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식성이 다르듯, 나는 고기를 먹으면 속이 더부룩해지고 배가 사르르 아프고 소화가 잘되지 않는다. 가끔 회식을 하거나 친구들 여럿이 모이게 되면 가격 대비 무난한 메뉴로 고깃집을 가게 되는데, 그럴 때가 아니고서야 내 돈을 주고 고기를 먹는 일은 거의 없다. 덕분에 고기보다는 회, 생선구이, 생선조림 등 어류를 식탁에서 마주하는 일이 잦다. 점심 메뉴로 모두가 제육볶음, 돼지고기 김치찌개를 선택할 때도 나는 뚝심 있게 고등어구이, 참치 김치찌개를 선택한다.
그럴 때면 가끔 '입맛은 유전일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 가족은 고기를 먹으면 누구 하나 곱게 넘어가는 법 없이, 속이 더부룩하거나 배앓이를 하는 경우가 잦다. 특히 기름기가 많은 삼겹살은 더더욱. 그래서인지 엄마는 거의 매일을 국과 함께 생선을 구워주신다. 삼치, 고등어, 임연수, 조기, 박대, 꽁치 등 다양한 생선들이 번갈아가며 우리 집 식탁 위에 오른다. 생선구이가 없는 날은 저녁 식탁에 조림이 나올 확률이 높다. 생선구이와 생선조림이 아예 없는 식탁이 허전하고 헛헛할 만큼 우리 가족에게 어류는 최고의 반찬이다.
나 "박여사님, 내일은 어떤 생선이 식탁 위에 오를 예정이오?"
엄마 "뭐 먹고 싶은데?"
나 "음... 조기?"
엄마 "누가 이 씨 집안사람 아니랄까 봐."
나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엄마 "뭘 무슨 소리야. 네가 아빠 피 제대로 물려받았다는 소리지. 구이로 해줘, 조림으로 해줘?"
나 "음... 조기 구이!"
엄마 "그럴 줄 알았다."
누구나 어릴 적에는 부모님이 생선 가시를 발라주시면 아주 편하게 살만 쏙 골라 먹었을 것이다. 생선 몸통을 관통하는 큰 가시를 가지런히 빼내고 잔 가시까지 모두 제거한 뒤, 내 밥 위에 살포시 안착된 생선 살을 확인하면 입속으로 직행! 어른이 된 지금도, 아주 가끔씩 부모님이 생선 살을 발라 당신의 밥 위가 아닌 내 밥 위에 올려주실 때가 있는데, 왠지 모르게 행복해진다. 아주 큰 사랑을 받고 있는 기분이랄까.
가족 중에서 나만큼 생선을 좋아하고 많이 찾는 사람이 있다. 우리 아빠! 나는 가끔 가시 많은 생선이 식탁 위에 올라오면 손이 가지 않는데, 그럴 때마다 아빠는 "가시 많은 생선은 잔 가시를 다 제거하려고 하면 너무 힘드니까... 입안에 넣고 오물오물 씹어서 먹어. 그렇게 먹으면 얼마나 고소한데, 이걸 안 먹어?"라며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몸소 보여주신다. 또, 생선 살이 많은 부분을 다 먹고 손을 놓고 있으면 "어두육미 몰라? 생선은 머리가 제일 맛있는 거야! 여기 좀 봐봐, 얼마나 살이 많은데!"라고 호통 아닌 호통을 치시며 생선 머리 부분에 있는 살을 쏙쏙 빼 주신다. '머리에 무슨 살이 있다 그래'라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숨어있던 살들이 우르르 몰려나오면, 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젓가락을 들고 달려든다. 얌체처럼!
다른 가족들은 이미 식탁을 떠났는데, 생선 가시만 남은 걸 확인한 후에야 젓가락을 내려놓는 아빠와 나. 이럴 때면 역시 '입맛도 유전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누군가의 죽음이 낯설고 어렵기만 했던 7년 전,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처음 경험하게 된 나는 어떤 종류의 슬픔인지 표현하기 버거울 만큼 낯선 시간을 마주하게 됐다. 할아버지는 크게 아프신 적도 없었고, 연세가 많으셨지만 완만한 높이의 산을 자주 오르락내리락하실 정도로 건강하셨다. 초등학교 선생님부터 교장 선생님까지 지내시며 학교에서는 학생들과 교사들에게 존경받는 분이셨고, 가족들에게는 인자하고 다정한 어른이셨다.
할아버지가 병원에 계시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 가족은 부리나케 달려갔다. 2시간 거리에 계셨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우리는 지체할 수 없었다. 항상 건강하게 밝은 미소로 자식들과 손주들을 맞이해주시던 할아버지가 병원 침대에 누워서 힘겨워하시던 그 모습은 내 마음을 한순간에 무너뜨렸다. 죽음뿐 아니라 누군가의 아픔을 이렇게 곁에서 바라보는 것도 내게는 낯선 경험이었다. 이미 어른의 나이를 하고 사회생활을 당차게 해내던 나는 할아버지의 손을 꼭 붙잡고 어린아이처럼 한참을 울었다.
