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의 여정을 설계한다는 것
10화에서 소비자가 어떤 심리로 구매를 결정하는지를 살펴봤다. 그렇다면 마케터는 그 심리를 어떻게 전략적으로 설계하고 활용할 수 있을까.
AIDA 모델과 마케팅 퍼널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이다. 소비자가 브랜드를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충성 고객이 되기까지의 여정을 단계별로 이해하고, 각 단계에 맞는 전략을 설계하는 프레임워크다.
이 두 개념은 마케팅 업계에서 100년 넘게 쓰여 온 고전이다. 디지털 마케팅의 시대에도 여전히 가장 많이 활용되는 틀이기도 하다. 고전이 고전인 이유는 — 시대가 바뀌어도 사람의 마음이 크게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몇 해 전, 중소 SaaS 기업(클라우드 기반 애플리케이션이나 소프트웨어를 구독 및 제공하는 기업)의 마케팅 전략 컨설팅을 맡았을 때의 일이다. 그 회사는 꽤 많은 예산을 마케팅에 쏟아붓고 있었다. 인스타그램 광고, 구글 검색 광고, 유튜브 영상까지. 그런데 매출은 좀처럼 늘지 않았다.
마케팅팀장 유튜브 영상은 조회수가 꽤 나오고, 인스타 광고 클릭률도 나쁘지 않아요. 근데 정작 무료 체험 신청으로 이어지지 않아요.
나 유튜브에서 클릭해서 홈페이지에 들어온 사람들이 얼마나 머물다 가요?
마케팅팀장 평균 45초 정도요.
나 45초면 홈페이지 첫 화면 보다가 나가는 거예요. 그 사람들이 왜 당신 서비스가 필요한지를 납득하기 전에 '무료 체험 신청'을 들이밀고 있는 거잖아요.
마케팅팀장 그러니까... 너무 빠른 거였군요.
나 소비자는 퍼널을 순서대로 내려가요. 관심도 없는데 행동부터 요구하면 이탈할 수밖에 없어요.
이것이 퍼널을 이해하지 못하고 마케팅할 때 생기는 가장 흔한 문제다. 좋은 콘텐츠와 적지 않은 예산을 쓰면서도 '마지막 단계'만 집중하다가 성과를 못 내는 것.
소비자는 단계를 건너뛰지 않는다. 마케터가 단계를 건너뛸 뿐이다.
1898년 광고인 엘리어스 세인트 엘모 루이스(Elias St. Elmo Lewis)가 제안한 소비자 설득 모델. Attention(주목) → Interest(흥미) → Desire(욕구) → Action(행동)의 네 단계로 구성된다. 소비자가 구매에 이르기까지 거치는 심리적 단계를 순서대로 정리한 것으로, 현대 마케팅의 모든 퍼널 모델의 원형이다.
125년 전 모델인데도 지금도 광고를 기획할 때, 랜딩 페이지를 설계할 때, 이메일 캠페인을 만들 때 가장 먼저 꺼내드는 틀이다. 디지털이 바뀌고 채널이 바뀌었지만, 사람이 '관심 갖고 → 원하게 되고 → 행동하는' 순서는 바뀌지 않았다.
AIDA는 순서가 있다. A(주목) 없이는 I(흥미)가 불가능하고, I(흥미) 없이는 D(욕구)가 생기지 않는다. 이 단계를 무시하고 처음 만난 소비자에게 바로 '지금 구매하세요'를 외치면, 길을 걷다가 처음 보는 사람에게 '저 좋아하시나요?'라고 묻는 것과 같다.
<AIDA를 실무에 적용할 때 가장 먼저 할 일>
"우리 브랜드를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 A(주목)를 얼마나 잘 하고 있는가?"를 점검하라.
광고 소재의 첫 3초, 이메일 제목 줄, SNS 게시물의 첫 문장 — 이것이 AIDA의 시작점이다.
첫 단계가 약하면 나머지 모든 단계가 무의미해진다.
잠재 고객이 처음 브랜드를 인지하는 시점부터 구매·충성 고객이 되기까지의 여정을 깔때기(Funnel) 형태로 시각화한 모델. 위로 갈수록 더 많은 사람이, 아래로 갈수록 구매에 가까운 소수가 남는 구조다. 각 단계별로 다른 전략과 KPI가 적용된다.
