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석사 논문을 쓸 때 이야기다. 경영대학원에서 논문은 중요했다. 모든 과목을 통과(pass) 해도 논문이 통과되지 못하면 졸업이 아닌 수료가 된다. 똑같은 과정을 겪었어도, 논문이 하늘과 땅을 가른다.
영어로 써야 하는 논문은 졸업 학기에 과목으로 배정된다. 과목을 수강하며 연구 방법을 배우고, 나만의 논문 주제를 정하게 된다. 이때 지도교수의 역할이 무척 중요한데, 사실 지도교수는 ‘석사 수준에 적합한’ 합리적인 연구를 유도한다. 여기서 ‘합리적’이라는 표현은 ‘적당히’와 같다. 이미 통과한 졸업생들의 노하우와 교수의 팁들이 더해지며, 수월히 마무리될 주제와 방법이 자연스럽게 정해진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그랬다. 이건 통과를 위한 과정일 뿐이지, 영혼을 담을 일은 아니라고. 나는, 조금 달랐다.
나는 석사 논문을 하나의 인생 이벤트로 여겼다. ‘이런 일을 언제 또 해볼까?’라며, 마치 내 인생 마지막 석사 논문이라고 생각하고 그걸 대했다. 회사를 다니고 있었기에, 내가 직접 실무 경험이 있는 분야를 주제로 삼았고, 방법론도 치밀하게 설계해 양적(quantity)·질적(quality) 복합 연구를 택했다. 왜 그래야 하는지, 그 타당성도 그럴듯하게 준비했다. 그런데 교수는 좀처럼 설득되지 않았다. 일단 주제가 이해가 되지 않고, 왜 이렇게 복잡하게 설계하냐고. 나는 여러 차례 수정해 가져갔지만, 교수는 나중에는 “그냥 예시 중 하나를 선택해”라고 말하며 고집스러운 나를 점점 관심에서 밀어냈다. 정해진 주제로, 정해진 방법대로 빠르게 절차를 마무리하는 학생들에 비해 나는 매우 진행이 더뎠다.
결국 나를 등한시하는 교수를 학교 측에 정식으로 문제 제기했고, 지도교수가 바뀌는 초유의 일을 겪었다. 이후 나의 주제는 약간의 수정을 거쳐 승인받았고, 방법론도 대부분 받아들여졌다.
이후에는 더 많은 정성을 들였다. 설문조사와 인터뷰 대상을 직접 찾아다녔고, 한 문장 한 문장, 교과서나 기존 논문을 참고하되 가능한 한 내 언어로 표현하려 했다. 영어 실력은 부족했고 주제도 난해했지만, 나는 모든 것을 직접 썼다. 어떤 학생들은 기존 논문을 거의 베끼거나, 한글로 써놓은 글을 번역 대행 서비스에 맡기기도 했지만, 나는 내 방식을 고집했다. 학교에서 제시한 목표 분량은 8,000~10,000 단어였지만, 나는 16,000 단어에서 줄여야 할 정도로 내용을 밀도 있게 썼다. 최종 마감일에서 일주일을 더 양해받고, 양장본으로 출력한 논문을 급행 비행기로 영국 본교에 겨우 보낼 수 있었다. 이후 한 달여간 심사 결과를 기다리며 마음을 졸였다.
결국 나의 논문은 통과했다. 하지만 들인 정성에 비해 평가 점수는 낮았다. 함께 수학한 대부분의 학생들도 통과했다. 내가 아는 한국 동기들 중에는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졸업했다. 나는 다른 학생들보다 더 난해한 과정을 겪었고, 더 고집스럽게 나만의 방식을 고수했으며, 더 많은 정성을 들였지만, 점수는 그들보다 높지 않았다. 그 경험을 통해 MBA 논문이란 결국 박사처럼 인류의 지식에 기여할 학술적 목적보다는, 이후 실무에 활용될 수 있는 연구 훈련이자 통계 수업에 가깝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결과는 초라했지만,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그 논문을 완성하는 데 들인 시간과 에너지는 내 삶의 태도와 방향성을 스스로에게 각인시킨 결정적인 경험이었다. 누군가는 그 과정을 ‘비효율’이라 부르겠지만, 나는 그 안에서 진정성을 발견했고, 그건 지금도 내 성향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그런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직업상 글을 써본 경험은 있었지만, 브런치는 달랐다. 이곳에서 받는 공감은 ‘작가로서의 공감’처럼 느껴졌고, 그래서 더 좋았다. 그렇게 6~7년을 꾸준히 써오고 있다. 물론 중간에 잠시 침묵의 시간도 있었지만, 나만의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으로서 브런치는 언제나 유효했다. 하지만 글을 쓸수록 이런 질문이 자주 떠오른다. “나는, 브런치를 통해 작가가 될 수 있을까?”
여전히 매 글마다 정성을 들이고, 나만의 방식을 고집하며, 내 언어로 써 내려간다. 존경하는 작가들의 글도 많이 접하지만, 그 느낌에 내 글을 대입해 보면 어색해서 다시 나의 세계로 돌아오게 된다. 하지만 그런 글들 대부분, 공감은 얻어도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몇 년간 꾸준히 글을 써왔지만, 조회수나 구독자, 댓글 같은 지표로 보면 나는 여전히 ‘비인기 작가’에 가깝다.
그래서 한때는 글 조회수나 좋아요 수를 근거로, “나는 글을 잘 못 쓰는구나”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리고 인기 있는 작가들의 글을 일부러 찾아 읽었다. 그들의 글은 제목이 자극적이거나 호기심을 유발하고, 내용은 짧고 명확하며, 대중의 아픔이나 일상의 에피소드를 쉽게 풀어낸 것들이 많았다. 클릭을 유도하는 이미지, 제목, 구성—그건 마치 광고 문법과도 비슷했다. 나도 한때 글을 꾸며보고, 자극적인 제목을 달아보기도 했지만, 점점 내가 쓰고 싶은 글과 읽히는 글 사이에는 큰 간극이 있다는 걸 절감하게 됐다. 결국, 나는 내가 쓰고 싶은 글을 계속 쓰기로 했다. 오래전, 석사 논문을 쓸 때와 마찬가지로.
브런치의 한 작가님은, '브런치를 시험의 장으로 삼지 말고, 꾸준함의 원동력, 글의 저장소, 지나는 과정으로 받아들일 것'을 이야기했다. 브런치라는 플랫폼의 성격, 주를 이루는 글의 유형, 그리고 독자층의 성향은 작품의 세계에서 일부에 지나지 않으므로, 진짜 세상과 소통할 글, 책으로 엮을 작품은 그에 적합한 장소에서 평가받아야 한다고. 공감했다.
브런치 안에서의 인기에 비해 나는 나름대로 분에 넘친 기고 제안을 여러 번 받았다. 공저의 기회도 이곳에서 얻었고, 그 전후 달라진 것 없이 여전히 꾸준히 글을 쓰는 원동력도 이곳에서 유지 중이다. 요즘 나는 두 가지 글을 쓴다. 하나는 소설, 하나는 에세이다. 그중 소설은 처음 시도하는 글이다. 그래서 설레고, 배움이 즐겁다. 다만 브런치에서는 소설이 에세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받기 어려운 글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전하기에는 소설이 더 적합하다고 여겼다. 그래서 쓴다.
아직 글은 내 직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는 글이 좋아서 쓰고, 그래서 진심으로 언제나 그것을 대한다. 언젠가는 좋은 작품을 써보고 싶다. 그래서, 앞선 질문을 이렇게 바꿔보려 한다.
나는, 세상과 소통하는 작가가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