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황금의 검은 그림자

랜드맨 리뷰

by 랩기표 labkypy


석유, 물질문명을 지탱하는 거대한 뿌리


지표면 아래 잠든 기름을 세상 밖으로 끌어올리는 일은 인내와 자본, 그리고 처절한 노동의 집합체다. 유전이 잠들어 있을 법한 땅을 찾아내 지주로부터 개발권을 취득하는 것에서 모든 서사는 시작된다. 유전의 수명은 유한하기에, 자본가는 땅을 소유하기보다 영리하게 개발권을 사는 방식을 택한다. 권리가 확보되면 비로소 기계와 인력이 동원되어 대지를 파헤친다.


이렇게 길어 올려진 원유는 정제 시설을 거쳐 등급별로 분류되어 세상 곳곳으로 스며든다. 이동 수단의 에너지로 매끈한 도로의 원재료로, 그리고 플라스틱이라는 공산품이 된다. 냉정히 따져보면 인류가 누리는 물질문명의 비약적 발전과 혜택은 이 석유 산업이라는 거대한 토대 위에 세워진 셈이다.


33년 차 랜드맨, 토미 노리스라는 이름의 유정


이 거대한 산업의 연결고리에서 유전을 개발하고 관리하는 핵심적 존재를 ‘랜드맨(Landman)’이라 부른다. 부지 임대라는 행정적 절차부터 거친 현장 노동자들을 관리하며 발생하는 모든 돌발 변수를 온몸으로 받아내는 이들이다.


텍사스의 황량한 땅 위에서 33년을 버텨온 랜드맨 토미 노리스. 그는 그 자체로 수명을 다해가는 유정처럼 보인다. 지친 기색이 역력한 얼굴과 축 늘어진 사지는, 수많은 세월 동안 현장의 온갖 사건 사고를 수습하며 자신의 에너지를 남김없이 쏟아부었음을 증명한다. 마치 폐쇄를 앞둔 노후 유전과 같은 모습이지만, 죽음이 교차하는 현장에서 보여주는 그의 냉철함과 마약 카르텔에 맞서는 배짱은 그가 왜 여전히 이 비정한 현업에서 살아남아 그 최전선에서 활동하는 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석유 산업의 이면


토미가 몸담은 회사는 쉘(Shell)과 같은 글로벌 공룡이 아닌 중견 기업이다. 이곳에는 대대로 부를 승계한 재벌 오너가 군림하고, 토미와 같은 관리직이 그 아래서 현장을 지탱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그럴싸한 외양과 달리, 유정을 관리하는 체계는 글로벌 기준에 미치지 못할 만큼 위태롭다.


그 부실한 틈새에서 비극은 싹을 틔운다. 현장 인력의 노하우에만 기대어 유지되던 위태로운 업무 절차는 순식간에 폭발 사고로 이어져 세 가족의 삶을 파괴했다. 이들에게 죽음은 이미 익숙한 상수에 가깝다. 석유를 끌어 올리는 일은 이토록 고되고 위험하지만, 그 과실의 혜택은 호화로운 수영장 저택에서 딸의 생일 파티를 여는 오너의 몫으로 돌아간다.


공존할 수 없는 것들의 기묘한 조화


시리즈는 토미의 눈을 통해 세상은 도저히 섞일 수 없을 것만 같은 것들이 한데 엉켜 굴러가는 아이러니한 곳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석유 산업의 가장 낮은 곳에는 갈 곳 없는 중범죄 전과자의 땀방울이 흐르고, 그 꼭대기에는 주지사와 식사 자리에서 나눈 몇 마디 대화로 군대를 움직일 수 있는 오너가 존재한다. 쇠 파이프에 깔려 죽은 직원의 뒤처리를 도맡는 가장의 고뇌 곁에는, 외모를 가꾸는 것이 곧 경쟁력이라 외치는 아내와 딸의 허영이 공존한다.


그리고 오로지 이익을 쫓으며 협박을 서슴지 않는 변호사와 업계의 낡은 관행을 끊어내고 선한 경영자가 되고 싶어 하는 이상주의자가 있다.


이들은 얼핏 아무런 연관이 없어 보이지만, 세상은 이처럼 이해할 수 없는 존재들이 한데 엉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외면한 불편한 진실


세상을 지탱하는 석유, 그리고 그 중심에 선 인간 군상들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자명하다. 어쩌면 세상은 우리가 함부로 정의 내릴 수 없는 곳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세상은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추악함을 숨겨두고 있다. 우리가 접하는 것은 시스템에 의해 그럴싸하게 포장된 결과물일 뿐이다.


전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우리는 그것이 정의와 평화의 수호라고 믿고 싶어 하지만 실상은 석유를 둘러싼 패권 다툼이며 강자의 욕망에 따른 것임을 이미 알고 있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대하는 방식은 세련된 외교적 수사이며, 교양 있는 어른의 그럴싸한 연극일 뿐이다. 랜드맨 토미 노리스의 지친 눈빛은 그 포장지 뒤에 숨겨진 문명의 비릿한 진실을 묵묵히 응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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