퍼널(Funnel)은 '깔때기'다. 위가 넓고 아래가 좁다. 브랜드를 아는 사람 100명 중 관심을 갖는 사람은 30명, 구매를 고려하는 사람은 10명, 실제로 사는 사람은 3명 — 이 흐름이 퍼널이다.
퍼널을 이해하면 두 가지가 명확해진다. 첫째, 지금 우리 마케팅의 병목이 어디 있는지. 둘째, 각 단계에서 어떤 전략을 써야 하는지. 퍼널을 모르고 마케팅하는 것은 어디서 새는지 모른 채 물을 계속 붓는 것과 같다.
세 단계 중 현장에서 가장 많이 방치되는 것은 MOF다. TOF 광고로 인지도를 쌓고, BOF 프로모션으로 구매를 유도하는 데 집중하다가 — 정작 그 사이에서 소비자를 계속 연결해주는 MOF 콘텐츠가 없는 것이다. 뚫린 파이프 중간에 구멍이 있는 상황이다.
소비자가 특정 브랜드·제품·서비스의 존재를 알고 있는 정도. 마케팅 퍼널의 가장 위 단계이자, 모든 마케팅의 출발점이다. 인지도가 없으면 구매 여정이 시작조차 되지 않는다. 5화에서 다룬 브랜드 인지도(보조·비보조)와 연결된다.
인지도는 양과 질로 나눠서 봐야 한다. '우리 브랜드 이름을 아는 사람 수'가 양이라면, '우리 브랜드가 무엇을 하는지, 왜 좋은지를 아는 사람 수'가 질이다. 인지도의 양만 늘리다 보면 '들어봤는데 뭔지 모르는' 브랜드가 된다.
<인지도를 측정하는 세 가지 방법>
① 비보조 인지: "[카테고리] 브랜드 하면 뭐가 떠오르세요?" — 자연스럽게 떠오르면 진짜 인지도
② 보조 인지: "[브랜드명] 들어보셨나요?" — 이름을 제시했을 때 아는 것
③ 소셜 리스닝: SNS·검색엔진에서 우리 브랜드 언급량 추적 작은 기업일수록 비보조 인지 구축에 집중해야 가격 경쟁을 피할 수 있다.
소비자가 마케터가 원하는 특정 행동(구매, 회원 가입, 무료 체험 신청, 문의 등)을 실제로 취하는 것. 퍼널 각 단계 사이를 이동하는 것도 전환이다. 전환율(CVR, Conversion Rate)은 전환 수 ÷ 총 방문자 수 × 100으로 계산한다.
전환율은 마케팅 성과를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다. 퍼널 단계별 전환율을 보면 어디서 소비자가 빠져나가는지가 보인다. 아까 본 SaaS 기업의 예로 퍼널 전환율을 시뮬레이션해보면 이렇다.
이 표에서 가장 심각한 구간은 홈페이지 방문 후 이탈(82%)이다. 이것이 바로 MOF 부재의 결과다. 광고로 유입된 사람이 '이게 나에게 왜 필요한가'를 이해하기 전에 무료 체험을 요구받고 나가버리는 것이다.
해결책은 홈페이지에서 MOF 콘텐츠를 강화하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가진 분들이 이렇게 해결했습니다' 같은 케이스 스터디, '30초로 이해하는 우리 서비스' 영상, 명확한 고객 군별 혜택 설명 — 이것들이 45초를 5분으로 바꾼다.
소비자가 특정 브랜드를 반복 구매하고, 경쟁사 제품보다 선호하며, 주변에 추천하는 경향. 브랜딩과 고객 경험이 쌓여서 만들어지는 무형의 자산이다. 충성 고객 한 명의 가치는 신규 고객 다섯 명을 유치하는 비용과 맞먹는다는 연구가 많다.
