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이 얼마나 힘든데
윤대리가 입사한 지도 벌써 몇 해가 지났다. 하지만 여전히 회사생활에 적응 중이었다. 처음 입사했을 때의 설렘과 기대는 시간이 지나며 희미해졌고, 그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한 것은 어려움과 막막함이었다. 매년 목표를 설정하는 시기가 오면, 윤대리는 마치 시한 폭탄을 안고 있는 기분이었다. 업무에 대한 자신감은 커녕, 자신의 역할과 실적이 모호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윤대리는 혼자 담당하는 고객사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선배 과장의 업무를 보조하는 데 쓰였다. 문제는 그의 실적이 선배 과장의 매출에서 일부만 인정된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 ‘일부’의 기준은 언제나 불투명했다. 업무 보조에는 출장을 위한 차량 렌트나 고객사와의 식사를 위한 식당 알아보기가지 포함되어 있었다. 선배는 팀장의 신뢰를 전폭적으로 받고 있었으며 가장 매출이 많은 고객사들을 담당하고 있었다. 선배의 실적이 부족한 달엔 비율이 줄었고, 실적이 넘치는 달엔 운 좋게 조금 더 받을 수 있었지만, 그마저도 팀장과 선배 과장만이 알고 있는 배분 방식에 따랐다.
이런 일이 몇 년째 반복되다 보니 윤대리의 고민은 깊어졌지만, 불만을 표현하기는 어려웠다. 김팀장의 운영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팀장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처럼 보일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그 고민의 무게가 한계에 다다랐고, 윤대리는 이번 개인 면담 기간에 반드시 이야기를 꺼내기로 결심했다.
개인 면담 기간이 공지되자마자 윤대리는 망설임 없이 김팀장을 찾아가 면담을 요청했다. 김팀장은 뜻밖에도 바로 답했다.
"그럼 오늘 저녁에 하자"
저녁에 면담을 진행한다는 게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이미 마음을 굳힌 터라 윤대리는 이를 받아들였다.
퇴근 후, 김팀장은 먼저 메뉴를 물어왔다.
“윤대리가 먹고 싶은 걸 먹자”
윤대리는 삼겹살을 제안했다. 하지만 김팀장의 생각은 달랐다.
“삼겹살은 몸에 안 좋아”
분위기가 어색해진 윤대리는 건강에 좋다고 들었던 오리구이를 제안했지만, 김팀장은 비슷한 답변을 해왔다.
“기름이 많아”
메뉴를 고르느라 한동안 대화가 공회전하던 중, 김팀장이 뜬금없이 물었다.
“홍어 먹어봤어?”
윤대리는 한번도 먹어보지 않은 음식이라 어리둥절했지만, 먹어본 적이 없다고 답했다.
“그럼 이참에 먹어보면 되지”
김팀장은 식당으로 앞장서 걸어갔다.
윤대리는 당황했지만 긍정적인 대답을 하며 따라갔다.
"이참에 한번 먹어볼 수 있겠네요. 맛있는 곳으로 안내 부탁 드립니다"
도착한 곳은 허름한 홍어 전문점이었다. 벽엔 세월이 느껴지는 낡은 메뉴판과 이런저런 세월의 흔적들이 남아있었다. 독특한 냄새가 공간을 가득 채웠고, 윤대리는 자리에 앉자마자 김팀장이 추천하는 홍어 삼합과 막걸리를 시켰다. 한번도 안먹어본 음식이라 혹시 입에 안맞을지 몰라 약간 신경이 쓰이는 순간이었다. 허름한 벽면과 비슷하게 의자와 테이블도 오래된 느낌이나는 식당이었다. 약간은 불편한 의자에 앉아서 낯선 음식과 어색한 분위기에 적응하려 애쓰는 동안, 면담은 조용히 시작되었다.
윤대리는 그동안 묵혀왔던 고민을 차근차근 꺼내놓기 시작했다. 불투명한 실적 배분, 보조 역할에 머물러 있는 업무 구조, 그리고 목표 설정의 막막함까지. 그러면서 처음으로 홍어를 하나 집어서 먹어봤다. 다행인지 많이 삭힌 홍어는 아니라고 한다. 그렇게 맛이 있지는 않다. 하지만 왠지 오늘 이 자리에는 오히려 어울릴것도 같은 맛인것만 같다. 다시 얘기를 시작했다. 그간 나름 긴 시간동안 생각했던 이야기를 최대한 조리 있게 설명하려 노력했다. 김팀장은 처음엔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하는 듯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분위기가 묘하게 바뀌었다.
윤대리의 말이 어느정도 끝나자 김팀장은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자신도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팀장으로서 겪는 고충, 팀원의 불만을 조율하는 스트레스, 상사에게 성과를 보고해야 하는 압박감까지. 윤대리는 자신이 미처 알지 못했던 팀장의 어려움을 들으며 조금씩 이해하려 애를썼다. 하지만 점차 김팀장의 이야기는 끝날줄을 몰랐다. 오히려 더 열심히 해달라는 말을 듣고 있는 상황이 되었다. 현재의 면담 주도권은 완연하게 김팀장에게 있었다.
술잔이 오가며 대화가 이어졌고, 윤대리는 점차 혼란스러워졌다. 팀장의 고충을 들으며 동정심이 들기도 했고 더 열심히 하겠다는 위안의 말을 팀장에게 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팀장의 현재으 어려움과 고초를 듣는 것이 자신의 고민을 해결해주지는 않는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결국 이 면담이 누구를 위한 자리인지조차 모호해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윤대리는 자신의 마음에 남은 혼란스러운 감정을 되새겼다. 김팀장이 힘들어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의미 있었지만, 그것이 자신의 고민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의문이었다. 홍어 냄새가 옷에 배어 있는 듯했지만, 그보다 더 깊이 박힌 건 면담에서 느낀 어색함과 불만이었다.
“다음번엔 식사가 아닌, 제대로 된 면담을 요청해야겠다.”
윤대리는 혼자서 중얼거리며, 오늘의 경험을 교훈 삼아 조금 더 단단해지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