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주의와 이기주의
아도르노의 ‘부정변증법’은, 말 그대로 헤겔의 변증법에 대한 부정적 변주이다. 헤겔의 철학서사는 반성의 과정(反)을 걸쳐 도달한 최종의 자리(合)에 진리가 존재한다는 결론이지만, 이 논리적 전개가 지니고 있는 맹점은, 진리로 정당화되는 귀결처가 때로 다수의 헤게모니라는 사실이다. 예를 들자면, 오른손잡이가 ‘정상’으로 인식되는 사회에서 왼손잡이가 자신의 ‘비정상’적인 천성을 반성하고 정상이 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게 상식으로 간주되던 시절도 있지 않았던가.
이런 현상은 동일자적 평균에서 벗어나는 것들에 대한 소외와 배제를 낳기 마련이다. 소외와 배제를 유발하는 진리가 어찌 진리일 수 있겠는가. 때문에 아도르노는 변증법이 진리의 자리로 규정한 곳에 놓인 진리의 속성을 부정한 것이다. 그 진리의 자리라는 명분으로부터 발생하는 소외와 배제를 보듬는 노력이야말로 진정한 진리일 수 있다.
아도르노는 파쇼의 원인을 독일에서 절정으로 피어난 관념철학에서 찾아내기에 이른다. 19세기까지 철학의 중심이었던 독일이 추구한 이성의 정반합은 언제나 게르만족 내에서만 순환하며 유대인이라는 소외와 배제를 낳았다. 결국 전체의 가치를 빌미로 다양성의 가치를 매몰시키는 담론에서부터 파쇼가 잉태된 것이다.
흔히들 극강의 개인주의가 이기주의가 되고, 집단주의가 극단으로 치달은 결과가 전체주의라고 생각하지만, 레비나스는 조금 다른 분석을 내놓는다. 독일의 파시즘과 관련해 그가 내린 결론은, 남들도 자신과 같은 생각일 것이라는 자의적 동일성의 전제하에서, 자아는 ‘전체’가 된다는 것이다. 결국 전체주의는 유아론(維我論)과 다를 게 없는 역설이다. 파시즘은 모두를 위한 공동선라기보단 이기심으로 점철된 각자의 욕망들이 함께 공유했던 창구에 지나지 않았다. 이기적 전체는 ‘보편’을 자처하며 그 보편의 기준에서 어긋난 모든 것을 배제한다.
정의론에서 자주 인용되는 비유 하나, 핵폭탄을 싣고 달리고 있는 기차가 있다. 그 기차는 많은 인구가 모여 살고 있는 메트로폴리스를 향해 가고 있다. 도시로 진입하기 전에 철로의 방향을 바꿀 기회가 있다. 바뀐 철로에는 하루에 기차가 단 두 번밖에 서지 않는 간이역이 기다리고 있다. 간이역에는 단 한 명의 철도청 직원이 근무하고 있을 뿐이다. 자! 어떤 선택이 더 합리적일까?
당신이 메트로폴리스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입장이라면 철로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 낫다고 판단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에 그 철도청 직원이 당신의 아버지라면 어떨까? 결코 죽을 운명이 아니었지만, 집단의 논리에 자신의 아버지는 부당한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이 부당함의 호소는 개인주의일까? 그렇다면 메트로폴리스에 대한 구원은 공공의 논리일까? 그 조차도 나와 관계된 무엇으로 판단되는 개인주의는 아닐까? 더군다나 기차를 타고 있는 승객들은 이미 죽고 사는 문제로부터 논외가 되어 있다.
직간접적으로 나랑 관련 없는 일들에 대해선 충분히 이성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다. 그 태도가 정말로 이성적인 것인지에 대한 이성적인 평가는 차치하고서라도 말이다. 개인적인 의견이 아닌 다수에 기반한 상식이라는, 특정 다수의 방어막 뒤로 숨는 무정함이기도 하다. 키에르케고르의 말을 빌리자면, ‘대중’과 같은 무정형의 추상들과 자신을 동일시함으로써, 자신들의 말과 생각에 대한 개인적인 책임을 회피하는 전체주의적 이기심이다. ‘다수의 생각’이라는 망상적 보편에 서로서로 기대어 있는 이기주의이기도 하다.
1차 대전의 패배와 뒤이은 경제대공황 앞에서의 절망을 마주한 독일 국민들은, 히틀러를 독일의 희망으로 간주하며 나치를 제1당의 반열에 올려놓는다. 들뢰즈가 지적하길, 파시즘은 독일 대중들이 원했던 것이고, 설명해야 할 것은 이데올로기가 아닌 ‘욕망의 도착(倒錯)’이다. 아도르노는 무엇이 나치즘을 탄생시킨 것인가에 대해 묻고, 그 대답을 서양철학이 쌓아올린 관념론의 내부에 존재하는 이성의 폭력성에서 찾아냈다.
인간을 자연의 한 표현으로 생각했던 동양과 달리, 자연을 인간이 극복해야 대상으로 규정한 서양의 역사였다. 신의 모습으로 창조되었다는 명분으로, 자연을 인간의 이성 아래 두었던 합리의 역사는 헤겔에서 정점을 찍는다. 그는 국가라는 이성으로부터 개인의 자연성을 소외시키기에 이른다. 헤겔에게는 개개인의 욕구가 가장 보편적으로 지양된 합의점이 국가라는 기구였지만,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다수를 위한 개인의 희생을 정당화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 철학이기도 했다. 이 ‘국가’가 무솔리니에 의해 재해석되면서, 그 병리적 이데올로기가 히틀러에게 영향을 미친다.
철학사의 거점으로서 당위성과 매력을 지니고 있는 헤겔의 철학이지만, 후학들에게 두고두고 욕을 먹는 이유는, ‘절대’라는 명분으로 전체의 체계에서 개인들의 관점을 소외시키는 전체주의의 명분이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이는 개개인의 ‘관점’을 중시하는 니체주의자들이 거부하는 사유방식이다.
히틀러를 준비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조국에 대한 니체의 지적은 틀리지 않았던 셈이다. 히틀러라는 악마의 꼬드김, 그러나 그 꼬드김에 넘어간 어리석음도 면죄부의 자격은 아니다. 히틀러는 당시 독일의 원인이 아니라 ‘증상’이었던 것뿐이다. 독일은 히틀러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지 않았다. 그를 떠받들었던 자신들의 광기를 반성하는 것이었다.
독일 지성들은 자신들이 ‘광기’에 사로 잡혔던 이유를, 선진을 표방하며 외국으로 수출까지 하던 주입식 교육에서 찾아냈다. 이성적 사고력을 가르친다고 말하지만 획일적인 도식과 체계를 강요할 뿐, 정작 생각하는 법을 가르치지 않고 있었던 것으로 판단한 히틀러의 후손들은 교육부터 갈아엎는다. 그런데 이도 68혁명 이후의 일이고, 약소국에 대한 사과에는 여전히 애매한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