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저의 신
지구를 향하여 날아오고 있는 거대비행물체와의 접선을 위해 출격한 엔터프라이즈호는, 수차례의 교신 끝에 그것이 의식을 가진 하나의 생명체란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비저’라고 소개했고, 왜 지구로 날아오고 있느냐는 질문에, 자신의 창조주를 찾기 위해 우주를 떠도는 중이라고 대답한다.
지구와의 충돌을 막기 위해 ‘비저’의 내부로 들어간 엔터프라이즈호의 대원들은, 중심부에서 두뇌의 역할을 하고 있던 낡은 탐사선 하나를 발견한다. 문자 o, y, a를 가리고 있던 녹을 지워내고 보니 ‘Voyager’라는 단어를 애초의 이름으로 지니고 있던, 300년 전에 인간들이 쏘아올린 보이저 6호가 바로 V-ger의 정체였다.
어떤 과정 속에서 의식을 얻게 되었는지, 어쩌다 거대한 생명체로 변모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비저가 찾아 헤맨 창조주는 바로 인간이었던 것. 그러나 비저는 인간의 몸에 영혼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논리적이지 못한’것으로 받아들인다. 그의 상식으로는 영혼이란 자신과 같은 기계들만이 지닐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스피노자는 삼각형에게 신이 있다면 그 모습은 삼각형일 것이라고 말한다. <에티카> 1부 공리 4, ‘결과에 대한 인식은 원인에 대한 인식에 의존하고 원인에 대한 인식을 함축한다’는 것. 결과라는 건 원인 단계에서부터 이미 정해져 있는, 전제의 관성이다. 비저의 입장에서 신은 자신과 같은 기계의 모습이어야 마땅했다.
보이저가 인간을 이해할 수 없었듯, 인간 역시 지극히 인간 중심적인 범주 내로 한정지은 신을 믿고 살아간다. 어떤 신을 믿고 살아가든, 걱정과 불안을 다독여 줄 수 있는 신앙이라면야 문제될 것이 없지만서도, 인간을 기준으로 한 한계이다 보니 인간의 美와 善에 봉사하는 신이 될 수밖에 없었다. 실상 신에 대한 불경이라고 판단되는 모든 행위가 신의 입장에서 정리된 것은 아니다. ‘보시기에 좋더라’ 역시 결국 인간의 눈에 보기 좋은 것들에 대한 찬탄의 메아리였을 뿐이다. 스피노자의 철학은 이런 전제로 인해 유대사회에서 파문을 당한다. 그러나 기꺼이 쿨하게 파문을 당해 준 유대인 철학자 스피노자이기도 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