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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개인적 자살은 없다

모든 자살은 사회적 타살이다

by 김영무
adam-jicha-zf4oAHmPqYA-unsplash.jpg Photo by Adam Jícha on Unsplash


명언이라고 느낍니다. 기사는 언론인의 입장에서 자살이라는 단어의 사용을 극단적 선택이라고 표현하지 말고 다른 용어가 필요하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극단적 선택이라고 표현하면 마치 누구나 자살을 자기 주도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는 뉘앙스를 풍길 수 있기 때문이라며 말이죠.


하지만 제게 가장 크게 다가온 문장은 “세상에 개인적 자살은 없다. 모든 자살은 사회적 타살이다. 자살 생각자는 스스로 지옥에서 못 벗어난다.”입니다. 아주 공감이 가는 문구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초등학생 때 자살을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시험 점수가 터무니없이 떨어져서 비교적 모범생이었던 당시의 저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을 도피하고 싶었죠. 엄마에게 점수를 내밀면서 죽고 싶다고 말했다가 같이 울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엄마 덕분에 시험 점수는 죽고 사는 문제와 비교할 수 없다는 걸 배웠죠.


그 뒤로는 신앙이 굳건해지면서 아무리 어려운 일이 생겨도 죽음을 생각하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한번 어떤 것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면 계속 그 생각이 강화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조언이나 책을 통해 얻는 조언도 거부하게 되지요.


저출산으로 국가 비상사태가 된 지금도 하루 평균 37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2021년 1만 2252명, 2022년 1만 3352명, 2023년 1만 3770명, 매년 늘어납니다.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가 된 것이 19년째 연속이라고 합니다.


제가 사회적인 이슈 중에서 관심이 가장 큰 것 두 가지가 자살과 장애인 문제입니다. 자살은 그 생명이 사회에서 그 순간의 어려움을 참아내고 살아간다면 얼마나 많은 가치를 세상에 표현할 수 있을지 아무도 상상할 수 없다는 점에서 사회적으로 아주 큰 손해라고 생각합니다.


젊은 사람의 자살일수록 더 큰 손해입니다. 살아갈 날이 더 많은 만큼 상상을 초월하는 기적들이 그 사람의 손에서 나타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걸 세상에 내놓기도 전에 미리 목숨을 손절해 버리는 것은 그 자신에게도, 가족에게도, 사회에도, 국가에도 아주 큰 손해입니다.


자살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살아야 할 이유를 만들어야 합니다. 가장 쉽게 만들 수 있는 이유는 세상에 대한 흥미, 관심이 아닐까요? 관심이 생기면 그걸 더 알아보고 싶고, 그러자면 살아남아 시간을 들여 더 알아보아야 합니다.


그것은 취미가 될 수도 있고, 운동이 될 수도 있으며, 사람에 대한 관심이나 사랑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잘 모르겠으면 일단 대형 서점에 찾아가 보세요. 제목만 쭈욱 살펴보면 내가 어떤 분야에 흥미를 가질 가능성이 있는지 찾을 수 있습니다. 관심이 가는 책의 제목들을 모아보는 거죠.


세상은 당신을 필요로 합니다. 당신이 아니면 만들 수 없는 것이 분명히 있습니다. 온 우주가 아무 이유 없이 당신을 세상에 보냈을 리가 없어요. 한 영혼이 얼마나 소중한데. 영혼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데. 절대로 이유가 없을 리가 없습니다.


오늘의 질문: 살아오며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다시 살 힘을 하늘이 내려주시길.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당신도 그러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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