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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공원 알바는 [디즈니만이 하는 것]을 어떻게 읽을까

<21화-놀이공원 개똥철학. 02>

by 케빈

유년시절을 보낸 대구에는 '우방랜드'(현 e월드)로 불리는 큰 놀이공원이 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만 하더라도 연간회원권을 구매해 가족들과 함께 갈 정도로 놀이공원과 가까운 삶을 살고 있었다. 난이도가 상당한 놀이기구를 타면 다음날 학교에 가서 친구들에게 자랑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토이스토리의 앤디가 시간이 흘러 과거의 추억이 담긴 장난감을 정리하듯, 나의 삶에서도 시간이 흘러 놀이공원이라는 단어가 어느새 빠져나갔다. 대한민국 학생들이라면 한 번쯤 가봤을 만한 에버랜드나 롯데월드도 가본 적 없다. (연애를 하고 있으면 놀이공원 데이트라도 했겠지만?!) 놀이공원에 관심 없는 삶이 십여 년 지속되다 보니 곡성에 놀이공원이 있다는 것도 몰랐고, 처음 면접 보러 갈 때 '곡성에 놀이공원이 있어?'라고 스스로 놀라기까지 했다.


한국인 평균보다 확실히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구나를 다시금 깨달았다. 운명적으로 찾아온 놀이공원과의 인연에서 수많은 궁금증들이 뿜어져 나왔다. 출근 이튿날 과장님한테 드린 질문이 “혹시 저 관람차 가격이 얼마인가요?”였다. 놀이공원에서 일하다 보니 이 산업은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고, 어떤 부분에서 어느 정도 수익이 발생하고, 놀이기구 대당 가격은 얼마이고, 보통 신제품으로 사는지 중고로 사는지, 한국에서 만드는지 외국에서 수입해오는 건지, 수익을 높이기 위해서는 어떤 방식을 취해야 하고, 이 산업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이고, 이 분야에서 최고의 퍼포먼스를 내는 리더와 기업은 누구인지 궁금해졌다.


관람차를 운행하며 이 질문들을 곱씹을 때 순간적으로 한 기업과 책이 떠올랐다. 바로 ‘디즈니’와 디즈니 CEO 밥 아이거가 쓴 ‘디즈니만이 하는 것’. 사실 2020년도에 책이 처음 나왔을 때 30쪽 까지 읽다가 서재에 다시 꽂아 놓았기 때문에 금방 떠올릴 수 있었다. 2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꿈에서도 생각 못한 놀이공원에서 일할 때 이 책을 읽다니. 정말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건가 싶었다. 2년 전과 다르게, 질문에 대답을 찾고 싶었기에 아주 경쾌하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디즈니의 역사보다 밥 아이거라는 사람의 삶의 궤적에 초점을 맞춘 느낌이었다. 그러니 ‘왜 디즈니 이야기는 하지 않고 자기 이야기만 하는가?’라고 의문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의 삶을 빼놓고 애플을 이야기하지 않듯, 밥 아이거라는 사람이 태어나 디즈니 CEO 자리에 임명되기까지 만난 수많은 사람들과 기회들에서 얻은 배움을 토대로 디즈니를 진두지휘 하였기에 필연적으로 다루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딱딱한 기업의 이야기보다 똑같은 인간으로서 이야기로 접했을 때 더 깊숙이 다가올 수 있지 않을까?


배틀그라운드를 만든 크래프톤의 이야기를 담은 [크래프톤 웨이]와 더불어 지금까지 읽은 경영 관련 서적 중 가장 가슴에 와닿았다. 세계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수장의 인생이 정확한 묘사와 군더더기 없는 표현 그리고 깔끔한 전개들로 진행되니 마치 뉴욕의 한 스테이크 하우스에 밥 아이거와 마주 앉아 그가 자신의 입으로 말해주는 삶의 경로와 희로애락을 듣는 듯했다.


다른 모든 일도 마찬가지겠지만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인지가 핵심이다. 주변의 평가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의 동기와 자신이 신뢰하는 사람들의 조언, 면밀한 조사와 분석의 결과 그리고 분석을 통해 알 수 없는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요소를 따져봐야 한다. 어떤 상황도 서로 같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며 이 모든 요소를 신중하게 고려하고 나면 리더의 직감이 궁극적 잣대로 작용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이것은 과연 올바른 결정인가 아니면 그렇지 않은가?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적어도 큰 리스크를 기꺼이 감수할 필요는 있다. 큰 리스크를 감수하지 않으면 그만큼 빛나는 성과도 없다.

