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거제식물원
‘섬꽃 축제’로 유명한 거제 남부면의 작은 마을에 마치 UFO가 하늘에서 떨어져 착륙한 듯 유리돔이 햇빛에 반짝이고 있었다. 높은 건물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하나 없는 시골인지라 <거제식물원>의 존재는 그야말로 기이함을 뿜어내고 있었다. 주차장은 넓고 깔끔했다. 지난 2월 26일, 평일 오전.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바람이 조금 세게 불었고, 식물원 입구로 들어가는 길 양 옆에 서있던 야자수의 온몸이 흔들렸다.
다양한 열대식물을 볼 수 있는 공간
돔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습기와 온기가 훅 다가왔다. 관람 방향이라고 적혀 있는 안내 푯말을 따라서 천천히 둘러보았다. 계단을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았을 때, 정말 정글숲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인공폭포는 시원한 소리를 내며 떨어지고 있었고, 새소리가 스피커를 통해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은은히 올라오는 물안개가 열대 식물을 감싸고 지나가는 모습에 마치 영화 속 어느 장면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곳곳에 이름표가 부착된 열대 식물은 충분히 눈요기가 되었다. 요즘 실내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스킨답서스와 안스리움이 구석구석 바닥에 깔려 있고, 그 틈 속으로 보리수 같은 나무들이 서 있었다. 이 모든 것을 다 둘러보는데 약 3~40분이면 충분했다.
들어서는 순간 “우와 멋있다”는 감탄으로 시작했지만 나올 때는 “음... 이게 끝인가”하는 약간의 아쉬움이 남았다.
뚜렷한 정체성을 찾기 어려웠던 곳
<거제식물원>은 약 10여 년 전에 ‘거제생태테마파크’라는 이름으로 국비로 사업이 추진되었다. 거제도에 자생하는 식물을 한 데 모은 식물원을 만들겠다는 것이 최초의 취지였다. 하지만 사업이 진행되면서 그 취지와는 다르게 열대식물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탈바꿈되었다. 이 과정에서 많은 마찰이 있었던 것 같다. 지역 신문에서는 어느 지역 예술인이 이 공간을 위해 직접 수집하고 관리하던 ‘미니장가계’라는 식물을 낮은 가격에 기증했지만, 정작 식물원 바깥에 방치되다시피 놓여지는 등 거제 지역민들과 시의 의견차가 분분한 것 같았다.
이러한 배경 때문일까. 일개 방문객으로서 느낀 점은 국내 최대 식물원이라는 타이틀에 걸맞은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그저 열대식물을 가져다와 전시하는 것이 과연 이 지역의 발전과 정체성에 어떤 도움이 될까 의구심이 들었다. 물론, 이 신비하고 거대한 식물원에 대한 궁금증으로 방문객은 점점 늘어날 것이다. 또한, 거제도를 대표하는 ‘섬꽃 축제’ 기간 동안 이 식물원은 축제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표면적인 성과가 감탄에서 시작해 의문으로 끝나는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할 것이다.
매력적인 공간으로 거듭나길 바라며
공간은 이야기가 담길 때 비로소 의미를 찾게 된다. 거제식물원은 현재 돔 형식으로 열대식물이 잘 자랄 수 있는 충분한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이제 그 안에 무엇을 채울 것인가에 대한 숙제가 남았다. 대한민국 남단에 위치한 거제도의 특성을 잘 이용한 콘텐츠가 대중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또한 동식물이 함께 어우러지거나 적절한 퍼포먼스로 관람객들에게 아주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코로나 19로 인해 이제야 첫걸음을 뗀 <거제식물원>, 설립과 운영 과정에서 많은 혼선과 착오가 있었겠지만 앞으로 이곳에서 대중에게 보여주고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에 대한 명확한 정체성과 더불어 오랫동안 회자되는 새로운 이야기가 피어오를 수 있는 가능성의 공간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