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겟팅의 종말, '잡식성' 소비자가 온다

데모그래픽 타겟팅이 실패하는 이유와 AI 초개인화 전략

by Director Keige

페르소나가 작동하지 않는 시대

"메인 타겟은 수도권 거주 2030 직장인 여성입니다."


마케팅 회의실에서 가장 흔하게 들리는 문장입니다. 우리는 지난 수십 년간 나이, 성별, 거주지, 소득 수준으로 고객을 분류하는 '데모그래픽 타겟팅'을 당연하게 여겨왔습니다.


그런데 이 공식이 요즘 처참하게 빗나가고 있습니다.


명품 브랜드 VIP 행사에 트레이닝복 입은 대학생이 나타나고, 편의점 도시락으로 점심을 때운 직장인이 저녁엔 수십만 원짜리 오마카세를 즐깁니다. 50대 부장님은 퇴근 후 '동물의 숲'을 하고, 20대 여대생은 '아재 입맛' 국밥집을 찾아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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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이 소비 패턴. 마케터가 설정한 페르소나가 자꾸만 실패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소비자가 '옴니보어(Omnivore)'로 진화했기 때문입니다.


1. 경계를 지우는 사람들: 옴니보어의 탄생

옴니보어(Omnivore)는 본래 '잡식성'을 뜻하는 생물학 용어입니다. 하지만 사회학에서는 '문화적 잡식성'을 의미하죠. 과거에는 사회적 지위나 소득에 따라 즐기는 문화(고급 문화 vs 대중문화)가 명확히 구분되었지만, 현대 소비자는 이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듭니다.


마케팅 관점에서 옴니보어 소비자는 '집단'보다 '취향'을, '일관성'보다 '변주'를 택하는 사람들입니다.


취향의 파편화
세대론적 접근이 무의미해졌습니다. 50대가 게임을 하고, 20대가 클래식을 듣고, Z세대가 레트로를 소비하는 시대입니다. 나이는 더 이상 취향을 설명하지 못합니다.


소비의 양면성
1,500원짜리 저가 커피를 마시면서 300만 원짜리 명품 백을 듭니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가격' 자체가 아니라, 그 순간 내가 느끼는 '가심비(심리적 만족)'와 '효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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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이제 "20대 여성이니까 핑크색을 좋아하겠지?"라는 식의 접근은 게으른 마케팅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핑크를 좋아할 수도, 시크한 블랙을 좋아할 수도, 혹은 그 두 가지를 요일마다 다르게 선택할 수도 있으니까요.


2. 타겟팅이 불가능하다면? AI 초개인화가 답이다

소비자가 이렇게 종잡을 수 없이 움직인다면 마케터는 손을 들어야 할까요? 아닙니다. 여기서 'AI 초개인화(Hyper-Personalization)' 기술이 등판합니다.


기존 '개인화'가 고객 이름을 불러주거나(CRM), 지난주에 본 상품을 다시 보여주는(리타게팅) 수준이었다면, 초개인화는 AI가 실시간 데이터를 바탕으로 고객의 '맥락(Context)'을 읽어내는 기술입니다.


단순 개인화
"김철수 님, 지난번에 보신 운동화는 어때요?" (과거 데이터 기반)


AI 초개인화
"철수 님, 지금 비가 오는 서울 성수동에 계시네요? 30분 뒤면 퇴근이시고요. 지금 기분에 딱 맞는 재즈 플레이리스트와 근처 파전 맛집 쿠폰을 드릴게요." (실시간 맥락 + 예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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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니보어 소비자는 고정된 취향을 갖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의 기분과 상황에 따라 다른 가면을 씁니다. 인간 마케터가 수백만 명의 변덕스러운 '순간'을 일일이 따라잡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AI는 가능합니다.


AI는 소비자가 옴니보어적으로 행동하는 복잡한 패턴 속에서 '숨겨진 의도'를 찾아내고, 가장 적절한 타이밍에 브랜드 경험을 제안합니다.


3. 마케터가 준비해야 할 '브랜딩의 유연함'

타겟팅의 종말은 곧 '집단 마케팅'의 종말을 의미합니다. 이제 우리는 거대한 숲(세그먼트)을 보는 것이 아니라, 숲속에서 시시각각 색을 바꾸는 카멜레온(개인)을 봐야 합니다.


이를 위해 브랜드가 갖춰야 할 태도는 다음과 같습니다.


'Who'가 아니라 'When & Where'를 묻자
"누가 우리 제품을 사는가"보다 "어떤 상황(Context)에서 우리 제품이 필요한가"를 정의하세요. 옴니보어 소비자는 자신이 누구인지 규정당하는 것을 싫어하지만, 자신의 상황을 이해해 주는 브랜드에는 마음을 엽니다.


취향의 마이크로 커뮤니티를 공략하라
거대한 인구통계학적 타겟팅 대신, '민초단(민트초코 선호)', '데스크테리어족', '위스키 입문자' 등 좁고 깊은 취향 집단을 공략하세요. 옴니보어는 자신의 수많은 취향 중 하나를 건드려준 브랜드에 깊게 반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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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는 AI에게, 직관은 인간에게
고객의 행동 패턴 분석과 실시간 제안은 AI에게 맡기세요. 마케터는 그 데이터 너머에 있는 고객의 '결핍'과 '욕망'을 읽어내, 우리 브랜드만의 스토리로 채워주는 역할에 집중해야 합니다.


예측 불가능함을 즐기는 마케팅

소비자가 잡식성이 되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우리 브랜드가 진입할 수 있는 틈새가 더 많아졌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우리 브랜드가 명품이 아니어도 명품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고, IT 기기 브랜드가 60대의 사랑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1,000원짜리 제품이 누군가에겐 그날의 최고 가심비가 될 수 있고, 틈새 취향 제품이 수십만 명의 열광적 팬덤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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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고정관념이라는 낡은 타겟팅 지도를 버리고 AI라는 나침반과 취향이라는 돋보기를 들고 옴니보어의 세상으로 뛰어드시길 바랍니다.


그 예측 불가능함 속에 마케팅의 새로운 기회가 숨어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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