[디즈니만이 하는 것- 밥 아이거 지음]


책을 다시 집어 들 때는 ‘도대체 디즈니는 어떻게 세계 최고가 되었는가?’라는 생각으로 접근했지만 끝에는 ‘도대체 밥 아이거라는 사람은 어떤 인간인가?’라는 질문으로 바뀌었다. 화려한 스펙과 엄청난 가문에서 태어나지도 않은 그가 어떻게 해서 디즈니라는 거대한 제국의 사령관이 되었고, 엄청난 압박 속에서도 이 거함을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할 수 있었는가? 이 책을 읽고 개인적으로 내린 대답은 ‘가장 밑바닥부터 자신의 손으로 차근차근 올라온 것’이라 생각한다. 아무도 관심 가져주지 않는 ABC말단 사원에서부터 시작했지만 그는 안주하지 않았고, 항상 기회를 관찰했고 눈앞에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준비가 되어있었다. (책을 읽다 보면 ‘야망이 엄청난 인간이구나’라는 느낌이 문자에서 피어오른다) [배우다], [이끌다]라는 두 부분으로 책을 나눈 것처럼 그는 끊임없이 배우고, 시도하고, 성장하고 다시 배우는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하며 지속적인 향상성을 띠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좋은 리더, 좋은 선배들, 좋은 동료들을 만나고 궁극적으로는 자신도 누군가의 좋은 리더, 좋은 선배, 좋은 동료가 되었다.


우리가 한국이란 나라에서 태어난 것은 (모든 조건이 같을 때) 미국에서 태어난 것과 비교하면 비극이다. 하지만(그 모든 조건이 같을 리 없기 때문에) 한국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면 미국의 저소득 흑인 가정에서 태어난 것보다 운이 좋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조선 같은 나라의 노비로 태어난 것과 비교하면 어마어마한 축복이다.

하물며 지금 좋은 부모와 좋은 친구를 갖고 있다면 매일매일 샴페인을 마시며 축하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좋은 부모와 친구가 돼준다면 그 역시 엄청나게 신나는 일이다.

[모두 같은 달을 보지만 서로 다른 꿈을 꾼다- 김동조 지음]


그가 디즈니 CEO라는 거함의 선장으로 발탁되어도 무너지지 않고 잘 이끌 수 있었던 건 정말 본인의 손으로 살아왔기에, 요행으로 살아온 것이 아니기에 그 과정 동안 참으로 깊고 단단한 인간이 되었다고 믿는다. 책을 읽는 중 무빙 워터라는 유튜버도 알게 되었는데 나의 아버지, 무빙 워터, 밥 아이거의 공통점이 눈앞에 선명하게 겹쳐 보였다.


바로 자신의 손으로 삶을 일구어온 사람들이라는 것. 자신의 삶에 스스로 선택을 하고, 스스로 책임을 지고, 그 과정에서 성장하며 인생을 살아가는 것. 자신이 선택하고 책임졌기에 이들은 그 자리(=자신들이 원하는 삶의 목표. 밥 아이거에게는 기업의 CEO, 무빙 워터에게는 자유로운 삶, 아버지에게는 가난하지 않은 삶)까지 올라갔다고 생각한다. 아주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자신의 삶을 산 사람들의 특유의 자신감, 특유의 근력, 특유의 투지, 특유의 자세가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그런 모습을 책과 삶에서 보니 필연적으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특유의 투지


책을 다 읽을 때 즘 생각 하나가 내려앉았다. '나중에 정말 사랑하고 지켜야 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도 여전히 자신의 삶에 책임지지 못하는 인간이면 너무 슬플 것 같다'. 결국 이걸 잘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과정을 지속적으로 반복하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시급 9,000원 받는 알바의 삶이지만, 이 책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삶의 태도와 내 삶의 태도를 돌아보고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조그마한 실마를 얻을 수 있었다.


일에서나 삶에서나 진정으로 겸손한 태도로 임해야 한다. 내가 누리는 성공은 부분적으로 나 자신의 노력 때문이겠지만, 그보다 훨씬 더 많은 타인들의 노력과 지원, 본보기 덕분이다. 또한 동시에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운명의 전환과 전개 덕분이기도 하다. 세상 사람들이 당신에 대해 아무리 중요하고 강력한 인물이라고 치켜세워도 적절한 수준의 자의식을 잃지 말라. 사람들의 찬사를 지나치게 믿기 시작하는 순간, 거울 속 자신의 이마에 직함이 새겨져 있는 것을 발견하는 순간, 이미 삶의 방향은 상실된 것이다.

[디즈니만이 하는 것- 밥 아이거 지음]


어떤 선택을 할 때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가. 그리고 정말 좋은 리더와 동료를 꼭 만나보고 싶다. 그들과 함께 무한한 가능성을 뿜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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