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이야기 2
전동 성당 맞은편, 느티나무 그늘 아래 자리한 경기전은 지금보다 훨씬 작고 조용했다. 어렸을 적 그곳은 사람들의 발길보다 바람 소리가 더 자주 머무는 곳이었다. 대나무 숲이 기와 대문을 덮고 있었고, 세월의 이끼가 문지방을 감싸 안고 있었다. 아름드리 느티나무 사이로 하얀 흙길이 오솔길처럼 구불어져 있었고, 바람이 불면 대숲의 이파리들이 사각거리며 햇살을 흔들어 주었다. 그 길 끝에는 내가 다니던 중앙국민학교가 있었다.
빨간 벽돌로 지어진 학교 건물은 나무로 짠 창문마다 하얀 커튼이 바람에 흔들렸다. 지금은 경기전 밖으로 옮겨져 새로운 건물이 되었지만, 내 기억 속의 학교는 언제나 경기전 담장 안, 느티나무 그늘 아래 머물러 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내 짝꿍 이름은 영수였다. 나는 작고 말수가 적은 아이였고, 영수는 까까머리에 허여멀건한 얼굴을 가진 친구였다. 눈 밑과 콧등엔 갈색 죽은 깨가 조밀하게 박혀 있었고, 웃을 때마다 가지런한 이가 드러났다. 우리는 둘 다 키가 작아 맨 앞줄에 나란히 앉았다.
하루는 이상하게 피곤했던 날이었다. 종이 울리고 쉬는 시간이 되자 나도 모르게 책상에 엎드려 깜박 잠이 들었다. 꿈결처럼 멀리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얼레리꼴레리, 얼레리꼴레리,
경희하고 영수하고,
얼레리 꼴레리 얼레리 꼴레리.”
어렴풋이 들리는 소리에 눈을 떴을 때, 내 옆에서 영수도 고개를 들고 있었다. 그 애도 나처럼 잠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책상 위엔 침 자국이 번져 있었고,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이들의 장난스러운 노랫소리는 점점 커졌고, 영수와 나는 서로의 얼굴도 바라보지 못한 채 고개를 숙였다. 창피한 마음이 뒤섞여 눈물이 났다. 영수도 나와 함께 책상에 엎드린 채 훌쩍거렸다. 담임선생님이 들어와 아이들을 혼내 주었지만, 그 일 이후로 영수와 나는 괜히 어색해졌다.
말을 걸고 싶었지만, 쉬는 시간마다 영수는 다른 친구 곁에 앉았다. 여자아이처럼 눈물을 보여 스스로 부끄러웠던 건지, 친구들이 놀릴 때 짝꿍을 지켜주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던 건지, 세월이 흘러도 알 수가 없다. 지금 생각하면 별일 아닌 일이었는데 그땐 왜 그리 나도 영수도 마음이 복잡했는지 모르겠다.
지금도 경기전을 찾을 때면 영수가 떠오른다. 태조의 어진이 모셔진 정전 앞에 서면, 어린 우리 둘의 그림자가 포개져 떠오른다. 선생님을 따라 회랑을 돌며 걸었던 길, 향나무와 돌담길이 한 폭의 수묵화처럼 펼쳐지던 그 길을 영수는 내 옆에서 묵묵히 걸었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같은 속도로 발을 맞췄다. 그때의 어린 영수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서울의 빌딩 숲 어딘가에서, 혹은 시골의 들길 어딘가에서 그날의 ‘얼레리꼴레리’ 소리를 떠올리며 잠시 웃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여전히 이곳 경기전을 자주 들랑거릴 수 있는 곳에서 살아가고 있는데 말이다.
때때로 경기전의 돌담길을 걷다 보면 어린 날 맡았던 흙냄새가 나는 것 같다. 그 속에 영수의 옷에서 나던 땀 냄새가 섞여 있는 것 같다. 경기전의 붉은 기둥이 지켜온 세월 속에서 느티나무 가지들이 하늘로 길게 뻗어 올랐다. 나무 그늘 아래서 한 아이의 이름을 불러본다.
영수야, 잘 있지?
그때 부끄럽게 웃었던 우리의 짧은 봄날을 기억하고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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