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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진짜 안전한가?

[넷플릭스][영화] 하우브 오브 다이너마이트

by 랩기표 labky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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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메테우스의 불을 훔친 인간은 결국 자신도 태울 불을 손에 쥐게 되었다. 원자폭탄을 완성했던 오펜하이머는 실험의 성공 순간 “이제 나는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노라”고 중얼거렸다. 그의 경고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선명해진다.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거대한 힘은 언제든 오작동하거나, 오판하거나, 혹은 단 하나의 오해만으로도 세상을 무너뜨릴 수 있다. 그 악몽 같은 장면을 그려낸 영화가 최근 넷플릭스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미확인 비행물체가 미국으로 발사되었다. 곧 그것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누가 왜 쏘았는지 아무도 몰랐다. 추적하라고 띄운 위성은 해킹으로 작동을 멈췄기 때문이다. 확실한 건 18분 뒤 시카고는 핵폭탄으로 사라진다는 사실이었다. 미국은 그야말로 혼란에 빠졌다. 이와 같은 상황에 대비해 군과 정부기관은 수천 번 연습을 했지만, 이론은 현실 앞에서 공허했다. 가상의 위기가 현실이 되자 속이 뒤틀릴 만큼의 공포가 엄습했고, 이성은 마비되었다. 마지막 보루였던 미사일 방어체계는 총알로 총알을 맞추는 일과도 같았다. 희망을 쏘아 올렸지만 실패했고, 미국은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대피할 시간도 없었다. 그저 가족과 짧은 작별만이 허락되었다.


케스린 비글로우 감독의 영화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는 핵무기로 유지되는 평화가 얼마나 취약하고 위험한지를 정면으로 보여준다. 미국이 핵공격을 받은 사건을 군인, 정치인, 대통령 등 여러 인물의 시선으로 반복적으로 제시해, 동일한 상황이 엄습하는 각기 다른 시선의 공포를 세밀하게 드러낸다. 뛰어난 연출로 장면을 세 번이나 되돌려 보여주지만 몰입감은 전혀 흐트러지지 않는다.


그래서 감독은 이 영화로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우선 핵무장 국가들 사이의 신뢰가 얼마나 얇은 얼음 위에 놓여 있는지 보여준다. “힘이 평화를 만든다”는 명제를 우리는 너무 쉽게 믿는다. 하지만 과연 그 힘은 제대로 통제되고 있는가. 우리가 믿는 안전장치는 정말 안전한가. 그 믿음은 실제 상황 앞에서도 유효한가. 영화는 이 질문을 강하게 던진다.


지금의 국제 질서 역시 혼란스럽기만 하다. 우리가 굳게 신뢰했던 자유무역 체계도 더 이상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우리가 의지하던 세계질서가 무엇으로 유지되어 왔는지 근본적인 의문을 던진다. 유럽은 이전 세기의 잔혹한 침략 역사를 떠올리며 군비를 늘리고 있다. 세계는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화약고가 되어가는데, 각국은 아이러니하게도 여전히 ‘힘으로 방어하겠다’는 쪽에 더 큰 합의를 모으고 있다.


미국이 해외 주둔군을 철수시키며 각국에 국방비 증액을 요구하는 상황은 이러한 흐름을 오히려 가속화하고 있다. 신뢰가 빠르게 약해지고 있는 것이다. 신뢰를 기반으로 체결된 조약이 하나둘 힘을 잃을 때마다 세계라는 화약고의 심지는 점점 더 짧아지고 있다.


영화 속 미국 대통령은 보좌관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핵폭탄 스위치를 들고 다니는 건 보여주기 위해서지, 실제로 쓰기 위해서가 아니다.”


즉각적인 보복 능력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핵무기를 억제하는 장치다. 그러나 그 억제가 무너진다면 어떻게 되는가. 출처를 알 수 없는 핵공격 앞에서 미국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극히 제한적이다.


그것은 바로 시카고를 잃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적국으로 간주된 국가의 군사시설을 파괴하는 것. 그러나 그 순간 보복은 또 다른 보복을 부르고, 결국 세상은 종말을 향해 달려가게 된다. 이때 정치 지도자들은 서로에게 묻는다. 과연 내가 당신을 믿을 수 있는가. 당신이 나를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어떻게 가질 수 있는가. 이미 공격이 발생한 시점에서 담보 없는 신뢰는 공허하다.


그리고 바로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것이 전쟁의 망령이다. 미국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보복을 감행해 힘을 보여줄 것인가. 아니면 협상을 택해 스스로의 피해를 감수할 것인가. 어느 쪽도 정답이 아니다. 어느 쪽도 안전하지 않다.


이 거대한 딜레마 앞에서 감독은 마지막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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