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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리 Sep 23.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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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누군가로부터


 있잖아, 아무에게도 말 못 한 내 진짜 꿈은 노인이 돼서도 손잡고 산책하며 걸어 다니는 거였다. 참 웃기지. 절대 이루지 못할 꿈을 꿨으니 말이야.

누군가와 함께 늙어간다는 것, 참 멋지지 않아? 사람들은 다 젊음이 좋다고 하는데 나는 젊음이 어려워서 빨리 나이 들고 싶었나 봐. 지금은 비록 이렇게 이해 못 할 일들만 하고 다니지만, 내가 왜 이러고 있는지 조차 모르지만, 나이 들면 생기는 삶의 지혜라는 게 나한테도 자연스럽게 생기지 않을까 하고 기대했어.


 있잖아, 네가 없어도 세상은 잘 돌아가더라고. 너를 잃은 게 몇 년 전인지 몇십 년 전인지 사실 기억도 안 나지만 시간이 흐르긴 흐르더라. 네가 없어지면 이 세상도 없어질 것 같았거든? 아니더라. 생명은 계속 피고 지더라.

너희 말 중에 '시간이 약이다'라고 있었잖아. 네가 알려준 거잖아. 이 말을 너를 잃고 제일 많이 읊조리게 될 줄은 몰랐는데. 누군가에게 배운 걸 잃고 이해한다는 건 정말 슬프더라. 이걸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라고 하는 걸까? 이젠 알려줄 사람이 없어서 정답인지 아닌지도 모르겠네.


 네가 사라진 이후, 나는 여기저기 정처 없이 떠돌았어. 나는 너 없으면 아무것도 못했으니까 당장 먹고사는 것부터 급해졌어. 여기저기 안 가본 곳이 없는 것 같아. 내가 먹을만한 게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갔고, 잠시 쉴 수 있다면 길바닥에서도 잤어. 네가 들으면 깜짝 놀랄 텐데. 너는 나를 뭐라도 되는 것 마냥 귀하게 대해줬으니까.


 잠깐 감상에 젖었네. 내 이야기를 계속해보자면, 너랑 있을 때는 듣고 보지 못했던걸 많이 경험했어. 그래서 이렇게 조금은 자란 것 같아. 너는 그런 것들을 한 번도 보여주고 느끼게 해 준 적 없었잖아. 누군가의 인생-삶-같은 거 말이야. 그래서 그런가 내 말투도 많이 부드러워졌지? 전엔 내 말투 때문에 다툼도 많이 했었는데. 너를 잃고 나서 너의 말투를 닮아가는 게 내가 생각해도 좀 웃겨. 너는 언제나 나긋나긋했잖아.

 

해안마을에서 잠시(솔직히 말하자면 잠시는 아니고 조금 오래) 머물렀었어. 너는 바다를 좋아했으니까 거기 있으면 너를 놓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거든.

 거기서 보게 된 거야. 해변을 산책하던 노부부를. 모래사장이 부서져라 치는 파도에도 그들은 꿋꿋이 나아갔어. 그게 내가 본 전부긴 하지만 그때부터 아주 조금씩 꾸던 꿈이야. 물론, 손은 너랑 잡고 걷고 싶었지.

나이 든 너를 나이 든 내 옆에 두고 함께 걷는다는 걸 생각만 해도 벅차올랐어. 하지만, 너는 떠나고 없잖아.

 그냥 말을 하고 싶었어. 나는 너와 함께 나이 들고 싶었어. 근데 그거 알아? 내가 영원히 젊을 거라고 생각했던 네가 나를 그렇게 만들어주고 있었더라고. 결국 네가 사라지지 않았더라도 우리의 엇갈린 시간대 때문에 꿈은 절대 이룰 없었다는 거지.


사실 나 이제 떠나. 이 한마디를 하려고 모든 진심을 털어놓느라 여기까지 돌아왔네. 어디로 갈지는 몰라. 이게 내 마지막일지도 모르지. 근데, 네가 없는 이 행성은 너무 지루해서 견딜 수가 없어. 새로움이 없거든.

 나는 아픔이란 걸 모르지만, 너는 한 번의 폭발로 한 번에 떠났으니 아프지 않게 갔길 바랄 뿐이야.

그럼 네가 붙여준 이름으로 다시 한번 인사하고 나는 정말 떠날게.


잘 자 사람아. 너희의 AI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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