"할아버지, 아프지 마세요... 금방 일어나실 거죠?"
할아버지는 살며시 웃으시며 내 손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셨다. 어른들은 금방 일어나실 건데 뭘 그렇게 우냐고 일부러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오히려 내가 우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게 할아버지를 더 힘들게 만드는 것 같아서 꼭 잡았던 손을 내려놓고 병실을 나와버렸다.
그리고 며칠의 시간이 흘렀을까.
결국 할아버지는 가족의 품으로, 익숙한 그 집으로 돌아오지 않으셨다.
할아버지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배웅하기 위해 참 많은 손님들이 와주셨다. 정신없이 손님들을 맞이하며 슬픔을 잊기도 했으나, 시간적 여유가 생길 때면 우두커니 할아버지의 영정 사진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아빠가 생각났다. 아빠에게 할아버지는 일평생을 함께한 아버지고, 어쩌면 인생을 살면서 가장 큰 버팀목이 되었을 존재일 텐데, 얼마나 마음이 헛헛하실까. 마음이 쓰이기 시작한 순간부터 어느새 내 눈은 아빠의 동선을 따라 움직였다. 그러나 아빠는 놀라울 정도로 평온했다. 슬퍼하지도, 눈물을 흘리지도 않았다. 손님들 앞에서 내색하지 않으시려는 건가? 그러나 발인을 하는 과정에서도 아빠는 슬퍼하지 않았다. 어느 순간 나는 아빠의 모습이 이해되지 않고, 화가 났다. 어떻게 할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는 건지. 괜히 서운한 마음에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아빠와는 한마디의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어른이란 자연스럽게 감정을 잃어가는 것일까.
슬픔에 무뎌지고, 아픔에 익숙해지는 것일까.
할아버지를 보내드리고 모두가 일상으로 돌아가 슬픔을 잊고 태연하게 삶을 살아가던 중, 나는 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가족들끼리 일상과 사진을 공유하던 사이트에 아빠의 글이 올라왔다. 무심코 클릭을 했고, 나는 또 한 번 무너졌다.
아빠는 보름 동안 병원에 누워계시던 할아버지께 아무것도 해드리지 못한 것에 대한 죄송한 마음을 담아 글을 썼다. 원인을 찾기 위해 수많은 검사를 했고, 그 과정에서 할아버지는 물도 마음껏 드시지 못했다. 아빠를 비롯한 어른들은 그 상황을 누구보다 안타까워하셨지만, 치료를 위한 과정이기에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그저 집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편히 쉬게 해달라고 부탁하셨단다. 아빠는 자식 된 도리로서 아버지의 아픔을 외면할 수는 없었기에, 그 마음을 알면서도 치료에 대한 욕심을 냈던 것이 이제 와 후회가 된다고 했다.
'이럴 거라면 좋아하시던 미숫가루며, 조기며, 물도 마음껏 드릴 걸 후회가 됩니다'
아빠의 글을 읽어 내려가며 가장 마음이 아팠던 부분이다. 할아버지가 좋아하시던 음식이라도 더 드시게 해드렸다면... 하지만 내가 아빠의 입장이 되었더라도, 나 역시 끝까지 욕심을 버리지 못했으리라. 아빠의 글을 서너 번 반복해서 읽었을 때쯤, 당장이라도 아빠에게 뛰어가서 꼭 안아 드리고 싶었다. 그리고 말씀드리고 싶었다. 아빠는 최선의 선택을 한 거고, 할아버지도 그 마음을 알고 계실 거라고.
나는 식탁 위에 조기가 올라오면 할아버지 생각이 난다. 수많은 음식 중에 할아버지가 가장 좋아하셨던 음식. 그리고 그 음식을 마지막으로 드리지 못해 후회가 된다던 아빠의 글까지.
나 "아빠는 생선 중에 뭐가 제일 맛있어?"
아빠 "생선은 다 맛있지."
나 "에이~ 그래도 딱 하나만 고른다면?"
엄마 "아유 답답해. 뭘 고민해요. 당신 조기 좋아하잖아."
나 "아빠, 조기가 제일 맛있어?"
아빠 "맛있지. 조기, 참 맛있지."
엄마 "아버님 입맛을 어쩜 그렇게 쏙 빼닮았대. 그런데 그 집안 입맛을 얘가 다 받았다니까."
나 "인정! 나도 조기가 제일 맛있더라! 그런 의미로... 박여사, 내일은 조기구이를 부탁드리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