전통적인 마케팅 퍼널은 '구매'에서 끝났다. 하지만 현대 마케팅에서는 구매 이후가 더 중요하다. 만족한 고객이 다시 사고, 주변에 추천하고, 브랜드의 팬이 되는 것 — 이 과정이 새로운 잠재 고객의 인지 단계로 연결된다. 퍼널이 선형이 아닌 '루프(Loop)'가 되는 것이다.
퍼널에서 루프로 — 충성도가 만드는 선순환
충성 고객의 입소문은 가장 강력한 TOF 도구다.
친구 추천을 받은 신규 고객은 광고로 유입된 고객보다 전환율이 평균 3~5배 높고, 이탈률은 낮다.
<충성도를 높이는 세 가지 실무 전략>
① 첫 구매 고객을 위한 특별한 온보딩 경험 — 첫 인상이 재구매를 결정한다
② 구매 후 3일, 7일, 30일 자동화 이메일 시퀀스 — 인지 부조화를 단계적으로 해소
③ 추천 프로그램(Referral Program) — 충성 고객의 입소문을 시스템화하면 가장 저렴한 TOF 마케팅이 된다
고객이 브랜드를 처음 인식하는 순간부터 구매 후 충성 고객이 되기까지 거치는 모든 경험과 접점의 총체. 퍼널이 '몇 명이 어느 단계에 있는가'의 양적 시각이라면, 고객 여정은 '각 단계에서 어떤 감정을 느끼는가'의 질적 시각이다.
퍼널이 마케터의 시각이라면, 고객 여정은 소비자의 시각이다. 같은 과정을 소비자 입장에서 바라보면 전혀 다른 것이 보인다. 어디서 불편함을 느끼는지, 어디서 기대가 꺾이는지, 어디서 기분 좋은 놀라움이 생기는지.
이 표에서 '감정 상태' 행을 주목하자. 소비자가 구매 결정 직전에 '기대'와 '불안'을 동시에 느낀다는 것은, 그 지점에서 마케터가 신뢰를 강화하는 개입을 해야 한다는 신호다. 상세 페이지의 후기 수, 환불 정책 명시, 보안 인증 마크 — 이 작은 것들이 '불안'을 '기대'로 전환시킨다.
고객 여정 지도(CJM, Customer Journey Map)를 직접 만들어 팀과 공유하면, 마케팅·제품·고객 서비스 팀이 같은 그림을 보고 협업할 수 있게 된다. 사일로를 깨는 가장 강력한 도구 중 하나다.
SaaS 기업 사례로 AIDA와 퍼널을 하나의 전략으로 통합하면 이렇다.
이렇게 AIDA와 퍼널을 하나의 전략 지도로 만들면, 팀 전체가 지금 어느 단계에 집중해야 하는지, 어떤 콘텐츠를 만들어야 하는지, 무엇을 측정해야 하는지가 명확해진다. 마케팅이 '감'이 아닌 '설계'가 되는 것이다.
AIDA와 마케팅 퍼널은 서로 다른 개념이 아니다. AIDA가 소비자 심리의 단계를 설명한다면, 퍼널은 그 단계를 마케터의 전략 지도로 전환시킨다. 고객 여정은 그 지도를 소비자의 눈으로 바라보는 시각이다.
AIDA
Attention → Interest → Desire → Action. 소비자의 심리적 여정을 설계하는 125년 된 가장 강력한 틀.
마케팅 퍼널
TOF(인지) → MOF(고려) → BOF(전환)의 단계. 어디서 새는지 찾아 막는 전략 지도.
인지도
퍼널의 최상단. 양(아는 사람 수)보다 질(제대로 아는 사람 수)이 중요하다
전환
소비자가 각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이동하는 것. 단계별 전환율이 병목을 가리킨다
충성도
퍼널의 끝이 아닌 루프의 시작. 충성 고객의 추천이 가장 강력한 TOF 마케팅이다
고객 여정
퍼널의 소비자 버전. 각 접점에서의 감정을 파악하면 개입 포인트가 보인다
이론 편 (7~12화)도 막바지에 왔다. 다음 화에서는 이 시리즈의 이론 편 마지막 주제인 브랜드 전략과 자산을 다룬다. 지금까지 배운 STP, 4P, 소비자 행동, AIDA가 하나의 브랜드 전략으로 어떻게 통합되는지를 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