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폼을 처음 접했을 때는 쉽게 적응되지 않았다.
너무 빠른 전개였다.
무언가를 본 것은 분명한데, 그게 정확히 무엇이었는지는 잘 남지 않았다.
100분에 100개의 영상을 본다는 것은
100가지의 정보를 접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서로 다른 주제의 정보가 쉼 없이 밀려든다.
처음에는 이 속도를 감당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하나 있다.
콘텐츠를 포함한 정보 생산의 중심이
이미 숏폼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내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조금 과거로 돌아가 보자.
한때 우리는 서면을 통해서만 정보를 얻었다.
라디오와 텔레비전이 등장하며
정보는 전파를 타고 전달되기 시작했고,
한 사람이 받아들이는 정보의 양과 처리 속도는
자연스럽게 빨라졌다.
스마트폰의 등장은 이 흐름을 가속시켰다.
우리는 실시간 정보의 물결 속에 들어갔고
동시에 정보의 공급자 역시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이 환경에서
정보 유입량과 처리 속도가 빨라지는 것은
어쩌면 피할 수 없는 결과였다.
숏폼은 그 결과물 중 하나다.
지금 우리는
서사를 따라가기보다 핵심을 먼저 파악하고,
그 핵심을 기점으로
각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시대에 살고 있다.
점들이 먼저 던져지고,
그 점들을 어떻게 연결할지는
개인의 몫이 되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우리가 실제로 살아가는 데 유용한
지식과 이해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하나의 이론이 설명되기까지는
수많은 맥락과 과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사회는 점점
그 과정보다 결과와 메시지를 먼저 요구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해했다’는 착각 속에서
다음 콘텐츠로 넘어간다.
숏폼이 사고를 얕게 만드는 것일까.
어쩌면 그렇지 않다.
숏폼은 이미 바뀐 사고 방식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에 가깝다.
사람들은 예전에도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예전에는
깊이 생각하는 척할 시간이 있었을 뿐이다.
숏폼은 그 위선을 걷어낸다.
“이게 핵심이다.”
“이게 요지다.”
그리고 묻는다.
그다음은 네가 알아서 하라고.
숏폼은 점이다.
지식은 선이고,
사유는 면이다.
점만 소비하고 다음 점으로 넘어가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그 점 하나가 선을 시작하게 만든다.
그래서 숏폼은
완결된 콘텐츠라기보다
입구에 가깝다.
책으로 가는 입구,
강의로 가는 입구,
생각으로 들어가는 입구.
다만 이 시대는
입구만 수없이 만들어 놓고
그 안으로 들어갈 마음은
점점 잃어가고 있다.
그 지점이 위험하다.
숏폼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변화다.
중요한 것은 거부가 아니라 선택이다.
숏폼을 도피처로 쓸 것인가,
아니면 사고를 확장하는 도구로 쓸 것인가.
속도는 이미 늦출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깊이를 포기할 것이 아니라
이 속도 안에서
깊이로 들어가는 새로운 방식을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이 시대에 남는 것은
콘텐츠의 양이 아니라
점과 점을 잇는 힘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