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로 점을 좋아하세요

홍대 서교동에서 사업을 할 때 가끔 심심풀이 삼아 타로 카페에 들르곤 했다. 아기자기한 홍대 거리 곳곳에 무수히 많은 타로 카페가 성업 중이다. 그 거리의 타로 상담사들의 기량은 천차만별이다. 나는 길을 걷다 끌리는 대로 눈에 띄는 곳으로 들어가 점을 봤다.


원래 사주나 신점 같은 정해진 운명을 단정짓는 방식에는 큰 흥미가 없다. 하지만 타로는 거부감이 없다. 점이라기 보다 기분 전환이자 가끔은 사업의 방향성을 점검하는 작은 계기, 그 정도였다.


한번은 회사의 중요한 프로젝트가 지지부진하게 흘러가 답답하던 차에 타로 카페를 찾았다. 타로 상담사는 내 손에 부적 하나를 쥐어주며 지갑에 넣어두라고 권했다. ‘부적은 좀 오버 아니야’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신기하게도 그 프로젝트는 예상 밖의 속도를 내며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그게 정말 부적 덕분이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다만 그때 느낀 묘한 긴장감과 의외의 몰입은 아직도 생생하다.


생각해보면, 어릴 적 할머니 곁에서 어깨 너머로 배운 화투점도 비슷했다. 그 나이에 반가운 손님이 오실 지, 뜻밖의 횡재수가 터질지 따위가 뭐 중요했겠는가. 그냥 화투패를 펼치고 그 상징 체계를 나만의 언어로 미래를 상상하는 행위 자체가 재미있고 신비로웠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많은 점술이 있는데 저마다의 독창적인 상징 체계를 가지고 있다. 나는 미래의 운명을 예측한다는 개념보다 점술의 상징 체계가 품은 의미와 상상력에 더 큰 흥미를 느낀다. 미래 또한 그 상징 체계에 영향을 받기도 한다.


그것이 심리학자 칼 융이 말한 ‘싱크로니시티(synchronicity)’이다. 싱크로니시티란 단순한 우연이 아닌 ‘의미 있는 우연의 일치’를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점술은 싱크로니시티의 종합예술이라 할 만 하다. 점술은 결국 미래를 맞히는 도구가 아니라, 내 안의 무의식과 상상력을 비추어 보는 또 하나의 거울인지도 모른다.


그중에서도 나는 타로에 특히 매료되었다. 세상이 빛과 어둠, 선과 악처럼 이분법적으로 나뉘듯, 타로 또한 78장의 카드가 정방향과 역방향으로 갈라지며 상징적 메시지를 던진다. 이 단순한 구조 속에서 펼쳐지는 무한한 해석의 가능성은, 결국 나를 들여다보는 또 다른 방식의 철학적 놀이가 아닐까 싶다.

Tarot and me.png


다음 회 예고:

이제는 타로 리딩도 달라졌다. 상담실 문을 열고 들어가던 시절에서, AI와 타로 카드를 마주 앉는 시대로 넘어온 것이다. 특히, 챗GPT 같은 생성형 AI를 통해 타로 리딩을 경험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이 질문은 다음 회에서 함께 풀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