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젠슨 황, 생각하는 기계
최근 세계 증시는 역사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가 장중 기준으로 시가총액 4조 달러를 돌파한 것이다. 기술의 시대를 살아온 우리지만, '게임용 그래픽 칩'을 만들던 기업이 세계 경제를 흔들 정도로 성장할 것이라고 누가 상상했을까.
이 거대한 전환의 한복판에는 ‘검은 가죽 재킷’을 입은 사나이, 젠슨 황이 있다. 창업자이자 CEO로서, 그는 이제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처럼 기술 혁신의 아이콘이 되었다. 나는 몇 차례 그의 강연을 본 적 있다. 확신에 찬 어투, 속도감 있는 말투는 시대를 선도한다는 자부심으로부터 나온 것처럼 보였다.
이런 인물이 어떻게 등장했고, 어떤 판단이 오늘의 엔비디아를 만들었을까의 궁금증은 자연스럽게 책 한 권으로 이어졌다. 『젠슨 황, 생각하는 기계』. 이 책은 단순한 기업가 전기가 아니라, GPU 기술의 역사와 AI 시대의 흐름을 짚어가는 기술 인문서에 가깝다.
책에서는 젠슨 황을 "AI전쟁터에서 유일한 무기상"아라고 표현한다. 작가는 그의 광기에 가까운 집착과 뛰어난 통찰을 그려낸다. 그러나 이 책이 흥미로운 점은 단순히 젠슨 황을 찬양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저자는 신경망 연구의 권위자이자 2023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제프리 힌튼 등 다양한 전문가의 견해를 인용하며, AI 기술의 위험성과 윤리적 과제를 짚어내며, 젠슨 황이 이러한 우려를 '의도적으로 무시한다'며 비판하기도 한다.
여기서 책 속의 많은 내용을 정리하기 힘들지만, AI시대를 사는 사람으로 알게 된 몇 가지 기술역사와 창조적 파괴를 목도하고 있는 한 인간으로서의 감상을 적어두려 한다.
게임 칩에서 AI의 두뇌로
엔비디아의 시작은 명확했다. 더 나은 게임 그래픽을 위한 칩, GPU(Graphics Processing Unit)를 만드는 회사였다. GPU는 수많은 픽셀을 동시에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CPU와 달리 병렬 연산에 특화된 구조를 갖는다.
초기 AI 연구는 주로 CPU 기반의 직렬 연산 구조로 이뤄졌다. 컴퓨터는 사람이 설계한 알고리즘에 따라 순차적으로 계산하고, 가능한 많은 변수를 넣어 정확한 결과에 접근하려 했다. 지금은 업계 표준이 된 신경망 구조의 연구는 이러한 연구 분위기 속에서 망상에 가깝다고 취급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2012년, 신경망 구조로 만들어진 ‘AlexNet’이라는 이미지 분류 모델이 엔비디아의 GTX 580 GPU를 활용해 ImageNet이라는 AI 경연 대회에서 압도적인 성능을 보이며 업계의 판도가 바뀌었다. 이로 인해 신경망 기반의 딥러닝이 주목받게 되었고, 게임 칩으로만 여겨졌던 GPU의 구조적 강점이 다시 조명된다. 병렬 연산이 많은 뉴런의 동시 활성화를 요구하는 딥러닝 구조와 맞아떨어진 것이다. 이때부터 GPU는 게임용 칩이 아니라, AI를 위한 ‘두뇌’로 탈바꿈했다.
한편 반도체 산업의 오래된 법칙인 '무어의 법칙'은 한계에 도달하고 있었다. 트랜지스터를 작게 만들수록 더 많은 연산이 가능해졌지만, 그 크기가 원자 단위 수준에 접근하면서 양자역학적인 현상, 즉 전류가 새어 나가는 양자 터널링(Quantum Tunneling) 문제가 발생한다. 기존의 직렬 연산 기반 CPU로는 더 이상 속도와 효율을 끌어올리기 어려워진 것이다.
젠슨 황은 이 흐름을 단순한 기술 진보가 아니라 사업적 기회로 해석했다. 그는 AI가 인간의 삶을 바꿀 것이며, 그 핵심에 자신의 GPU가 설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CUDA라는 병렬 컴퓨팅 플랫폼을 선보이며, AI 연구자들이 쉽게 GPU를 사용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어갔다. 그리고 이 선택은, 곧 기술 산업의 지도를 바꾸는 창조적 파괴로 이어진다.
상상력의 시대, 그 다음은?
『젠슨 황, 생각하는 기계』는 기술과 산업의 흐름을 읽는 데 매우 유용한 책이다. 동시에 우리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진다. 'AI가 전 인류의 지식과 자원을, 언제 어디서든 꺼내줄 수 있다면 우리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제 미래는 어떤 기술을 갖고 있느냐가 아니라, 그 기술로 무엇을 상상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앞으로 중요한 건 단 두 가지다. 추론력과 창의성이다. 지식과 정보의 접근성의 한계를 허물고 로봇으로 육체노동으로부터 자유롭게 된 인간은 무엇을 하게 될까.
휴가기간 동안 이 책을 읽어보시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