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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 벤야민, 소비사회 - 상품, 쇼핑, 위안, 평등

보드리야르와 토크빌

by 철학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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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 즐비한 상점들에 진열된 상품들에겐, 그 거리를 걷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잠재적 고객이다. 그 도시의 산책자들(보들레르 표현)에겐 진열된 모든 상품이 내 것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이로써 공공의 장소는 사적인 성격 또한 지니게 되는 것이다. 벤야민의 표현을 빌리자면, 옷 가게의 쇼윈도는 자기 집의 옷장으로 연결되어 있는 사적 공간이다.


대중들은 이 거리에서의 소비행위로 평등을 누린다. 누군가는 에르메스를 사기 위해서 3달치 봉급을 때려 박고, 누군가는 1달치 봉급으로 에르메스 3개를 살 수 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에르메스 매장에 들어서는 순간에는, 고객이든 호갱이든, 어찌 됐건 그 모두가 구매자로서의 대우를 받는다.


보드리야르가 지적하는 소비사회의 문제가 이런 평등에 관한 신화다. 이에 보드리야르는 토크빌의 민주주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민주주의가 소중히 여기는 평등의 가치가 왜곡되어, 계량화 된 행복의 가치로 소비의 결과를 평준화하려 든다는 것. 그 결과 남이 사는 건 나도 사야하고, 남이 해본 건 나도 해봐야 하는, 이것이 곧 소비사회가 종용하는 평등의 가치라는 것.


비근한 사례가 한때 한국의 중고등학생들 모두가 ‘평등하게’ 노스페이스 패딩을 교복화해버린 현상이 아니었을까? 치기 어린 시절에 멋모르고 그런 것이라고 치부하기에는, 그대가 지금 지니고 있는 그것과, 내일 사려고 하는 그것은 뭐가 좀 다르냐 말이다.


벤야민의 키워드인 아우라와 복제 개념은 삶의 양식에도 적용이 된다. 평등의 가치와 기치 아래 삶의 양식도 복제가 된다. 벤야민이 지적하는 문제는 개인의 스토리텔링이 사라진다는 사실이다. 균등화를 목적으로 하는 삶에, 개성의 아우라가 존재할 이유도 없다. 각자의 사연으로 써내리는 삶의 스토리텔링에는 서툰 주체들이 양산되는 시절, 그 공허함을 따돌리는 방편은 도심의 거리에서 고객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소비사회의 상품이 우리에게 건네는 위안이다. 그러나 정신분석의 언어로 바꾸자면 하나의 '증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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