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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DEN Jul 17. 2019

아내가 살던 하루에는


직장을 그만둔 뒤로는 집에 종일 있는 날이 많았어. 
아마 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쯤 되었을 때였던 것 같아. 

아침에 눈을 뜨니, 오전 10시쯤 되었고
종일 시간을 허투루 보내고 싶지 않아
샤워를 하고, 책상에 앉았지.
 
그런데 싱크대위에 사용한 컵 하나가 눈에 띄는거야. 
저 컵을 씻고 나면 마음까지 쾌적할 것 같더라고. 

설거지를하고 책상으로 돌아오는데 TV 윗면에 먼지가 수북한 거야. 
물티슈로 쓰윽 닦아내고 엉클어진 케이블을 정리하고 나니
배가 고프더라고. 라면에 김치 반찬 하나를 먹은 것뿐인데
설거지가 생겼고, 설거지를 하고 나니 아이가 돌아왔어. 


아이는 아빠가 집에 있는 것을 너무나 좋아했고, 
함께 신나게 놀다 보니 아네가 집에 들어올 때가 되었더라고. 
서둘러 어지러워진 집안을 정리해야겠다 생각했어.
아내가 집에 들어올 때 깨끗한 모습을 보면 좋아할 것 같았거든.

그때 생각이 들었어. 
아내는 내가 직장을 다니던 지난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매일 같이 집을 치운 거구나. 
퇴근 후 남편이 집에 들어올 때 기분 좋으라고. 쾌적하라고.

미련하게 그 사실을 뒤늦게 알아버렸지 모야.


나는 음식 투정이 없다고만 생각했지. 
음식 투정이 생기지 않도록 매일 식단을 조절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어. 

그뿐만 아니라 회사에 있어서 처리할 수 없었던 일들을 아내에게 부탁하곤 했었는데 
아내가 그 일을 처리하려면 없는 시간을 쪼개서 해야 하는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

모든 스케줄을 아이의 시간에 맞춰 살아가고 있다는 것도, 
아내가 아플 수도 있다는 생각마저도 말이야.

아내의 하루를 살아볼수록 당연히 해야 하는 건 하나도 없더라고.
그 시간을 담보로 자유를 누리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정말 무심하고 무지한 사람이었구나 싶더라고.

그 뒤로도 나는 아내의 시간을 통해서 더 많은 것들을 알아갈 수 있었고,
알게된 것 만큼 더 고마운 하루를 살아갈 수 있었어. 

누군가의 시간으로 살아 본다는 건 
삶은 더 성숙하게 만드는 좋은 기회가 되는 것 같아.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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