놓고 싶었습니다. 세계는 이렇게나 다채로운 색깔을 하고 있었군요. 세계란 이다지도 풍부한 색채를 띄고 있었습니다. 눈이 시릴 정도여서 못내 감격스러웠습니다. 사진으로도 다 담아낼 수 없고, 하물며 제 문장으로는 어떻게 그 느낌을 전달해야할지 감도 오지 않습니다. 하루를 그저 흘려보내는 게 아니라 주변에 눈을 두는 것만으로도 오늘이 특별해진 느낌이 듭니다. 부디 여러분도 오늘 하루가 뜻깊으셨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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