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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ly You Oct 23. 2020

쑤저우, 프롤로그

a sad start

멜번에서 남편의 1달 조금 넘는 짧은 일정이 마무리되고 우리는 또 짐을 싸 처음 가는 중국으로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짐을 싸다 보면 카타르에서 쓰던 것들, 브리즈번에서 쓰던 것들, 얼마 전 한국에서 사온 것들이 온 데 뒤엉켜 우리의 처지 (=국제 유람민)을 말해 주는 것 같았다.


심지어, 콘센트 모양도 제각각이었다. 헤어드라이어는 한국식 콘센트, 노트북은 호주식 콘센트, 카타르에서 산 고데기는 카타르 모양 콘센트.. 왜 콘센트 모양은 국제 통일이 되지 않는 건지... 우리는 많은 콘센트 종류만큼 어마어마한 개수의 어답터를 들고 다녀야만 했다.


카타르 모양(좌), 호주 모양(우)




그때 당시, 인천-멜번은 직항이 없었지만, 다행히 쑤저우-멜번은 중국동방항공이 운항하는 직항 노선이 있었다.

당연히 내 비행기 티켓도 학교에서 지원 해 주는 줄 알고 직항 노선을 끊으려고 했는데, 학교에서는 1년 중 6개월 이상만 해외에 나가는 교직원에 한해서만 비행기 티켓이 가족 몫까지 지원된다며 내 몫의 비행기 티켓은 내가 사야 한다는 게 아닌가. 하... 치사빤스....


 남편의 중국 근무 기간은 안타깝게도 180일이 되지 않았다.... 중국에서 운영하는 모나쉬 대학교의 1학기는 15주, 학기 시작전의 오리엔테이션 2주, 그리고 시작 전후로 각각 1주씩 더 붙는 등 이런 저런 계산으로 총 20주인가 22주인가, 하여튼 5개월 반 정도의 나날이었다.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났다.


매년 사람을 중국에 5개월 반이나 보내면서 가족 티켓은 지원을 해 주지 않는다니... 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어 내 티켓을 사려고 알아보니 이미 날짜가 코앞으로 다가와서 직항 티켓은 너무나도 비쌌다.


그 가격이 너무 부담스러워 경유라도 해야지 싶어서 찾아보니, 다행히 반 정도 되는 가격의 싱가포르 경유 티켓이 있었다. 하지만 싱가포르에서 10시간이나 대기를 해야 해 고민을 하고 있는데, 남편 그곳에 친한 친구가 있다며 가면 친구가 알아서 관광을 시켜 줄 거라며 싱가포르 여행까지 하고 좋지 않겠냐고 제안해 그 티켓을 발권했다.


그렇게 우리는 멜번을 거쳐 싱가포르로, 싱가포르에서 만난 남편의 친한 현지 친구 커플과 10시간동안 신나게 싱가포르 관광까지 알차게 하고 다시 중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새벽 2시에 싱가폴 출발, 새벽 6시에 상해 도착.


호주에서 싱가폴까지 6시간 비행하고, 싱가폴에서 친구와 10시간 쉴틈없이 돌아다니며 놀고, 또 새벽 2시에 잠들지도 못하고 좁은 이코노미석에 몸을 구겨넣고 쉬고 있으려니 정말 정말 체력적으로 힘들었다.


불편해도 눈을 겨우 붙이고 자려고 하는데, 깜빡 잠이 들려던 찰나 승무원이 굉장히 우렁찬 목소리로 잠든 우리에게 치킨 오어 비프를 외쳐서 잠이 다 달아나 버렸다.


보통... 자고 있으면... 안 물어보시던데...!!!!!


잠은 다 달아나 버렸다.

이왕 이렇게 된거 밥이나 먹자 싶었다.


뭘 먹을까 잠깐 고민하다가 비프를 받아들어 뚜껑을 열었는데.. 정말 처음 맡아본 희한한 향신료 냄새가 코를 찔렀다.


해외 생활 이력도 나름 오래라 각종 향신료도 익숙한 편이라 자부했지만, 이 냄새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레벨이 아니었다. 그래도 뚜껑을 땄으니 맛이라도 봐야지 싶어 한 입 넣었지만... 너무 역하게 받히는 향신료 냄새에 그만 그대로 뱉어버렸다.


트레이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냄새조차 괴로워 은박 뚜껑도 도로 닫아버리고 다시 눈을 붙이려고 했지만 한번 달아난 잠은 다시 올 생각을 않았다.


그렇게 한없이 괴로워하며 겨우 상해 푸동 공항에 도착했다.


한시바삐 따뜻한 침대에서 쉬고 싶었다.


멜번에서 만난 테리 교수가 한 말이 자꾸 생각났다.


-켈리, 쑤저우는 푸동 공항 바로 옆이야, 공항에 가면 기사가 너네를 태우러 대기하고 있을거야, 그 차를 타고 바로 아파트먼트에 가서 체크인 하고 쉬면 돼. 아파트도 얼마나 좋은지 몰라. 지은 지 5년도 안 된 새 아파트에다, 아파트 단지 1층에는 카페도 있고 아주머니들이 2주에 한번씩 청소도 해줘. 너가 청소 할 필요도 없어!!


그 말을 떠올리면서 조금만 참자, 조금만 힘내자를 되뇌었다.


공항에 도착하면 기사님이 기다리고 있을거고, 금방 아파트에 도착해 포근한 침대에서 쉴 수 있겠지.. 뜨거운 물에 오래오래 샤워를 하고 나서 암막 커튼을 치고 푹 자야지...


그렇게 자고 나면 천근만근 피로도 다 풀릴 거야. 그러고 일어나서 아파트 1층에 있다는 카페에서 커피랑 샌드위치 하나 먹으면 딱 좋겠다.






테리...

테리는 우리가 중국에 있는 내내 정말 착하고 좋은 최고의 길잡이였지만, 그리고 지금도 정말 좋은 친구지만,


(테리가 이 글을 못 봐서 참으로 다행이다)


나는 공항에 도착 후 내내 테리를 원망했다. 내 중국 생활의 시작이 그리도 비참했던 까닭은 테리의 말이 8할을 차지한다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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