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쉬운 천국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라는 말을 좋아한다. 그런데 욜로가 포기라는 의미로 쓰일 때 아쉬움을 넘어 슬퍼진다. 미래를 포기하고 오늘만을 살겠다는 것은 일종의 포기라고 생각했다. 포기는 더 이상 살아갈 이유가 없다는 의미로 방황이라고 여겼다.
방황하는 것과 여행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둘의 차이는 무엇으로 나뉠까. 아마도 행위의 목적이 쾌락 뒤에 나를 숨기려고 하는 것인가 아니면 성찰을 통해 숨겨진 나를 발견하기 위한 것이냐의 차이일 것이다. 나는 여행 중일까 방황 중일까.
여행을 하는 유지혜 작가에게 욜로는 용기로 해석되었다. 또는 취향을 가진다는 의미였다. 그녀에게 야망을 가져라는 고어를 들이댄다면 취향을 가져라고 되받을 것이다. 훌륭한 사람이 되어라는 추상적이고 의무적인 말보다 그냥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라는 말을 건네는 것이 그녀의 욜로에 가깝다. 욜로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 채 그럴싸한 것을 따라하기 위해 가져다 쓰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그녀의 책 <쉬운 천국>은 아주 욜로적이다.
욜로는 무엇보다 성실함이 최우선의 가치다. 느리고 단순함을 추구하는 비움의 성실. 쌓아 올려 높은 곳에 닿기 위한 인내의 성실. 서로가 바라보는 것은 다르겠지만 그 속성은 닮았다. 한 번 뿐인 인생은 내가 원하는 곳을 향한 성실과 동행하는 여행이다.
그녀의 작문의 성실은 어느 날 그녀를 작가라는 목적지에 데려다주었다. 유지혜 작가는 매일 일기를 썼다. 일기를 써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글감은 창조하는 것이지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내 주변에 사물과 사건을 내가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따라 삶은 달라진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자신의 삶을 사랑하기 위해서, 더 빛내기 위해서 글을 쓴다. 쓰다보면 쓸만한 인생이라는 것을 깨닭게 된다. 그녀 또한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런던, 파리, 베를린 여행기를 통해 그 지역의 독특하고 특별한 공간과 생활상을 엿본 것이 아니라 작가의 내면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녀가 일상을 대하는 태도, 스스로 원하는 주변 환경을 만들어가는 노력들은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자신의 삶을 시적이고 음악같은 문장으로 가벼우면서도 새롭고 또한 아름답게 조각하며 가꾸는 그녀의 열정에 서서히 물들었다.
그런 그녀는 정작 작가라는 칭호보다 쓰는 사람이라는 자기 인사가 익숙했다. 작가는 멈춤이고, 쓰는 것은 여행이기 때문이었다. 아직도 그녀는 자신이 무엇이 될 지 모른다며 글을 쓰며 무한의 가능성을 탐닉했다.
최근 어느 다큐를 보았다. 한국인 남자와 독일인 여자가 결혼해 강원도 산골에서 사는 이야기다. 독일인 여자는 너무나 빨리 돌아가는 서울 생활에 적응하기 힘들어 정신적으로 힘들었다고 한다. 이후 이 산골에 오면서 모든게 완벽해졌다고 했다.
그녀는 “열심히 살아라”는 말을 이해 못하겠다고 했다. “열심히 살아서, 어디로 가세요?”라고 묻는 그녀는 열심히 일은 할 수 있지만 열심히 삶을 사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 못하겠다며 궁금해했다. 그런 그녀를 보며 유지혜 작가가 떠올랐다. 그녀에게 열심히 사는 것이 무엇일까요? 라고 물으면 무엇이라고 답할까. 잘 모르겠어요… 그냥 하고 싶은 거 하세요. 그럴 것이다.
나이 40이 되면서 나는 어떤 것도 이룬 것이 없다는 생각. 어느 분야에서도 전문가가 되지 못한 자괴감이 드는 순간이 있었다. 그러나 아침에 일어나 모카포트에 커피를 끓여 마시고, 나그참파를 피우고, 좋아하는 향수를 뿌리고, 맘에 드는 옷을 입고, 가벼운 산책을 하며 사진을 찍고, 좋아하는 작가와 음악가가 생기고, 나만의 방식으로 아이와 대화를 하고, 남은 음식들로 다양한 요리를 하고, 아끼는 블루투스 키보드로 글을 끄적이는 나의 일상이, 오랫동안 여행을 통해 발견한 취향의 결과라는 것을 통해 알게 되었다. 이보다 더 프로페셔널한 삶은 또 어디있을까. 나는 여전히 기분 좋은 여행중이다.
https://www.eyesmag.com/posts/132706/yoo-ji-hye-writer-interview-easy-paradise-inf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